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랑

지나간 것

by 윤담

비는 오후 내내 내리지 않는 척하다가, 해가 기울 무렵부터 천천히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먼지가 내려앉는 소리처럼 희미했고, 그다음에는 누군가 망설이며 문을 두드리는 손등처럼 가늘고 일정했다. 사무실의 형광등 아래에서는 종이 냄새와 복사기 열기, 오래 식지 못한 커피의 쓴 향이 뒤섞여 떠 있었고, 창틀 틈으로는 젖은 아스팔트 냄새가 들어왔다. 빗물에 씻긴 도시의 냄새는 늘 조금 낯설었다. 금방이라도 모든 것이 새로워질 것처럼 맑아지면서도, 사실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얼룩들이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모든 것이 정리되어가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오히려 감추어진 것이 더 또렷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민서는 늘 파일철의 모서리를 먼저 맞추는 사람이었다. 보고서 한 권을 책상 위에 올려둘 때도 삐뚤어진 쪽을 그냥 두지 못했고, 회의가 끝나면 누군가 밀어놓고 간 의자를 안으로 반쯤 넣어두고 나오는 버릇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습관을 두고 성실하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성실이라는 말보다 흐트러진 것을 그대로 두지 못하는 성정에 더 가까웠다. 정돈된 표면을 보면 안도했고, 맞물려 있어야 할 것들이 제 자리에 있는 광경을 보면 마음이 조금 덜 흔들렸다. 어쩌면 신뢰라는 것도 그녀에게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거창한 맹세가 아니라,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는 컵과 늘 같은 시간에 오는 메시지와, 말한 것을 말한 대로 지키는 사소한 반복.
신뢰는 처음부터 커다란 얼굴로 오지 않는다.
대개는 아주 작은 습관을 한 겹씩 포개는 방식으로 사람 곁에 앉는다.
준호를 처음 믿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는 처음부터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약간 무심했고, 필요한 말만 골라 하는 편이었다. 회의 자리에서 불필요한 농담을 길게 늘이지 않았고, 타인의 감정을 억지로 읽어주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무심함에는 사람을 편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과하게 다정한 사람들 곁에서는 자꾸 내 표정을 점검하게 되는데, 준호 앞에서는 그럴 필요가 적었다. 그는 물을 따라주면서도 시선을 오래 두지 않았고, 야근이 길어지면 말없이 편의점 커피를 하나 올려놓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고마워요, 하면 그는 늘 비슷한 얼굴로 말했다.
“늦게까지 있잖아요.”
그 말은 배려를 과시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힘을 뺀 문장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힘 빠진 방식이 더 오래 남았다. 누군가가 나를 챙겼다는 사실보다, 챙긴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는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상처 입은 방식과 반대되는 결을 가진 사람에게 마음을 준다. 민서는 오래전부터 말이 지나치게 많은 친절을 경계해왔다. 쉽게 약속하고, 쉽게 다정해지고, 쉽게 “당연하죠”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가장 먼저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준호는 쉽게 당연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믿었다.
두 사람은 같은 팀에서 일했다.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일이 적은 곳도 아니었다. 숫자와 보고서와 승인과 수정과 마감이 매일 사람의 숨을 얇게 만들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이미 누군가의 다급함이 메일함에 도착해 있었고, 오후가 되면 오전의 계획은 대개 다른 사람의 변수에 의해 부서졌다. 그런 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기도 전에 의지하게 되었다. 누가 어떤 일을 넘겨도 결국 해낼 수 있는지, 누가 실수하면 조용히 수습하는지, 누가 위에서 시키는 무리한 요구 앞에서 최소한 사람을 방패 삼지는 않는지. 회사에서의 신뢰는 대부분 인격보다 기능을 통해 먼저 쌓인다. 그러나 기능으로 시작한 신뢰가 어느 순간 인격의 얼굴을 갖게 되는 때가 있다. 민서에게 준호는 그 경계를 천천히 넘어온 사람이었다.
