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랑

남해캠핑

by 윤담

남해로 내려가는 길 위에서, 준호는 몇 번이나 속도를 늦췄다.

앞차가 막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길은 비어 있었고, 계기판 위의 숫자는 조금만 더 밟으면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꾸만 발끝의 힘을 풀었다. 도시를 빠져나온 뒤부터 마음 한쪽이 이상하게 느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닿고 싶은 곳이 있는 여행이 아니라, 닿는 동안 조금씩 가벼워지고 싶은 여행. 이번 남해행은 애초에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며칠 전 회의실에서,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설명은 길어졌고, 길어질수록 자신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감각만 커졌다. 숫자와 일정과 보고서 사이를 오가며 하루를 보냈는데, 정작 왜 그렇게 분주한지는 입안이 텅 빈 것처럼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 질문을 던졌고, 그는 대답 대신 비슷한 말들만 빙빙 돌렸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그 공허한 감각은 오래 남았다. 자기 삶이 자기 손을 벗어나 너무 멀리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숨을 얕게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또렷하게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주말을 비워 두고 남해로 내려왔다.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도 아니고,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바다가 있는 쪽으로 가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남해가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곳의 바다가 늘 사람을 조금 느리게 만든다는 걸 오래전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해처럼 선명하고 곧장 밀려오는 푸름도 아니고, 서해처럼 넓고 탁하게 품어주는 결도 아닌, 남해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오래 남는 색. 산이 바다 가까이 내려와 있고, 바다는 다시 마을의 지붕 가까이까지 숨을 밀어 올리는 곳. 그곳에서는 풍경조차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조금씩 아껴져 있었고,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볼 수 있었다.

캠핑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다섯 시를 조금 넘긴 무렵이었다.

상주면 쪽 작은 해안도로를 지나 들어간 야영지는, 관광지라는 말보다 머무는 자리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입구에는 바랜 나무 간판이 하나 서 있었고, 그 뒤로는 작은 자갈길과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들, 그리고 멀리 바다가 푸른 유리처럼 눕혀져 있었다. 관리동 앞에 차를 세우자 주인이 느릿하게 걸어 나왔다. 이름을 확인한 뒤 그는 바다 쪽 끝자리 하나를 가리켰다.

“저쪽이 조용합니다. 별도 잘 보여요.”

준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를 몰아 끝자리로 갔다.

사이트는 크지 않았지만 딱 좋았다. 왼편으로는 소나무 두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고, 정면으로는 방파제 너머 바다가 보였다. 아직 해가 완전히 기울지 않아 물 위의 빛이 얇게 부서지고 있었다. 바람은 생각보다 세지 않았고, 습기도 과하지 않았다. 텐트를 치기에 좋은 저녁이었다. 그는 엔진을 끄고 잠시 그대로 앉아 있었다. 차 안의 정적과 바깥의 정적은 결이 달랐다. 차 안의 정적은 방금 전까지 이어져 온 생각들의 잔향이 남아 있었고, 바깥의 정적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짐을 내리기 시작하자 비로소 여행이 현실이 되었다.

트렁크를 열면 늘 같은 순서로 보이는 물건들이 있었다. 텐트 가방, 폴대 주머니, 매트, 침낭, 접이식 의자, 테이블, 쿨러, 버너, 코펠, 랜턴. 캠핑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이 반복 가능한 질서에 있었다. 복잡한 삶 속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조립할 수 있는 작은 세계. 어디에 무엇을 놓을지, 무엇을 먼저 하고 나중에 할지, 어떤 속도로 하루를 쓸지 전부 자기 손으로 정하는 시간. 도시에서는 이미 누군가 만들어 둔 구조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순간이 더 많았다. 회의 시간, 업무 순서, 휴대폰 알림, 답장해야 하는 메시지, 미뤄 둘 수 없는 연락들. 그러나 캠핑에서는 아주 작은 것들까지 직접 선택할 수 있었다. 바닥을 고르고, 폴대를 끼우고, 불을 켜고, 물을 끓이는 모든 행위가 ‘오늘’을 내 손으로 만든다는 감각을 되돌려 주었다.

텐트를 펼치자 접혀 있던 천이 땅 위에서 숨을 펴듯 넓어졌다.

