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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것들

버려진 무게를 짊어진 유령선

by 윤담

유령선에는 늘 어둠이 먼저 닿는다.
그 어둠은 밤의 그림자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라,
물속 깊이 가라앉은 쇳가루 같은 어둠이다.
누군가가 곁에 머물렀던 흔적이 있지만
이미 오래전에 빠져나간 시간들만 남아 있는 장소.
그런 배들은 늘 공기를 조금 다르게 흔든다.

나는 그런 유령선을 볼 때마다
항상 사람의 마음을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도
떠난 감정과 남은 감정이 엉켜 있는 시간을 지나오고,
그 시간이 오래되면
배처럼 ‘버려진 무게’를 스스로 품고 살아가게 된다.

유령선은 고요하다.
바람이 닿아도 쉽게 움직이지 않고,
파도에 흔들려도 깊은 속살은 미동조차 없다.
그 모습은 마치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마침내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인간과 닮아 있다.
아픔을 잃어버려서가 아니라,
아파할 기운마저 소진된 채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유령선은 사라진 사람들의 온도를 기억한다.
그 온도는 물속으로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는다.
난간에 남은 녹슨 지문,
조타실의 마른 먼지,
창문 틈으로 스며든 바닷물 냄새 속에
그들의 사랑과 두려움, 욕망과 절망,
모든 결이 굳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자신이 떠나온 시간들을 안고 살아간다.
말하지 못한 일들이 가슴 한쪽에서 식고,
끝내 마주하지 못한 감정들은
낡은 갑판처럼 마음속 어딘가에 조용히 쌓여 간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런 잔해들을 안고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몸의 의지다.

유령선은 미움받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조용해진다.
왜냐하면 그 배가 품고 있는 건 공포가 아니라,
끝까지 사라지지 않으려 했던 존재의 잔향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고,
누군가는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실패와 꿈은 모두 바람에 씻겨나갔지만,
그 잔향은 배의 표면에 작게 흔들린다.

나는 유령선을 볼 때마다
사람의 마음에 남는 잔열도 그런 것일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랑은 이미 끝났지만,
그 사랑이 머물렀던 나의 한 부분은 아직 부서지지 않고 남아 있고.
어떤 꿈은 오래전에 잃었지만,
그 꿈이 나를 움직였던 흔적은 여전히 심장 가까이에 붙어 있고.
어떤 상처는 아물었는데도
그때의 감정이 여전히 미세하게 쑤시는 이유도
그 잔열 때문일 것이다.

유령선은 완전히 버려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그 배를 잊었을 뿐
배는 여전히 바다의 결을 따라 흐름과 멈춤을 반복한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버려진 마음이 아니라,
단지 더 이상 부르지 않는 이름들과
다시 건널 수 없는 시간들이
우리 안에 오래 머물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유령선을 무섭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곳에서
견디고 남아 있던 것들의 얼굴을 본다.
말하지 못한 사랑,
수습하지 못한 실수,
끝내 닿지 못한 목적지,
이 모든 것들이 철판 아래에서 식어가다
어느 순간 투명한 결로 남아 버린 풍경.

그렇다면 인간의 삶은
결국 유령선의 항적과 닮아 있는 것 아닐까.
어디로 향하는지 정확히 모르면서도,
떠나온 곳이 너무 많아서 되돌아가기도 어렵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밀려가는 존재.

유령선은 목적 없이 떠다니는 배가 아니다.
그 배는 어디까지 와버렸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다.
다만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사람도 그렇다.
가끔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실패 같아 보여도,
사실은 이만큼이나 전진해 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남은 건 잔해 같은 삶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으려는 온도의 흔적들.

나는 언젠가 바다 위에서
해 질 녘의 유령선을 본 적이 있다.
그 배는 구멍 난 그림자처럼 보였지만
그 안엔 분명히 살아낸 시간의 무게가 있었다.
희미하고, 흐릿하고,
그러나 끝내 사라지지 않는 무게.

나는 그때 알았다.

모든 인간은 결국
자기 마음 한쪽에
작은 유령선 하나씩을 띄우고 산다는 것을.

그 배는 결코 목적지에 닿지 않지만
완전히 가라앉지도 않는다.
우리의 투명한 불완전이
그 배를 계속, 아주 느린 속도로
살아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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