그는 약속한 마감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고, 자기 몫이 아닌 일도 급하면 묵묵히 처리했다. 누군가의 실수를 공개적으로 지적하지 않았고, 회의에서 책임을 떠넘기는 말을 삼갔다. 무엇보다 그는 말을 아꼈다. 그 침묵 속에서 민서는 이상한 안정감을 느꼈다. 말이 적다는 건 때로 비겁함이지만, 때로는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 성실이기도 하다. 준호는 후자에 가까워 보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두 사람은 퇴근 후 같은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항상 같이 가자고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일이 끝나는 시간이 비슷했고, 건물 현관을 나서면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으로 발이 옮겨졌다. 젖은 보도블록 위로 가로등 불빛이 길게 번지고, 우산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구두 앞코를 적셨다. 그런 저녁에 나누는 말들은 대개 사소했다. 오늘 회의가 어땠는지, 누구 표정이 좀 안 좋아 보였는지, 저 카페가 의외로 커피를 잘한다는 이야기. 그런데도 사람은 그런 하찮은 대화 속에서 서로의 숨결을 익힌다. 누가 어느 부분에서 잠깐 웃는지, 어떤 말 앞에서 짧게 침묵하는지, 자기 이야기를 꺼낼 때와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 목소리의 온도가 어떻게 다른지.
“사람들 말은 너무 빨리 바뀌는 것 같아요.”
어느 비 오는 저녁, 민서가 그렇게 말했다. 별다른 맥락 없이 나온 말이었다. 아마 낮에 있었던 회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전에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던 안건을, 오후에는 그런 말 한 적 없다는 듯 뒤집는 사람들. 책임이 생기면 기억까지 수정하는 얼굴들.
준호는 우산 손잡이를 조금 고쳐 쥐며 말했다.
“말은 원래 가벼워요.”
“그럼 뭐가 안 가벼워요?”
그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행동이요. 남는 건 결국.”
민서는 그 말을 오래 기억했다.
남는 건 결국 행동이라는 말.
누군가를 믿게 되는 건 대개 이런 문장 때문이다. 거창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살아온 것 같기 때문에. 말의 모양과 행동의 결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일 때 사람은 문장까지 믿게 된다. 민서는 자기 안의 경계가 생각보다 쉽게 느슨해지는 걸 보았다. 야근 후 늦은 저녁을 같이 먹는 횟수가 늘었고, 파일을 넘길 때 손끝이 잠깐 닿아도 전처럼 즉시 물러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말은 아직 너무 선명해서 입 안에서 굴리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가 있는 쪽으로 마음의 무게가 조금씩 기울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 기울어짐은 소리 없이 진행되었다.
봄에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처럼, 처음에는 있다고도 하기 어려운 정도로.
그해 겨울이 오기 전, 팀에는 큰 프로젝트 하나가 들어왔다. 회사 전체가 몇 달간 매달려야 하는 규모였고, 성공하면 조직 분위기 자체가 달라질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민서는 자료 정리와 실무 총괄을 맡았고, 준호는 대외 발표와 핵심 전략 파트를 담당했다. 밤이 길어졌다. 사무실 창밖이 먼저 캄캄해지고, 형광등 아래 사람들의 얼굴만 떠올랐다. 자정 가까이 남아 있는 날이 잦아지자 사무실에는 늘 비슷한 냄새가 맴돌았다. 식어버린 컵라면 국물, 프린터 토너, 피곤이 밴 셔츠, 누군가 깜빡하고 두고 간 귤껍질의 시큼한 향. 그런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가장 초라한 면을 보게 된다. 다듬을 여유를 잃은 표정, 짜증을 억지로 삼키는 목울대, 지친 채로도 끝내 해야 해서 앉아 있는 등.
민서는 그때 자신이 준호를 더 깊이 믿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피곤한 날에도 쉽게 거칠어지지 않았고, 자료를 급히 고쳐달라고 해도 한숨 대신 “어디까지 바꾸면 돼요?”라고 물었다. 발표안을 함께 보다가 새벽 두 시를 넘긴 적도 있었다. 밖에는 눈이 조금씩 쌓이고 있었고, 회사 난방은 이상하게 과해서 유리창만 서늘했다. 민서가 모니터를 보다가 잠시 눈을 감았을 때, 준호가 건네준 것은 뜨거운 캔커피였다.