준호는 먼저 바닥의 기울기를 살폈다.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경사라도 잠잘 때는 분명하게 몸으로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그는 신발 끝으로 자갈을 밀어내고, 튀어나온 돌을 주워 옆으로 치웠다. 텐트의 네 귀를 대충 맞춘 뒤 폴대를 연결했다. 알루미늄 마디들이 딸깍딸깍 맞물릴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구조는 늘 위안을 준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 서로 기대야 하는지 아는 것들은 인간보다 덜 복잡하고, 그래서 더 신뢰가 갔다.

폴대를 슬리브에 끼우고 천천히 휘어 올리자, 납작하던 천이 조금씩 입체를 얻기 시작했다.

한쪽 끝을 고정하고 반대편을 밀어 넣는 순간 잠깐 힘이 필요했다. 팔 안쪽 근육에 묵직한 긴장이 들어왔고, 텐트 천이 팽팽해졌다. 그 긴장 위로 둥근 지붕이 생겼다. 팩을 박을 때는 고무망치가 땅에 닿는 소리가 저녁 공기 속으로 짧게 번졌다. 탁, 탁, 탁. 소리는 단순했지만 이상하게 확실했다.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바닥에 못 박아 두는 소리 같았다. 스트링을 걸어 팽팽히 당기고 나니 텐트는 더는 임시의 천 조각이 아니라, 오늘 밤을 견딜 하나의 집이 되었다.

준호는 잠시 뒤로 물러나 자신이 세운 텐트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마음이 조금 놓였다.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 준 숙소에 체크인하는 편리함과는 다른 종류의 안도였다. 아주 작고 불완전한 공간이지만, 이것은 분명 자기 손으로 만든 울타리였다. 사람은 결국 자기 삶을 스스로 세워 올렸다는 감각을 잃을 때 가장 쉽게 지치는지도 몰랐다. 캠핑을 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걸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바깥으로 나와 매트를 깔고, 작은 버너에 물을 끓이고, 찬 바람을 견디는 이유. 편리함이 아니라 증명. 오늘 하루는 내가 만들었다는 단순하고도 오래된 확신을 몸으로 다시 만져 보기 위해서.

텐트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정리하는 일은 작은 의식을 치르듯 차분했다.

그는 그라운드 시트 위에 에어매트를 펴고 바람을 넣었다. 매트가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동안, 텅 비어 있던 내부가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해 갔다. 침낭을 꺼내 가장 안쪽에 펼치고, 베개 대신 사용할 작은 쿠션을 놓았다. 오른편 모서리에는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를 정리해 두고, 출입구 가까운 곳에는 랜턴과 휴지, 보조 배터리, 물티슈 같은 자잘한 것들을 손 닿는 자리에 배치했다. 랜턴을 천장 고리에 걸자 노란빛이 아직 켜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저녁의 기척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한 번 들어갔다 나와 보았다. 발바닥 아래 매트의 탄력이 느껴졌고, 텐트 천 사이로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아주 얇게 들렸다. 바깥은 바깥대로 광활했고, 안은 안대로 단정했다. 그 경계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조금 가라앉았다.

해는 조금 더 기울어 있었다.

저녁거리를 준비하기 전에 그는 캠핑장 근처 작은 어판장 쪽으로 잠시 걸어갔다. 남해까지 내려온 김에 이곳의 것을 먹고 싶었다. 여행이란 결국 풍경만 보는 일이 아니라, 그 풍경 속에서 자란 것을 몸 안에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했다. 작은 수산물 가게 수조 안에는 전복이 낮은 몸으로 붙어 있었고, 한쪽 얼음 위에는 멸치와 도다리, 손질해 놓은 문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준호는 전복 몇 마리와 멸치 한 봉지, 그리고 갓 무쳐 낸 유자 향 도는 멸치무침을 샀다. 옆 가게에서는 마늘과 상추, 작은 파채 한 팩을 집었다. 남해는 멸치와 유자로 기억되는 곳이었다. 바다와 햇빛, 바람이 만들어 낸 맛. 화려하진 않아도 오래 남는 맛.

캠핑장으로 돌아왔을 때 하늘은 분홍과 주황 사이에서 천천히 식고 있었다.

준호는 테이블을 펼치고 버너 위에 팬을 올렸다. 기름을 두르자 얇은 막이 생기며 저녁 햇빛을 잠시 받아 반짝였다. 먼저 다진 마늘을 넣었다. 마늘이 기름을 만나며 아주 미세한 소리를 냈다. 치익, 하고 번지는 향 속에는 이상하게도 마음을 느슨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 위에 전복을 올리자 껍질이 팬과 부딪히며 툭, 툭 소리를 냈고, 곧 버터 한 조각이 가장자리에서 천천히 녹기 시작했다. 버터가 마늘과 섞여 전복 위로 스며들자 바다 냄새와 고소한 향이 겹겹이 올라왔다. 그는 전복 살에 칼집을 넣어 뒤집었다. 익어 가며 가장자리가 살짝 오그라들었고 표면이 윤기 있게 빛났다.

