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랑

초봄의 운동장

by 윤담

삼월의 아침은 늘 어딘가 덜 깨어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해는 떴는데 공기에는 아직 밤의 냄새가 남아 있었고, 햇빛은 유리창에 닿아 번지면서도 완전히 따뜻해지지 못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바람은 얇은 커튼을 조금씩 흔들었고, 식탁 위에 놓인 이름표와 새 실내화와 노란 알림장 위를 지나며 아주 조용한 소리를 냈다. 이제 막 시작되는 계절이라는 것은 대개 그렇게 미완의 감촉으로 먼저 오는 법이었다. 다 온 것 같지만 아직 다 오지 않은 상태. 아이를 키운다는 것도 어쩌면 늘 그런 시간 속에 서 있는 일인지 몰랐다. 다 자란 것 같다가도 금세 다시 품 안의 체온처럼 느껴지고,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는 사이 아이는 어느새 혼자 문을 열고 나가버리는 쪽으로 조금씩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민호는 식탁 앞에 앉아 국을 식히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숟가락으로 달걀국 안의 파를 건져내고 있었다. 쓸데없이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 나이의 아이들이 가끔 보여주는, 세상을 아직 다 모르지만 자기 앞에 놓인 문제만큼은 끝까지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표정. 여섯 살까지는 파를 한번에 삼켜버리던 아이가 일곱 살이 되고, 겨울이 지나 여덟 살이 되더니 파를 골라내는 법부터 배웠다. 사람은 그렇게 이상한 순서로 컸다. 큰 것부터 배우는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한 취향과 거절부터 먼저 배우는 식으로.
“다 못 먹겠으면 남겨도 돼.”
그가 말하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학교 가는 날인데 남기면 안 될 것 같아.”
“왜?”
“그냥.”
아이는 대답하고 다시 국을 떠먹었다. 꼭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민호는 웃을 듯하다가 입술만 조금 움직였다. 아이의 이름은 준서였다. 오늘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는 날이었다. 정식으로 교문 안으로 들어가, 이제부터는 가족 말고도 더 많은 얼굴들 사이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는 날. 아이에게는 그저 새 가방을 메고 가는 날일지 몰라도, 부모에게는 더 이상 대신 들어가 줄 수 없는 장소가 생기는 날에 가까웠다.
아내 수진은 출근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입학식엔 같이 갔다가 바로 회사로 가야 했다. 둘 다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함께 가기로 했다. 수진은 넥타이를 매고 있는 민호를 힐끗 보고는 웃었다.
“당신이 입학하는 사람 같아.”
“그렇게 보여?”
“어제부터 괜히 분주하잖아. 연필 깎아놓고, 이름표 확인하고, 알림장 비닐까지 새로 씌우고.”
“혹시 빠진 거 있으면 안 되니까.”
수진은 잠시 민호를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을 거야.”
그 말은 준서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민호에게 하는 말이었다. 민호는 그걸 알았다. 그래서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괜찮을 거라는 말은 대개 정말 괜찮아서 하는 말이 아니라, 괜찮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감을 다독이기 위해 하는 말이었다.
준서는 새 운동화를 신고 현관 앞에 섰다. 발뒤꿈치를 몇 번 바닥에 두드리며 물었다.
“아빠, 학교 가면 다 친구가 돼?”
민호는 잠깐 대답을 고르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는 질문을 가볍게 하지만, 그 안에는 늘 세상을 처음 건너는 사람의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그 두려움 앞에서 어른은 함부로 단정하면 안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다 친구가 된다고 말해버리면 거짓말이 된다. 친구가 안 생겨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했다. 그러니 답은 늘 중간 어디쯤에 걸리게 된다.
“처음부터 다 친구는 아니지. 그런데 인사하다 보면 말하게 되고, 같이 놀다 보면 친해지기도 하고.”
“안 친해지면?”
“그럴 수도 있고.”
“그럼 어떡해?”
민호는 아이의 운동화 끈을 다시 한 번 묶어주며 말했다.
“그럼 또 다른 애한테 말 걸어보는 거지.”
준서는 한참 생각하다가 물었다.
“아빠도 어릴 때 그랬어?”
묻는 순간 민호의 손끝이 잠깐 멈췄다. 신발 끈의 매듭이 조금 비뚤어졌다. 그는 다시 고쳐 묶으며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응. 아빠도 어릴 때 그랬지.”
준서는 그 대답이 충분한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아직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민호의 안쪽 어디에선가 아주 오래된 문 하나가 미세하게 열리는 소리가 났다.
학교 앞은 일찍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양복을 입은 아버지들, 단정한 코트를 걸친 어머니들, 긴장한 얼굴로 꽃다발을 안고 있는 조부모들, 아직 제 몸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가방을 멘 아이들. 교문 위 현수막에는 입학을 축하한다는 문장이 걸려 있었고, 분홍색 풍선들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운동장 흙냄새와 새 책 냄새와 햇살에 데워진 플라스틱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민호는 그런 냄새를 맡으며 문득 자신의 입학식 날을 떠올리려 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날의 설렘이 아니라 운동장 한가운데 혼자 서 있던 어떤 오후였다.