“너무 무리하지 마요.”
그는 그렇게 말했다.
민서는 웃었다.
“지금 그 말 할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래도.”
그 한마디가 그날 따라 유난히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래도.
사람 마음은 참 단순한 데가 있어서, 그럴 때면 이 사람도 나를 특별히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고 믿고 싶어진다. 실제보다 조금 더 의미를 읽고, 무심한 표정을 오래 해석하고, 보통의 배려를 나만을 향한 것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의 민서는 단지 착각만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녀가 보기에 준호 역시 어느 정도는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늦은 밤 둘만 남은 사무실에서 흐르던 이상하게 편안한 침묵, 메일 말미에 덧붙는 짧은 농담, 회의 자리에서 서로의 말을 끊지 않고 받아주는 리듬. 그런 것은 전혀 없는 곳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신뢰는 그래서 더 깊어진다.
상대를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만이 아니라, 내가 읽은 미세한 신호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기도 하니까.
문제는 사람의 마음보다 사람의 처지가 더 빨리 움직일 때 생긴다.
프로젝트 마감이 가까워질수록 분위기는 날카로워졌다. 위에서는 성과를 재촉했고, 아래에서는 실수가 날까 두려워졌다. 누군가는 자기 이름을 남기려 했고, 누군가는 책임만 피하려 했다. 민서는 밤마다 수정되는 전략안과 예산안을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주 사소해 보이는 균열 하나를 발견했다.
준호가 발표할 최종 문서의 핵심 문단 몇 개가, 그녀가 전날 밤 정리해 둔 내용과 거의 같았다. 표현만 조금 바뀌었을 뿐 구조와 논리는 그대로였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같은 팀이니까, 같이 만든 자료니까,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그러나 슬라이드 마지막의 핵심 제안 파트까지 넘기자 손끝이 식어갔다. 그 부분은 민서가 혼자 붙들고 다듬었던 문장이었다. 회의에서도 아직 공유하지 않았고, 준호에게 초안만 보여준 채 “조금 더 만져서 내일 아침에 같이 보자”고 했던 내용. 그런데 그 문장이, 그녀의 이름도 없이, 발표자 개인의 전략 제안처럼 정돈되어 있었다.
그녀는 처음에 이상하게 침착했다.
사람은 충격을 받으면 오히려 감정이 늦게 도착한다. 먼저 오는 것은 판단이다. 내가 잘못 본 건 아닐까. 무슨 맥락이 있었겠지. 아침에 같이 보자고 했으니 미리 다듬은 걸 수도 있어. 설명을 들으면 별일 아닐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목 뒤가 서늘해졌다.
민서는 그날 밤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거의 퇴근했고, 복도 불은 절반쯤 꺼져 있었다. 유리창 바깥에는 눈이 아니라 마른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는 빗줄기가 도로 위의 불빛만 흐리게 만들었다. 그녀는 준호 자리로 갔다. 모니터는 꺼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반쯤 마신 생수병과 펜 하나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너무 평범한 풍경이라서 더 어지러웠다. 배신은 늘 이런 식으로 온다. 특별한 얼굴을 하고 오지 않고, 늘 믿어온 일상의 한복판에서 갑자기 모양을 드러낸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준호에게 물었다.
“이 문서, 마지막 제안 부분 제가 쓰던 거죠?”
준호는 잠깐 그녀를 보았다. 그 잠깐이 이상하게 길었다. 놀란 것 같기도 했고, 이미 예상한 표정 같기도 했다.
“같이 만든 거잖아요.”
그는 조용히 말했다.
민서는 바로 대꾸하지 못했다.
같이 만든 거라는 말. 틀린 말은 아니면서도, 그래서 더 비겁하게 들리는 말.
“같이 만들었어도,”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이건 어제 제가 따로 정리하던 부분이었어요. 같이 보자고 했고요.”
준호는 한숨 비슷한 숨을 내쉬었다.
“민서 씨, 지금 이거 누가 썼는지가 그렇게 중요해요?”
