아이에게 부모는 빛이다.
나는 그날의 조명을 아직도 기억한다.
교실을 임시로 꾸민 작은 강당,
형광등이 가볍게 떨리며 흘리던 하얀 진동,
아이들이 서툰 손으로 붙여 둔 색종이 장식들.
무대 위에 서 있던 나는
관객석보다 먼저 내 심장의 소리가 들릴 만큼
낯선 공기 속에서 자꾸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관객석은
정장과 향수의 냄새로 가득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이며
서로의 아이를 찍으려는 웃음이 여유롭게 흘렀다.
나는 그 틈에서
엄마를 찾았다.
아무리 주변을 살펴도
익숙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 작은 부재가
내 어린 마음을 단숨에 흔들었다.
노래도, 율동도 흩어지고
무대라는 공간의 중심이 갑자기 사라진 듯
모든 게 허공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의 나는
발표회에 선 아이가 아니라
사람들 틈에서 길을 잃은 작은 존재였다.
그러다 객석 한쪽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허름한 작업복,
손등에 묻은 먼지,
목에 걸린 오래된 필름카메라.
그 모습은
무대의 조명보다도 먼저 나에게 빛처럼 다가왔다.
엄마였다.
공장 기계의 냄새가 손끝에 남아 있고,
하루의 피로가 어깨에 걸려 있었지만,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 시선에 닿는 순간
흩어져 있던 무대의 중심이
다시 내 발 아래로 모여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도라는 감정이
어떤 온도와 어떤 속도로 찾아오는지
그날 처음 배웠다.
행사가 끝난 뒤
엄마는 내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말보다 먼저 들렸던 건
작업복의 마른 먼지가 부딪히는 작은 소리,
숨을 들이켜는 규칙적인 리듬,
손끝에 남아 있던 미세한 떨림이었다.
그것들이 그날의 대화였다.
나는 엄마를 보며
작업복의 주름에 숨은 하루의 무게,
늦게 도착한 이유,
힘겨웠을 마음들을
본능처럼 감지했지만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대신
엄마의 눈빛에서 어떤 확신 같은 것을 보았다.
수많은 얼굴들로 가득한 관객석에서도
엄마에게만큼은
나 하나만 선명하게 보였다는 듯한 결.
말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어린 마음의 가장 깊은 자리에
느리게 스며드는 감각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날 무대에 서 있던 건
나 혼자도, 엄마 혼자도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각자의 어둠을 건너온
두 개의 작은 빛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내 아이의 재롱잔치를 본다.
조명 아래서 긴장한 표정,
작은 손으로 동작을 따라 하는 모습,
객석을 향해 조심스럽게 보내는 시선.
나는 그 아이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박수를 치는 손끝에서
오래전 엄마의 카메라 끈이 떠오른다.
그 끈이 천천히 흔들리던 모습,
그 안간힘과 사랑의 무게,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다.
어린 나는
엄마가 늦은 이유도,
작업복에 남은 하루의 고단함도,
“너밖에 안 보이더라”라는 말의 깊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안다.
그날 엄마가 보여준 얼굴 하나가
평생 동안 내 삶을 밀어 올린
가장 조용한 빛이었다는 것을.
필름 사진은 이미 색이 바랬지만
그 순간만큼은
지금도 마음의 가장 밝은 자리에서
은은한 조명처럼 다시 켜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