그는 그 기억을 밀어 두고 준서의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았다. 손은 생각보다 작고 따뜻했다. 아이의 손은 늘 예상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불안할 때는 땀이 조금 배고, 신날 때는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가고, 졸릴 때는 손이 말없이 늘어졌다. 오늘의 손은 조용히 긴장하고 있었다. 제 작은 손 안에서 세상을 처음 쥐어보는 사람의 체온이었다.
입학식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교장선생님의 긴 축사, 담임선생님의 또렷한 인사, 아이들 이름이 차례로 불릴 때마다 어딘가에서 터져 나오는 가족들의 박수. 준서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아주 작게 “네” 하고 대답했다. 민호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기특함과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한꺼번에 올라오는 감정. 아이는 저렇게 작은 목소리로도 세상에 대답하고 있는데, 나는 앞으로 저 대답을 얼마나 오래 들을 수 있을까. 언젠가는 부모 대신 다른 세계가 아이의 이름을 더 자주 부르게 될 것이다. 친구가, 선생이, 좋아하는 누군가가, 나중에는 사회가. 부모는 점점 뒤로 물러나면서도 아이의 가장 가까이 있고 싶어 하는 이상한 존재였다.
교실 앞 복도에서 헤어질 시간이 왔을 때 준서는 민호의 소매를 한 번 붙잡았다가 놓았다.
“아빠는 여기까지만 와?”
“응. 여기까지만.”
“끝나면 바로 와?”
“응, 끝날 때 맞춰서 올게.”
준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바로 움직이지 못했다. 교실 안에서는 이미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고, 어떤 아이는 씩씩하게 가방을 내려놓으며 옆자리에게 먼저 말을 걸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금방 울 것 같은 얼굴로 교실 문을 붙들고 있었다. 준서는 문턱 앞에서 아주 잠깐 주저했다. 그 짧은 순간이 민호에게는 길게 늘어났다. 그가 대신 안으로 들어가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아이의 문턱은 언제나 부모가 함께 넘을 수 없는 방식으로 놓여 있었다.
“준서야.”
민호는 아이가 제 쪽을 볼 때까지 기다렸다.
“처음엔 다 낯설어. 그래도 괜찮아. 모르면 천천히 하면 돼.”
준서는 묻지 않았다. 정말 괜찮은지, 모두가 자기를 좋아할지, 자기가 실수하지 않을지.

그러나 아이들은 때때로 어른보다 더 빨리 어떤 사실을 받아들인다. 누구도 그런 것을 미리 알려줄 수 없다는 사실을.

준서는 작게 숨을 들이마시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 번 뒤를 돌아봤다. 민호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괜찮다고, 다녀오라고, 여기 있을 거라고 말하는 얼굴로.
그날 집으로 돌아와 아이가 없는 거실에 앉아 있으니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수진은 회사로 갔고, 그는 반차를 냈다. 식탁 위에는 아침에 준서가 끝내 먹지 못하고 남긴 멸치가 한 조각 있었고, 소파 밑에는 어젯밤 가지고 놀다 밀어 넣은 로봇 팔 한쪽이 보였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중심만 사라진 것 같았다. 그는 머그컵에 커피를 부어 식탁에 앉았다. 햇빛이 천천히 바닥으로 이동하는 동안, 오래 덮어두었던 기억 하나가 저절로 열렸다.
초등학교 2학년 봄이었다. 반별 피구를 하던 체육 시간. 그는 공을 잘 받지 못했고, 달리기도 느렸다. 팀을 나누는 순간부터 이미 분위기는 정해져 있었다. 누구와 같은 편이 될지 정하는 시간에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은 장난 섞인 어조로 “민호는 누가 데려갈래?” 하고 말했고, 운동장 한쪽에서 몇몇 아이들이 웃었다.

끝까지 남은 그는 가장 마지막에 어느 팀에 밀려가듯 들어갔다. 경기 중 공이 자기 쪽으로 굴러왔을 때, 그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주워 팀원에게 던졌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다.

공은 그대로 옆으로 빠졌고, 누군가 “쟤는 왜 맨날 저래”라고 말했다. 그 말은 큰 소리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또렷이 박혔다.

게임이 끝나고 운동장 끝 철봉 옆에 혼자 서 있었을 때, 친구들은 이미 다음 놀이를 시작하고 있었다. 아무도 왜 거기 혼자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날 집에 돌아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저녁 반찬이 마음에 안 드냐고만 물었고, 아버지는 뉴스 소리를 키웠다. 그는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말해도 달라질 게 없겠구나. 그 생각은 한 번 들러붙고 나서 오래갔다.