옆 팬에는 멸치를 바삭하게 구웠다.

작은 몸들이 불 위에서 점점 더 가벼운 갈색으로 변해 갔다. 마치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시간이 그 짧은 열 위에서 다시 한 번 정리되는 것 같았다. 상추를 씻어 접시에 놓고, 멸치무침을 덜어 곁들였다. 여기에 차게 식혀 온 막걸리 한 병을 꺼냈다. 본격적인 밤이 오기 전, 하루의 노동 같은 준비를 끝내고 먹는 첫 한 점. 준호는 그 시간을 유난히 좋아했다. 뭔가를 대단히 해낸 것도 아닌데 괜찮은 보상을 받은 듯한 감각. 살아 있다는 건 결국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에게 작은 저녁을 차려 주는 일인지도 몰랐다.

전복 한 점을 입에 넣자 짭조름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천천히 퍼졌다.

조개도 생선도 아닌 전복 특유의 단단한 탄력이 오래 씹히다가, 끝내는 버터의 고소함과 함께 풀렸다. 바삭해진 멸치는 손끝으로 집어 먹을수록 자꾸만 손이 갔다. 멸치무침에는 유자 향이 아주 은근하게 배어 있었다. 강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바다의 짠맛이 먼저 오고, 그 뒤에 늦게 다가오는 밝은 향. 준호는 막걸리를 한 잔 따라 천천히 마셨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서늘한 감각과 함께 하루의 속도가 더 늦어졌다. 바로 옆 사이트에서는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다녔고, 조금 더 멀리서는 누군가 장작을 쪼개는 소리가 들렸다. 각각 다른 저녁들이 같은 바다 옆에서 동시에 익어 가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 그는 물을 조금 데워 설거지를 했다.

캠핑에서는 이런 자잘한 수고마저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일들이 하루를 더 분명하게 만들었다. 도시에서는 버튼 하나로 끝나는 과정들이 여기서는 손을 거쳐야 했다. 손을 거친다는 건 시간을 들인다는 뜻이었고, 시간을 들인다는 건 대개 애정을 뜻했다. 편리함은 시간을 줄여 주지만, 때로는 마음이 머무를 자리까지 함께 줄여 버린다. 반대로 불편은 사람을 잠시 멈추게 하고, 멈춘 사이에 자기 마음이 어디쯤 와 있는지 보게 만든다. 캠핑은 그래서 좋았다. 귀찮은 일들이 오히려 생각을 씻어 냈다. 불을 붙이기 위해 몸을 숙이고, 물을 길어 오고, 컵을 닦고, 랜턴의 밝기를 조절하는 동안 머릿속의 잡음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삶이 이렇게 단순한 순서로만 흘러가도 충분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나자 하늘은 빠르게 깊어졌다.

준호는 사이트의 메인 랜턴을 끄고 작은 무드등만 켜 두었다. 주위의 빛이 약해질수록 바다는 더 넓어 보였다. 수면은 어둠 속에서 하나의 색으로 잠기고 있었지만, 파도 소리만은 오히려 낮보다 선명해졌다. 그는 의자를 뒤로 조금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은 한꺼번에 나타나지 않았다. 몇 개가 먼저 떠오르고,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수록 그 사이의 빈칸에서 또 다른 것들이 조용히 드러났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사실은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는 사실이 늘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었다.

그는 한참 동안 말없이 별을 보았다.

하늘은 깊다기보다 겹겹이 쌓인 투명한 층 같았다. 가까운 별과 먼 별, 이미 사라졌는데 아직 빛이 도착 중인 것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름 없이 떠 있는 수많은 점들. 인간의 근심은 늘 가까이서 보면 전부 같지 않고, 멀리서 보면 전부 비슷했다. 그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파도 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텐트 천을 스치고, 소나무 향이 아주 엷게 지나갔다. 그렇게 앉아 있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서 조금 떨어지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던 마음을 적당한 거리에서 다시 보기 위해. 캠핑은 그 거리를 만드는 가장 원시적이고 다정한 방식이었다. 몸을 조금 불편하게 두는 대신, 마음을 조금 편하게 둘 수 있는 방식.