그 문장을 듣는 순간 그녀는 이상하게도 가장 먼저 창문을 봤다. 아침 햇빛도 들지 않는 흐린 날이었고, 유리창엔 밤새 맺혔던 습기가 아직 조금 남아 있었다. 누가 썼는지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말은, 사실 누가 상처받는지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말과 닮아 있었다. 중요한 건 결과고, 성과고, 통과되는 발표고, 살아남는 사람들의 자리라는 뜻처럼 들렸다.
“저한테는 중요해요.”
그녀가 말했다.
준호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너무 피곤한 사람처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위에서 제 이름으로 정리하라고 했어요. 발표도 제가 하고, 책임도 제가 진다고.”
“그래서요?”
“그래서 그냥 그렇게 한 거예요.”
그냥 그렇게 한 거예요.
배신이 정말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그것이 종종 놀랍도록 단순한 문장으로 설명된다는 사실 때문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악의나 치밀한 음모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했다는 식의 무심한 인정. 그 무심함 앞에서 상처받은 쪽의 감정만 과장된 것처럼 남는다.
민서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믿어온 것은 준호의 행동만이 아니었다. 그 행동에 자신이 부여한 의미까지 믿고 있었다는 것을. 그가 말을 아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는 꼭 필요한 순간에만 자기에게 유리한 말을 고르는 사람이었는지도 몰랐다. 배려라고 여긴 침묵은 책임을 모호하게 만들기 위한 습관이었을 수도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이 거짓이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그는 정말로 몇 번은 자신을 걱정했을 것이고, 몇 번은 다정했을 것이고, 몇 번은 함께 밤을 버티는 동료로서 진심을 보였을 것이다. 사람은 대개 완전히 거짓이어서 배신하지 않는다. 진심과 계산이 한 몸처럼 섞여 있기 때문에 더 오래 속고, 더 늦게 깨닫는다.
프로젝트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발표는 성공적이었고, 회사는 들뜬 얼굴들로 가득했다. 대표는 준호의 이름을 여러 번 불렀고, 사람들은 그를 축하했다. 민서도 그 자리에 있었다. 박수를 치는 손바닥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소리는 분명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데, 감각은 한참 떨어진 곳에서 늦게 따라오는 것 같았다. 축하의 순간에는 누구도 무엇이 어떻게 넘어갔는지 묻지 않는다. 성과는 늘 표면만 반짝이고, 그 아래에서 닳아버린 마음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날 저녁, 사무실은 오랜만에 일찍 비워졌다. 사람들은 회식하러 갔고, 민서는 가지 않았다. 비가 다시 내리고 있었다. 낮보다 더 굵고, 더 오래 묵은 비였다. 건물 현관 앞에 서자 젖은 겨울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그녀는 우산을 펴지 않은 채 한동안 서 있었다. 비는 머리카락과 코트 어깨를 천천히 적셨다. 금방이라도 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상처가 너무 정확하면 오히려 눈물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은 건조함이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갈라지는 소리. 이제 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마른 감각.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준호였다.
“민서 씨.”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미안해요.”
그가 말했다.
그 문장은 비 속에서 이상하게 가벼웠다. 아니, 가볍다기보다 너무 늦었다. 미안하다는 말이 무효한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사과는 잘못을 되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안의 불편을 덜기 위해 도착한다. 민서는 그 차이를 구분할 나이가 되어 있었다.
“뭐가요?”
그녀가 묻자 준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상처받을 줄 몰랐어요.”
민서는 그제야 돌아봤다.
빗물 때문인지 가로등 때문인지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흐려 보였다. 그런데 그 문장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분노보다 피로가 먼저 왔다. 그렇게까지 상처받을 줄 몰랐다는 말. 그 말 속에는, 상대가 아픈 것은 예상 밖이었다는 무심함이 들어 있었다. 자신은 그저 현실적으로 판단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마음에 두느냐는 종류의 거리. 배신은 사건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이해 부족이 두 번째 금을 낸다.
“준호 씨는,” 민서가 천천히 말했다. “늘 남는 건 행동이라고 했죠?”
비가 우산 없이 두 사람 사이로 내리고 있었다.