그 뒤로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먼저 나서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웃을 때도 분위기를 먼저 보고, 말할 때도 상대 표정을 살폈다.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는 버릇은 어른이 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회식 자리에서 무심코 나오는 농담 하나에도 몸이 먼저 굳었고, 누군가의 침묵을 자기 탓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이 남았다. 그는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내 아이는 나처럼 키우지 말아야지.

그러나 그 말은 늘 막연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화를 내지 않는 것, 말을 잘 들어주는 것,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그런 것들만으로 충분할까. 어쩌면 부모는 아이를 상처로부터 완전히 지켜줄 수 없고, 다만 상처를 입었을 때 돌아올 자리를 마련해 주는 정도밖에 못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 다시 갔을 때, 교문은 입학식 때보다 한결 가벼운 소음을 품고 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쏟아져 나왔다. 어떤 아이는 이미 친구 이름을 부르며 뛰어갔고, 어떤 아이는 알림장을 품에 안은 채 선생님 뒤에 꼭 붙어 있었다.

준서는 조금 늦게 나왔다. 처음엔 보이지 않아 민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다 교문 기둥 뒤에서 가방 끈을 고쳐 메는 작은 얼굴이 보였다. 아이는 민호를 발견하자 긴장을 풀듯 웃었다.
“어땠어?”
준서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상했어.”
“뭐가?”
“다 처음 보는 애들인데, 어떤 애는 엄청 말을 많이 하고 어떤 애는 아예 안 하고. 옆에 앉은 애는 나한테 지우개 빌려달라고 했어.”
“빌려줬어?”
“응. 근데 돌려받았어.”
준서는 그 사실이 꽤 중요한 것처럼 덧붙였다. 민호는 웃었다.
“다행이네.”
“근데 이름은 아직 잘 모르겠어. 민재인지 민준인지 헷갈려.”
“천천히 외우면 돼.”
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깐 걷다가 말했다.
“아빠.”
“응?”
“나 오늘 한 번도 안 울었어.”
민호는 그 말에 걸음을 늦췄다. 울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랑인 아이의 마음이 보였다. 울지 않았다는 말 안에는 울고 싶을 수도 있었다는 뜻이 숨어 있었다. 그는 그걸 모른 척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랬구나. 잘 버텼네.”
준서는 민호의 손을 한 번 잡았다가 곧 놓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에는 햇살이 기울고 있었고, 화단의 흙에서는 아직 덜 마른 물 냄새가 올라왔다.
며칠 동안 준서는 매일 조금씩 다른 이름들을 집에 가져왔다. 민재는 축구를 좋아하고, 도윤이는 장난이 심하고, 유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하람이는 급식에 나오는 당근을 다 남긴다고 했다. 학교라는 곳이 아이의 입을 통해 조금씩 구체적인 세계가 되어갔다. 민호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안도했다. 아이가 어딘가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는 안도. 그러나 안도라는 것은 대개 오래가지 않았다.
문제가 생긴 것은 입학한 지 삼 주쯤 지나서였다.
그날 준서는 평소보다 늦게 나왔다. 아이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뒤에야 교문 안쪽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이 이상하게 굳어 있었다. 가까이 오자 민호는 아이의 눈가가 조금 붉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 있어?”
준서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대개 이미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민호는 더 묻지 않고 함께 걸었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벗기고 손을 씻게 한 뒤, 간식으로 딸기를 씻어주었을 때도 준서는 말을 아꼈다. 씻은 딸기를 하나 집어 들고 오래 들여다보다가 반으로 베어 물었다. 아이가 무언가를 삼키듯 입안에서 오래 굴리고 있는 때가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저녁을 먹는 중에야 준서가 입을 열었다.
“아빠.”
“응.”
“오늘 애들이 나보고 이상하대.”
숟가락이 그릇 옆면에 닿아 작은 소리가 났다. 수진도 식탁에서 고개를 들었다. 민호는 곧장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괜찮다고 하면 너무 빨리 지워버리는 말이 될 것 같았고, 누가 그랬냐고 다그치면 아이는 더 움츠러들지도 몰랐다. 그는 먼저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준서는 울지는 않았지만 상처 입은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런 말을 듣는지 이해할 수 없는 표정.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어린 사람에게 특히 아픈 일이었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
준서는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
“모르겠어. 체육 시간에 내가 공을 잘 못 받았거든. 그래서 도윤이가 웃었어. 그랬더니 옆에서 다른 애들도 같이 웃고. 그러고 나서 쉬는 시간에 내가 교과서 찾고 있는데, ‘쟤 좀 이상해’라고 했어.”
민호는 목 뒤가 딱딱해지는 것을 느꼈다. 체육 시간, 공을 못 받고, 아이들이 웃고. 오래된 장면 하나가 불쑥 현재 위로 겹쳐졌다. 그는 자신이 지금 몇 살인지 순간 헷갈릴 정도로 그 기억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운동장 끝 철봉, 받아주지 않던 손, 쟤는 왜 맨날 저래, 그런 말들. 그는 아주 잠깐 자기 안에 있는 어린 자신이 되었다가, 눈앞의 준서를 보고 겨우 돌아왔다.