별을 보다가,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성호 형. 예전 회사에서 근무할 때 자주 어울리던 형이었다. 일이 끝나면 늦은 저녁 국밥집에서 소주를 마셨고, 서로 사는 이야기를 길게도 짧게도 나누던 사이. 그러다 각자 바빠졌고, 어느새 연락은 뜸해졌다. 그래도 완전히 끊어진 적은 없는, 그런 인연. 몇 달 전 누군가를 통해 성호 형이 남해 쪽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자세한 사정은 몰랐지만, 바다가 좋다던 형의 얼굴이 어쩐지 이곳 풍경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준호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예전 같으면 괜히 뜬금없지 않을까 한 번 더 망설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런 밤에는 생각나는 사람에게 그냥 전화를 걸어도 될 것 같았다. 그는 번호를 눌렀다. 몇 번 신호가 울린 뒤, 익숙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준호야.”

그 한마디에 시간의 공백이 조금 접히는 느낌이 들었다.

“형. 잘 지내셨어요?”

“응, 잘 지냈지. 웬일이야.”

“그냥… 남해까지 내려왔어요. 바다 보면서 캠핑하다가 형 생각나서요.”

전화기 너머로 짧은 웃음이 들렸다.

“그래? 어디쯤인데?”

준호가 캠핑장 근처 지명을 말하자 성호 형은 잠시 놀란 듯 말했다.

“야, 거기 우리 집에서 진짜 가깝다. 차로 한 십오 분이면 가.”

“진짜요?”

“응. 여기 내려온 지도 좀 됐어. 너는 또 말도 없이 내려왔네.”

준호는 바다 쪽을 보며 웃었다.

“그냥 바람 좀 쐬고 싶어서 왔어요.”

“좋지. 잠깐 들를까?”

준호는 그 말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좋았다. 억지스러운 안부도, 과한 반가움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말.

“오세요. 술은 조금 있어요.”

“우리 집에도 좀 있다. 형수랑 같이 갈게.”

전화를 끊고 나니 사이트의 공기가 약간 달라져 있었다.

혼자 있을 때의 고요가 있었다면, 이제는 누군가가 올 것을 아는 기다림의 고요였다. 준호는 남은 전복을 몇 점 더 손질하고, 멸치무침을 작은 접시에 덜어 두었다. 집에서 챙겨 온 김치와 과일도 꺼냈다. 버너의 가스를 다시 확인하고, 의자를 하나 더 펼쳤다. 작은 준비들이 자리를 다정하게 만들었다. 사람을 맞는다는 건 결국 공간을 조금 더 넓게 쓰는 일이다. 내 하루 안에 타인의 체온이 앉을 자리를 하나 비워 두는 일.

잠시 후 멀리서 헤드라이트가 천천히 가까워졌다.

회색 SUV 한 대가 사이트 옆 공터에 조심스럽게 멈췄다. 운전석에서 성호 형이 내렸고, 조수석에서는 형수가 따라 내렸다. 형은 예전보다 조금 더 살이 빠져 있었지만 웃을 때 눈꼬리가 접히는 모양은 그대로였다. 형수는 얇은 카디건 위로 바람막이를 걸치고 있었고, 손에는 작은 종이봉투 하나를 들고 있었다.

“야, 진짜 오랜만이다.”

성호 형이 다가와 준호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그 힘의 크기까지 반가웠다.

“형, 진짜 오랜만이에요.”

“그러게. 네 얼굴 보니까 시간이 참 묘하다.”

형수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준호 씨. 얘기 많이 들었어요.”

“형수님, 처음 뵙겠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수는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안에는 남해 유자막걸리 한 병과 마늘빵 비슷한 안주가 들어 있었다.

“빈손으로 오기 좀 그래서요. 근처 빵집에서 샀는데 괜찮더라고요.”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의자에 둘러앉았다.

준호가 전복을 다시 팬에 올리자 마늘과 버터 향이 다시 번졌다. 성호 형은 가져온 유자막걸리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여기 살다 보니까 이런 걸 자꾸 먹게 되더라.”

잔에 막걸리를 따르자 연한 크림색 액체 위로 아주 희미하게 유자 향이 떠올랐다. 셋은 조용히 잔을 맞댔다. 맑은 유리 소리가 밤공기 안에서 짧게 떨렸다.

“근데 남해까지 어쩐 일이야?”

성호 형이 먼저 물었다.