“맞아요. 그래서 이제 알겠어요. 말이 아니라 행동이 남는다는 거.”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민서는 그를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어떤 실망은 얼굴을 많이 볼수록 더 초라해진다. 한때 믿었던 사람이 갑자기 낯선 타인이 되는 순간, 사람은 상대를 잃는 동시에 자기 안의 어떤 순진함도 함께 잃는다. 그녀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문장을 도둑맞은 일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사람을 읽는 눈을 조금 믿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믿음이 이렇게 쉽게 비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로 두 사람은 같은 팀에 있었지만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민서는 필요한 말만 했고, 준호도 더는 늦은 커피를 건네지 않았다. 사무실의 공기는 그대로였고, 프린터는 여전히 시끄러웠고, 사람들은 마감에 쫓겼다. 세상은 놀라울 만큼 빨리 아무 일도 없었던 얼굴을 한다. 배신을 당한 사람만 시간이 느려진다. 같은 책상, 같은 회의실, 같은 복도인데도 모든 것이 어딘가 어긋나 보인다. 손잡이가 달라진 문처럼,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차이가 자꾸 마음을 걸리게 한다.
겨울은 생각보다 오래 갔다.
민서는 한동안 사람들의 친절을 곧이곧대로 받지 못했다. 누가 자료를 대신 정리해주겠다고 하면 이유부터 생각했고, 누가 고생 많았다고 말하면 그 말이 어떤 책임 회피의 전조는 아닌지 의심했다. 신뢰가 깨진 뒤의 사람은 예민해진다. 이전과 똑같은 온도로 오는 말들도 더 차갑게 느끼고, 멀쩡한 손길에도 순간 몸을 굳힌다. 그것은 성격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무너진 자리를 다시 밟지 않으려는 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완전히 믿지 않는 쪽으로는 오래 살 수 없다는 사실이다.
봄이 왔을 때, 사무실 창문이 반쯤 열렸다. 누군가 답답하다며 잠깐 환기를 시켰고, 바깥 공기가 종이 더미 사이로 스며들어 왔다. 겨울 내내 눌려 있던 먼지 냄새 위로 젖은 흙과 어린 잎의 냄새가 얇게 얹혔다. 민서는 문득 그 냄새를 맡다가 알 수 없는 마음이 되었다. 계절은 배신 같은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늘 자기 순서대로 왔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오래 겨울을 붙잡고 있든, 봄은 결국 문틈으로 먼저 들어왔다.
그 무렵 팀에 새로 들어온 인턴 하나가 있었다.
서류 정리가 서툴렀고, 엑셀 수식도 자주 틀렸다. 그러나 틀릴 때마다 숨기지 않고 바로 물어보았다. “이거 제가 잘못 본 것 같아요.” “다시 해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수정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얼굴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민서는 처음엔 거리를 두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곧 신뢰의 일부를 건네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어느 날 그 인턴이 퇴근 직전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배님, 지난번에 알려주신 방식으로 다시 해봤는데 맞는지 봐주실 수 있을까요?”
그 말에는 과장도 계산도 없었다. 다만 배우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과, 상대가 알려준 것을 믿고 다시 해봤다는 작은 의지가 있었다. 민서는 그 파일을 열어보았다. 서툴지만 성의가 있었고, 틀린 부분보다 고치려 한 흔적이 먼저 보였다.
그 순간 그녀는 알았다.
신뢰는 한 번 깨졌다고 영원히 끝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만 예전과는 다른 속도로 자란다는 것을. 이전에는 무심코 건네주던 것을 이제는 더 천천히 건네게 되고, 전보다 더 오래 살펴보게 되며, 말보다 오래 지켜본 행동 위에만 조심스럽게 올려놓게 된다는 것을.
배신은 사람 안의 순진함을 앗아가지만, 믿을 능력까지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그것까지 사라지면 사람은 너무 메마른 곳에서 살아야 하니까.