“그래서 준서는 뭐라고 했어?”
“아무 말 안 했어.”
“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그 말은 너무 정확해서 오히려 아팠다. 민호는 물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수진은 잠자코 준서의 등을 한번 쓸어주었다. 그 조용한 손길 덕분인지 민호는 자신의 목소리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아무 말 못 할 수도 있어. 갑자기 그런 말 들으면 원래 그래.”
준서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안심한 듯했지만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내가 진짜 이상한가?”
그 질문 앞에서 민호는 아주 오래 걸리는 문 하나를 열어야 했다. 스스로도 아직 완전히 답을 얻지 못한 질문을 아이가 먼저 하고 있었다. 그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아이 혼자 그 질문을 떠안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준서야. 사람은 다 조금씩 이상해.”
준서는 눈을 깜박였다.
“이상하다고?”
“응. 각자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잘하는 것도 다르고, 싫어하는 것도 다르고, 겁나는 것도 달라. 어떤 애는 말을 많이 하고 어떤 애는 조용하고. 그게 이상한 게 아니야. 그냥 다른 거지.”
“근데 애들이 웃었어.”
“그랬구나.”
민호는 그 문장을 그대로 받아주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사실을 지워버리는 위로가 아니라, 있었던 일을 정확히 인정해 주는 것이었다.
“애들이 웃어서 속상했지?”
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술이 조금 떨렸다. 그러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내일 학교 가기 싫어.”
민호는 가슴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 말. 아이를 키우는 동안 부모가 언젠가 듣게 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들으면 아무 준비도 안 되어 있는 말. 그는 그 순간 충동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가지 마. 하루 쉬자. 아빠가 선생님한테 말할게. 아니면 그 아이들 부모에게 따지러 가자. 무엇이든 해서 아이를 그 불편한 장소로부터 떼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충동 뒤에는 또 다른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대신 막아주기만 하면 준서는 스스로 자기 자리를 지키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법을 배운다는 게 정말 필요한 일일까. 아니, 어쩌면 필요하지 않아도 삶이 결국 그렇게 만든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날 밤, 준서를 재운 뒤 민호는 거실 창가에 서 있었다. 아파트 단지의 가로등 불빛이 바닥에 노랗게 번졌고, 놀이터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수진이 뒤에서 와 나란히 섰다.
“내일 담임선생님께 얘기할까?”
수진이 먼저 물었다.
민호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모르겠어.”
“모른다는 게 무슨 뜻이야.”
“말하면 당장 조금 나아질 수는 있겠지. 근데 그게 준서한테 진짜 도움이 되는 건지 모르겠어.”
수진은 잠시 침묵했다.
“당신은 너무 오래 참는 쪽으로만 생각할 때가 있어.”
그 말은 비난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 곁에서 본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진단에 가까웠다. 민호는 그걸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알아. 나도 내가 그런 사람인 거 알아. 그래서 더 모르겠어. 내가 겁나는 건, 내가 어릴 때 못 받은 걸 준서한테 무작정 주려다가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힘들게 할까 봐.”
수진은 천천히 말했다.
“중요한 건 애 대신 싸워주는 게 아니라, 준서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는 거 아닐까?”
민호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몰랐다.
다음 날 아침, 준서는 전보다 천천히 옷을 입었다. 평소에는 양말을 던져가며 서두르는 아이가 이날은 한 짝을 신다가 멈추고, 또 가방 지퍼를 닫다가 멈췄다. 민호는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 옆에 앉아 말했다.
“준서야, 오늘도 학교 가기 싫어?”
준서는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그래도 갈 거야?”
아이는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생각하다가 말했다.
“가야 하니까.”
그 대답이 어른스러워서 민호는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 그는 아이의 가방을 들어주며 말했다.
“아빠가 하나만 말해줄게. 누가 준서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거나, 자꾸 싫은 말을 하면 ‘그렇게 말하지 마’라고 말해도 돼. 그리고 힘들면 선생님께 말해도 돼. 그건 이르는 게 아니라 도와달라고 하는 거야.”
준서는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꼭 바로 말을 잘 못 해도 괜찮아. 집에 와서 아빠랑 엄마한테 말해도 돼. 혼자 들고 있지 않아도 돼.”
준서는 신발을 신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 아주 이상한 표정으로 민호를 봤다. 놀란 것 같기도 하고, 안심한 것 같기도 했다.
“아빠도 어릴 때 혼자 들고 있었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민호는 피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응. 많이 그랬어.”
“왜?”
“말하면 더 이상해질까 봐. 아무도 내 편 안 들어줄까 봐.”
준서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래서 아빠는 준서가 그랬으면 안 좋겠어.”