준호는 잠시 웃었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그냥 좀 쉬러 왔어요. 일은 계속 하고 있는데, 내가 뭘 위해 이렇게 사는 건지 잘 안 잡히더라고요.”

성호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형수는 잔을 내려놓고 바다를 한 번 바라본 뒤 조용히 말했다.

“그럴 때 있죠. 열심히 사는데, 이상하게 마음만 자꾸 조급해질 때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준호는 속으로 한 번 천천히 되뇌었다. 이상하게 마음만 자꾸 조급해질 때. 그것이야말로 요즘 자기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었다.

성호는 남해로 내려오게 된 이야기를 조금 들려주었다.

도시에서 오래 살다가 어느 순간 더는 버티는 속도로만 살고 싶지 않았다고. 큰 결심이라기보다, 자꾸만 작은 경고들이 쌓였다고 했다. 몸이 자주 피곤했고, 집에 가도 마음이 쉬지 않았고, 쉬는 날에도 내일의 표정으로 하루를 보냈다고. 그러다 남해에 잠시 왔다가 이상하게 잠이 잘 들었고, 그 한 번의 잠이 인생을 좀 바꿨다고 했다.

“대단한 이유는 없어. 그냥 여기서는 내가 좀 덜 마모되는 것 같더라.”

형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준호는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삶의 목표가 늘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듯한 태도. 더 많이 성공하는 삶이 아니라, 덜 마모되는 삶. 어쩌면 나이가 들어가며 사람은 자꾸만 그쪽의 가치를 알아보게 되는지도 몰랐다.

형수는 빵을 뜯어 접시에 나누며 말했다.

“처음엔 저도 걱정했어요. 여기 와서 뭐 하면서 살지, 심심하지는 않을지. 근데 막상 살아 보니까 심심한 게 아니라 비어 있는 시간이 생기더라고요. 그 시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보게 되고요.”

우리가 말을 멈출 때마다 형수의 웃음은 이상하게 시간을 부드럽게 이어 주고 있었다.

어색한 정적이 아니라, 쉬어 가는 쉼표 같은 침묵이 몇 번이나 테이블 위에 내려앉았다. 그 사이로 파도 소리가 들리고, 멀리 다른 사이트에서 누군가 웃는 소리가 흘러왔다. 전복은 노릇하게 익었고, 유자막걸리는 천천히 바닥을 드러냈다.

성호 형은 전복을 집어 먹으며 말했다.

“그래도 너, 캠핑 잘 왔다. 이런 거 하고 있으면 삶에 좀 생기가 돌잖아.”

준호는 웃었다.

“저도 그 생각했어요. 텐트 치고, 밥 해 먹고, 별 보고 있으니까 별거 아닌데도 좀 사는 것 같더라고요.”

“별거 아닌 게 원래 제일 중요한 거죠.”

형수가 그렇게 말하자 셋이 동시에 웃었다.

별거 아닌 것들이 사람을 살게 한다는 말은 너무 자주 들어서 평범해졌지만, 정작 몸이 지칠 때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도 그런 것들이었다. 제때 먹는 저녁, 해가 지는 걸 보는 일, 마음 편한 사람과 한 잔 나누는 시간, 오늘의 피로를 내일로 억지로 미루지 않는 태도. 살아간다는 건 사실 거창한 성취보다 그런 자잘한 충만을 얼마나 자주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몰랐다.

술이 몇 잔 더 돌고 이야기는 예전으로도, 지금으로도 흘렀다.

젊었던 시절의 허술한 패기, 갑자기 떠난 출장, 새벽까지 이어지던 술자리, 한때는 서로의 하루를 너무 잘 알아서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던 시간들. 예전에는 술잔을 몇 번 비우면 그들은 서로의 인생을 거의 다 아는 것처럼 말하곤 했다. 지금은 각자 모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지만, 이상하게 그것이 관계를 더 가볍고 편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모든 것을 다 알아야 친한 것이 아니라, 모르는 시간을 존중할 수 있을 때 오래가는 사이가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느 순간 셋 다 말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은 조금 더 또렷해져 있었다. 성호 형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저게 북두칠성 아니냐고 했고, 형수는 전혀 모르겠다고 웃었다. 준호도 별자리는 잘 몰랐다. 하지만 이름을 몰라도 충분했다. 중요한 건 저것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둠이 깊을수록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 삶에도 그런 종류의 진실이 있었다. 힘든 시기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얼굴들, 바쁘지 않을 때만 들리는 마음의 소리, 조금 외로워져야 비로소 알게 되는 관계의 온도.