몇 달 뒤 준호는 다른 부서로 옮겼다. 특별한 작별 인사도 없었다. 인사 메일 한 통, 형식적인 악수 몇 번, 다들 잘 지내라는 문장. 민서는 그 메일을 오래 보지 않았다. 그가 떠난 자리는 의외로 조용했다. 누군가 없어진 뒤에도 프린터는 계속 돌아가고, 회의는 계속 열리고, 커피는 여전히 쓰다. 사람의 부재는 대개 소리 없이 스며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습관의 빈자리로 드러난다. 민서는 한동안 그가 앉던 자리를 무심히 보곤 했지만, 차츰 그러는 일도 줄어들었다.
다 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더는 같은 방식으로 아프지 않았다.
어느 초여름 저녁, 퇴근하려고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낮에 내린 비가 막 그친 뒤라 도로는 아직 젖어 있었고, 가로수 잎에서는 늦은 물방울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공기에는 젖은 콘크리트와 풀 냄새가 섞여 있었다. 민서는 우산을 접어 가방 옆에 끼운 채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흐린 구름 뒤로 남은 빛이 아주 엷게 번져 있었다. 그 빛은 환하다고 하기엔 부족했고,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기엔 아직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때 그녀는 문득 신뢰와 배신이 조금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둘 다 상대에게 내 안의 어떤 방을 열어주는 일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면, 신뢰는 그 방 안에 조용히 앉아주는 것이고, 배신은 그 방의 구조를 다 보고도 가장 약한 쪽을 밟고 나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래서 배신은 단지 실망이 아니라 침범에 가깝다. 한 번 허락했던 문을 다시 닫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하니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 방이 한 번 잘못 열렸다고 해서 영영 봉인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몰랐다.
문은 다시 열릴 수 있다. 다만 예전처럼 활짝은 아닐 것이다. 바람의 방향을 한 번 더 살피고, 문밖의 발소리를 조금 더 오래 듣고, 손잡이를 쥔 손에 더 많은 감각을 남긴 채 천천히 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이전보다 덜 순진하지만, 어쩌면 더 진실한 방식일지 모른다.
민서는 길가에 잠시 멈춰 서서 빗물에 젖은 보도블록을 바라보았다.
물 위에는 희미한 하늘과 건물 불빛이 뒤섞여 비치고 있었고, 누군가 급히 지나가며 만든 파문이 그 반짝임을 잠깐 일그러뜨렸다 다시 가라앉혔다. 사람 마음도 어쩌면 그와 비슷했다. 한 번 크게 흔들리면 영영 망가진 줄 알지만, 시간이 지나면 표면은 다시 조용해진다. 물론 이전과 완전히 같은 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다. 그저 한 번의 흔들림을 기억하는 물이 되는 것이다.
그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젖은 공기 속에서 신호등 불빛이 초록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안다.
신뢰는 누군가를 끝까지 의심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의심할 이유가 생겨도 한 번쯤 더 지켜볼 수 있는 용기와 관련 있다는 것을. 그리고 배신은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그 이후 내가 세상을 대하는 결까지 바꾸어놓는다는 것을. 그래서 어떤 배신은 오래 남는다. 한때 내가 믿었던 나 자신의 눈까지 흔들어놓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결국 다시 누군가를 믿게 된다.
완전히 회복되어서가 아니라, 완전히 닫힌 채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상처를 모르는 사람처럼이 아니라, 상처의 모양을 아는 사람으로서. 더 조심스럽고, 더 천천히, 그러나 끝내는 다시.
바람이 불었다.
가로수 끝에 맺혀 있던 물방울 몇 개가 한꺼번에 떨어졌다. 그것들은 아주 잠깐 빛을 머금었다가 이내 보도블록 위로 스며들었다. 민서는 그 작은 낙하를 바라보았다. 어떤 것은 떨어지기 전에 반짝이고, 어떤 것은 반짝였기 때문에 더 또렷하게 떨어진다. 신뢰도, 배신도, 아마 그런 식으로 사람 안에 남는 것인지 몰랐다.
아주 조용하게.
아주 깊게.
다시는 아무 일도 없었던 때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가의 말

마흔이 넘는 동안 배신은 몇 번이나 지나갔지만, 한 번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사람을 믿는 쪽에 남아 있다. 배신을 지나온 사람에게, 이 글이 아주 조금은 덜 아픈 쪽으로 기울기를 바란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