아이는 한참 후에야 조용히 물었다.
“그럼 아빠는 지금도 그게 무서워?”
민호는 웃었다.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은 대개 곧장 핵심으로 들어왔다.
“응. 지금도 무서워.”
“근데 아빠는 회사 가잖아.”
“그러니까 우리 준서도 갈 수 있을 거야.”
준서는 그 말을 듣고 입술을 조금 오므렸다. 우는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뭔가를 결심할 때 나오는 표정에 가까웠다.
그날 오후, 학교 앞에 도착한 민호는 이상하게 긴장했다.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보다가 준서를 발견했을 때 그는 본능적으로 아이의 표정을 먼저 읽었다. 준서는 어제처럼 굳어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환하게 웃지도 않았다. 다만 어딘가 조금 지친 얼굴로 걸어왔다. 민호가 묻기도 전에 아이가 먼저 말했다.
“아빠, 나 오늘 말했어.”
“뭐라고?”
“도윤이가 내 필통 가져가서 안 주려고 했거든. 그래서 내가 ‘그거 내 거야, 줘’라고 했어.”
민호는 놀라서 아이를 보았다. 준서는 계속 말했다.
“처음엔 안 줬어. 그래서 내가 또 말했어. ‘장난치지 마, 싫어’라고. 그랬더니 옆에 있던 민재가 ‘그만해’라고 했어. 그래서 돌려받았어.”
민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는 자기 하루를 설명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아주 작은 전환이 들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휘둘리기만 하던 위치에서, 자기 목소리를 조금 내본 아이의 하루. 그것은 사소해 보여도 결코 사소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그랬구나.”
그가 겨우 말했다.
“무서웠어?”
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근데 말하고 나니까 덜 무서웠어.”
민호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것이 목 안에 차오르는 걸 느꼈다. 그는 아이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자기 삶에서는 너무 늦게 배운 것을, 아이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며칠 뒤 준서는 다시 속상한 얼굴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자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빠, 현웅이가 오늘 혼자 있었어.”
“왜?”
“애들이 현웅이는 맨날 느리다고 같이 안 놀았어. 체육 시간에도 마지막에 남았어.”
민호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그래서?”
준서는 가방 끈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나는… 그냥 봤어.”
그 말 안에는 후회가 있었다. 민호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자기만 무사하면 된다는 안도와, 누군가 혼자 남는 것을 보았다는 찜찜함 사이에서 어린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보고 어떤 생각 들었어?”
“좀 이상했어.”
준서는 어제 배운 단어처럼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현웅이는 진짜 느리긴 한데… 그래도 맨날 혼자 있으면 싫을 것 같았어.”
민호는 말없이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조용히 말했다.
“준서도 전에 혼자 있는 기분 알지.”
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은 어떻게 하고 싶어?”
아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결정은 아직 마음속에서 다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민호는 억지로 답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친절해지는 법은 명령으로는 잘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다만 아이가 자기 안에서 그 마음을 끝까지 들여다보게 하고 싶었다.
다음 날 하교 시간, 준서는 교문을 뛰어나오며 말했다.
“아빠!”
“응?”
“나 오늘 현웅이랑 같이 있었어.”
아이의 얼굴은 햇빛을 정면으로 받은 것처럼 환했다.
“쉬는 시간에 현웅이가 또 혼자 있길래 내가 같이 도서관 갈래? 했어. 현웅이가 처음엔 아무 말 안 했는데 따라왔어. 그리고 책 보다가 공룡 좋아한대.”
준서는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현웅이는 느린 게 아니라 신발 끈을 잘 못 묶는 거래. 그래서 체육 시간마다 늦는 거였어. 내가 묶어줬어.”
민호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감동이라는 말로는 조금 부족한 무언가가 마음 안쪽을 가득 채웠다. 아이는 단지 상처를 이겨낸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통과해 다른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픈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타인의 외로움을 알아보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장이라는 것은 키가 크고 구구단을 외우는 일만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상처를 닫아버리는 쪽으로 자라고, 어떤 사람은 거기서 타인의 흔들림을 알아보는 쪽으로 자란다. 민호는 아이가 지금 후자의 길에 발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준서가 잠든 뒤 민호는 아이 방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한참 바라보았다. 잠들기 전 책을 읽다가 그대로 엎드려 잠든 모양이었다. 그 틈으로 보이는 아이의 어깨가 이전보다 넓어 보였다. 물론 실제로 넓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아이 안에 생긴 무언가가 몸의 윤곽마저 달라 보이게 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 이불을 끌어올려주었다. 베개 옆에는 오늘 학교에서 그린 그림이 놓여 있었다. 운동장에 아이 셋이 서 있었고,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신발 끈을 묶어주는 장면이었다. 사람 얼굴은 동그라미와 선으로 단순하게 그려져 있었지만, 묘하게 누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림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같이 있으면 덜 무섭다.