밤공기가 조금 차가워질 무렵, 성호 형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가야겠다. 너도 좀 쉬어.”

형수도 천천히 잔을 정리하며 웃었다.

“다음에는 낮에 봬요. 같이 밥 먹어요.”

준호는 두 사람을 배웅하며 말했다.

“오늘 진짜 좋았습니다. 많이 좋았어요.”

성호 형이 차 문을 열다 말고 돌아봤다.

“가끔 와라, 준호야. 오늘 진짜 반가웠다.”

준호는 대답 대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떠나고 난 뒤, 사이트에는 다시 고요가 내려앉았다.

그런데 처음의 고요와는 달랐다. 이제는 누군가 머물다 간 자리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빈 잔의 자국, 접시 가장자리에 남은 소스, 의자 하나가 약간 돌아가 있는 각도까지도 방금 전의 웃음과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은 혼자 쉬러 떠났다가도 결국 사람에게 위로받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혼자여야 들리는 소리가 있고, 함께여야만 가라앉는 마음이 있다. 그 둘이 번갈아 와야 비로소 삶은 너무 기울지 않는다.

준호는 남은 불을 약하게 줄이고 텐트 앞에 다시 앉았다.

바다는 여전히 같은 리듬으로 숨 쉬고 있었다. 오늘 하루를 천천히 더듬어 보니, 특별한 사건은 많지 않았다. 남해까지 내려왔고, 텐트를 쳤고, 전복과 멸치를 구워 먹었고, 별을 봤고, 오랜만에 형과 형수를 만나 술을 마셨다. 그것뿐인데도 이상하게 마음 깊은 곳이 오래 씻긴 것처럼 맑았다. 아마 삶은 원래 이 정도의 크기로도 충분한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자꾸만 더 큰 의미, 더 큰 성취, 더 확실한 답을 원하지만, 정작 사람을 살게 하는 건 대개 이렇게 작고 구체적인 하루들이다. 내가 손으로 펴 올린 텐트 한 동, 버터에 구운 전복의 향, 유자막걸리 한 잔, 파도 소리 사이로 들려오던 익숙한 사람의 웃음. 행복은 늘 거대한 얼굴로 오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만 작게 와서 곁에 앉는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이 삶이 좋은 이유는 아마 완벽해서가 아니라, 중간중간 이렇게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멀리 가도 다시 숨을 고르고, 다시 저녁을 차리고, 다시 누군가를 떠올리고, 다시 별을 올려다볼 수 있다는 것. 무너지지 않는 삶이 아니라, 조금 흔들려도 돌아올 자리가 있는 삶. 캠핑은 그 사실을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가르쳐 주었다. 천 한 겹 아래에서도 사람은 충분히 쉴 수 있고, 작은 불 하나로도 밤을 건널 수 있으며, 마음이 지친 날에는 큰 해답보다 따뜻한 저녁 하나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불빛이 점점 낮아지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거지를 마저 하고, 테이블 위를 정리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묶어 두었다. 그런 뒤 텐트 안으로 들어가 지퍼를 올렸다. 바깥의 파도 소리가 천 너머로 한 겹 부드럽게 걸러져 들어왔다. 랜턴 불빛은 낮게 줄여 두었다. 침낭 속으로 몸을 넣자 하루 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풀렸다. 손끝에는 아직 전복을 뒤집던 감각이 남아 있었고, 옷깃에는 바다 냄새와 장작 냄새가 아주 옅게 배어 있었다.

누워서 텐트 천장을 바라보다가, 그는 오래간만에 마음속이 조용하다고 느꼈다.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그런데도 괜찮은 밤. 삶에는 그런 밤이 필요했다. 답이 없더라도 숨은 고를 수 있고, 내일이 막막해도 오늘의 저녁은 따뜻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밤. 바깥에서는 바람이 소나무를 살짝 흔들었고, 파도는 일정한 간격으로 해안을 어루만졌다. 준호는 눈을 감았다.

아마 사람은, 이렇게 한 번씩 자기 삶의 중심으로 돌아오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멀리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무 멀어졌던 자신에게 다시 가까워지기 위해.

남해의 밤은 깊었고, 그 깊이 안에서 그의 마음도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내일이 오더라도, 오늘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작가의 말


이 글이, 당신의 저녁에 작은 쉼으로 내려앉기를 바랍니다.


윤담 배상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