민호는 한동안 그 글씨를 보았다. 갑자기 시야가 흐려져 안경을 벗었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림을 다시 내려놓고 방을 나왔다.
학기 초가 지나고 봄은 점점 진해졌다. 학교 앞 벚나무에 잎이 오르고, 반팔을 입은 아이들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렸다. 준서는 이제 아침마다 스스로 양말을 챙기고, 수첩에 적힌 준비물을 확인했다. 가끔은 “아빠, 오늘은 데리러 안 와도 돼. 친구랑 같이 갈 수도 있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민호는 웃으며 “그래, 알겠어”라고 대답했지만, 이상하게 손끝이 비는 기분을 느꼈다. 아이가 자라는 것은 기쁜 일인데, 그 기쁨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조금의 상실이 섞여 있었다. 그 사실을 그는 이제야 제대로 이해하는 것 같았다.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제 세계를 갖는 것인데도, 부모의 마음은 그것을 늘 아주 미세한 이별로 받아들였다.
어느 금요일, 학교에서는 봄 운동회 겸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었다. 민호는 오전 회의를 미루고 학교에 갔다. 운동장 한쪽에는 작은 천막이 세워져 있었고, 아이들은 반별로 줄을 서서 공 굴리기와 이어달리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햇볕은 제법 따가웠고, 먼지 섞인 바람이 불 때마다 아이들 모자챙이 들썩였다. 민호는 학부모들 사이에 서서 준서를 찾았다.
준서는 반 아이들 틈에서 현웅이와 나란히 서 있었다. 사회자가 이름을 부르고 경기가 시작되자 아이들은 와아 하고 뛰어나갔다. 준서는 공을 몰고 달리는 종목에서 중간쯤으로 들어왔고, 현웅이는 역시 조금 느렸다. 그런데 아이들이 골대 앞에서 뒤엉켜 서두르는 순간, 준서는 먼저 도착할 수 있었는데도 뒤를 돌아 현웅이를 기다렸다. 그리고 자기 차례가 끝난 뒤에도 남아서 “천천히 와도 돼!” 하고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이상하게 또렷했다. 예전처럼 작은 목소리로 자기 이름에 겨우 대답하던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몇몇 아이들이 같이 “현웅아 빨리!” 하며 웃었고, 그 웃음은 놀림이 아니라 응원 쪽에 가까웠다. 현웅이는 얼굴이 빨개진 채 공을 밀고 들어왔다.
민호는 그 장면을 보다가, 아주 오래전 운동장 끝에 혼자 서 있던 아이를 떠올렸다. 받아주지 않던 공, 누구도 손 내밀지 않던 자리. 그 기억은 여전히 그의 안에 남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 조금 다른 색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과거는 지워지지 않았으나, 현재가 그 위에 다른 장면을 덧입히고 있었다. 어떤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아도, 그 위에 새로운 기억이 계속 쌓이면 더 이상 같은 모양으로만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는 그것이 구원이라면 구원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늦게 와도 괜찮은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아이를 보는 일. 한때 기다려주지 못해 울먹이던 자신의 시간을, 다른 형태로 건너가게 하는 일.
수업이 끝나고 학부모들이 하나둘 돌아갈 때 준서가 달려와 물었다.
“아빠, 나 어땠어?”
민호는 아이 이마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말했다.
“멋있었어.”
“나 4등밖에 못 했는데?”
“그거 말고도 멋있었어.”
준서는 무슨 뜻인지 바로 알지 못한 얼굴로 웃었다. 아이들은 대개 자신이 한 가장 중요한 행동을 잘 모를 때가 있다. 그것을 나중에야 기억하게 된다.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는 일, 자기보다 느린 사람을 기다려줬다는 일, 무서웠지만 말을 했다는 일. 그런 것들이 사람의 뼈대 어딘가에 조용히 붙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준서는 운동회 상품으로 받은 공책을 가방에서 꺼내 보였다.
“현웅이도 받았어. 근데 현웅이는 표지에 있는 우주 그림이 무섭대.”
“왜?”
“눈처럼 생긴 별이 있어서.”
민호는 웃었다.
“별이 무서울 수도 있구나.”
“응. 근데 나는 안 무서워.”
“왜?”
준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무서운 건 같이 보면 덜 무섭잖아.”
민호는 그 말 앞에서 더 이상 웃을 수만은 없었다.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아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떤 문장을 배워버렸다. 그것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부모의 말일 수도, 학교에서 겪은 하루하루일 수도, 제 손으로 묶어준 친구의 신발 끈일 수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이미 그 문장을 자기 삶 안에서 써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여름이 가까워질 무렵, 준서는 처음으로 혼자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오겠다고 했다.

학교와 집 사이는 큰길 하나와 작은 횡단보도 두 개만 건너면 되는 거리였다. 단지 안쪽이라 아주 위험한 편은 아니었지만, 민호에게는 아직 아이의 걸음이 너무 작아 보였다.
“정말 혼자 올 수 있겠어?”
“응. 친구랑 같이 올 거야.”
수진은 연습 삼아 한두 번 해보자고 했고, 민호는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어느 수요일, 그는 학교 앞이 아니라 집 앞 슈퍼 골목에 서서 아이를 기다리기로 했다. 준서가 그것을 알면 혼자 오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숨어서 보자는 계획이었다. 그는 골목 모퉁이 전봇대 뒤에 서서 시계를 몇 번이나 봤다. 아이가 늦기라도 하면 바로 달려갈 태세였다.
멀리서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준서와 현웅이었다. 둘은 책가방을 출렁이며 걸어오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준서는 전보다 조금 큰 사람처럼 보였다. 옆 친구와 무언가 열심히 이야기하며 손짓을 하고, 횡단보도 앞에서는 신호를 확인하고, 노란 선 뒤에 멈춰 서 있었다. 친구가 먼저 튀어나가려 하자 준서가 팔을 잡아당기며 “초록불 되고 가야지”라고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민호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이는 정말로 조금씩 자기 몸으로 세상을 건너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때였다. 준서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민호는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아이는 전봇대 쪽을 잠시 보더니, 이상한 표정으로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누군가 있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해주는 얼굴 같았다. 그리고 집 앞에서 현웅이와 헤어진 뒤, 현관문을 열기 전에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아빠 거기 있었지?”
민호는 결국 웃으며 나왔다. 준서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어?”
“그냥.”
아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빠 신발 소리 들렸어.”
민호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렇게 오래 숨어 있었는데도 아이는 이미 알아채고 있었던 것이다. 준서는 현관 앞에서 잠깐 민호를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근데 괜찮아. 처음이니까.”
처음이니까. 민호는 그 말이 아이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느새 위로의 문장이 반대 방향으로 건너오고 있었다. 보호받는 사람인 줄만 알았던 아이가, 이제는 부모의 서툼까지 알아보는 나이에 조금씩 들어서고 있었다.
그날 저녁, 민호는 준서와 함께 놀이터에 나갔다. 해가 늦게 지는 계절이라 모래밭 위에는 아직 황금빛이 남아 있었고, 그네 사슬은 저녁 바람에 미세하게 울렸다. 준서는 미끄럼틀을 한 번 타고 내려오더니 벤치에 앉은 민호 옆으로 와 물었다.
“아빠.”
“응?”
“나중에 내가 더 크면, 진짜 혼자 다녀도 돼?”
민호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연한 남색으로 넘어가는 빛 사이에 초승달이 얇게 걸려 있었다. 그는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은 늘 조금 늦게 나왔다.
“응. 언젠가는.”
“그럼 아빠는 안 불안해?”
민호는 웃었다.
“불안하지.”
“그래도 보내줄 거야?”
“그래야 하니까.”
준서는 그 말이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모를 얼굴로 모래를 툭툭 털었다. 그러다 아주 자연스럽게 민호의 손을 잡았다. 예전처럼 꼭 매달리듯 잡는 손이 아니었다. 잡았다가 놓을 줄도 아는 손이었다. 잠깐 기대는 사람의 손. 민호는 그 손을 가만히 마주 잡았다.
“근데 아빠.”
“응.”
“나 커도 집에는 올 거야.”
민호는 웃음이 나서 고개를 숙였다. 아이의 미래 계획은 대개 그날 저녁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만, 그 말은 이상하게도 마음 깊이 박혔다.
“그래. 와.”
“근데 친구 집도 갈 거야.”
“그건 가야지.”
“현웅이네도 가보고 싶어.”
“좋지.”
준서는 잠깐 침묵하다가 덧붙였다.
“현웅이가 오늘 나한테 그랬어. 처음엔 학교가 너무 무서웠는데, 이제는 조금 괜찮대. 내가 같이 있어줘서.”
민호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모를 것이다. 그 말이 아버지에게 얼마나 오래 남을지. 자기 한마디가 한 사람의 지난 시간까지 조금씩 흔들어 놓는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준서는 앞서 걷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스스로 멈춰 섰다. 차를 확인하고, 신호를 보고, 다시 민호 쪽을 돌아봤다. 그 눈빛에는 더 이상 입학식 날의 막막한 떨림만 있지 않았다. 물론 아이는 여전히 어렸고, 앞으로도 수없이 흔들릴 것이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날들 속에서 울기도 할 것이다. 어떤 날은 친구를 잃고, 어떤 날은 자기 잘못으로 누군가를 울릴지도 모른다. 성장이라는 것이 늘 아름답기만 한 일은 아니니까. 그러나 민호는 이제 알 것 같았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 앞의 모든 돌멩이를 치워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넘어졌을 때 자기 무릎을 털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믿게 해주는 것. 그리고 돌아와 말할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을 오래, 아주 오래 몸으로 기억하게 해주는 것.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었다. 준서는 민호의 손을 잡았다가, 건너기 시작하며 스스로 놓았다. 그리고 두세 걸음 앞서 가다가 뒤돌아보며 웃었다.
“아빠, 빨리 와.”
그 짧은 장면이 민호의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먼저 잡았다가 먼저 놓는 손. 그러나 완전히 멀어지지는 않는 거리. 앞서 가면서도 뒤돌아봐주는 얼굴. 아마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그런 순간들을 차곡차곡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몰랐다. 손을 놓는 연습이면서, 놓아도 사라지지 않는 관계를 믿는 연습. 자신은 어린 시절 그런 믿음을 오래 배우지 못했으나, 아이는 지금 그것을 제 발로 익혀가는 중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저녁 공기가 집 안에 천천히 번졌다. 준서는 가방을 내려놓고 곧장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수진이 부엌에서 돌아보며 물었다.
“오늘 둘이 데이트 잘했어?”
준서는 컵을 내려놓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응. 나 혼자도 할 수 있고, 같이도 할 수 있어.”
수진이 웃었고, 민호도 웃었다. 그 말은 아이답게 단순했지만, 이상하게 완전했다. 혼자도 할 수 있고, 같이도 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힘은 그 둘을 함께 품는 법인지도 몰랐다. 민호는 식탁 위에 놓인 알림장을 보다가 문득 손을 뻗어 준서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아이의 머리카락에서는 바깥 햇볕 냄새와 땀 냄새와 연필심 가루 같은 냄새가 났다. 살아 있다는 냄새였다. 부딪히며 하루를 통과해 온 냄새.
그는 생각했다. 내 아이를 나처럼 키우지 말아야지, 하고 오래 다짐해 왔지만 어쩌면 그 말은 조금 달라져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나처럼 상처받지 않게 키우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처럼 혼자 견디게 두지 않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상처는 삶에서 지울 수 없어도, 그 상처를 바라보는 눈과 돌아올 자리는 다르게 만들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아이는, 그 자리에서 이미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라고 있었다. 무서운 것을 무섭다고 말하고,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고, 혼자인 사람 옆에 앉아줄 줄 아는 사람으로.
창밖에는 초여름 직전의 바람이 나무 잎을 흔들고 있었다. 계절은 이렇게 조금씩 옮겨가고, 아이도 그렇게 자랄 것이다. 어떤 날은 너무 빠르고, 어떤 날은 더딘 것 같겠지만 결국은 자기 속도로. 민호는 그 사실을 완전히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두려움만으로 아이를 붙잡아두지 않기로. 그 대신 오늘처럼, 필요할 때는 손을 내밀고, 필요할 때는 한 발 물러서고, 뒤돌아보는 순간에는 언제나 거기 서 있기로.
준서는 방으로 들어가기 전 문간에서 한 번 더 말했다.
“아빠.”
“왜?”
“내일 현웅이가 우리 집에 와도 돼?”
민호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같이 와서 놀아.”
준서는 환하게 웃고 자기 방으로 뛰어갔다. 그 발소리가 복도를 지나가며 집 안에 퍼졌다. 민호는 그 소리를 듣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멀어지는 발소리인데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저렇게 뛰어가도, 저 아이는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는 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더 먼 데로 가게 되더라도, 아주 오래전 초봄의 운동장에서 배운 것들을 몸 어딘가에 간직한 채 살아갈 것이다. 같이 있으면 덜 무섭다는 것. 혼자도 할 수 있고, 같이도 할 수 있다는 것. 먼저 잡았다가도 스스로 놓을 수 있는 손이 있다는 것.
그 정도면, 부모로서 바랄 수 있는 일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인지도 몰랐다.




작가의 말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아이를 보며 내 어린 시절을 다시 만나게 된다.
이미 지나간 줄 알았던 장면들이, 다른 얼굴을 하고 다시 돌아온다.
운동장의 한쪽,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던 자리.
웃음 속에 섞여 있던 낯선 기척들.
그때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 말들은 오래 남아 몸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었다.
이상한 일은, 그 상처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그 상처가 아이에게까지 이어지는 듯 보인다는 데 있었다.
나는 그것을 막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한 걸음 먼저 나서서, 그 모든 장면을 대신 지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결국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아이의 세계에는 아이만 건너야 하는 문턱이 있고,
그 앞에서 부모는 늘 멈춰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손을 잡아줄 수는 있지만, 끝까지 잡고 있을 수는 없다.
말을 건넬 수는 있지만, 대신 대답해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무력해진다.
지켜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부모의 역할은
상처를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지나온 아이가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지켜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말하면 더 괜찮아지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아이의 몸 어딘가에 오래 남도록 만드는 일.
나는 여전히 그 과정이 두렵다.
내가 겪었던 것을 아이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때로는 납득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길을 함께 걸어갈 수밖에 없다.


윤담 배상.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