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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지층

침식-우천

by 윤담

아이들은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운동화가 젖으면 웃고, 흙탕물 위를 밟으며 장난을 친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걸음을 멈춘다.
그 웃음의 아래, 우리가 지나온 지층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른다.
세상이 한때 정말로 침식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그해의 비는 유난히 길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이 울었고,
도시는 젖은 종이처럼 구겨져 있었다.
도로 위의 물은 하늘을 거꾸로 비추었고,
그 물빛 속엔 사람들의 얼굴이 흔들렸다.
비는 단순한 날씨가 아니었다.
그건 세상이 붕괴하는 방식이었고,
한 시대가 자신을 씻어내는 의식이었다.

나는 그 시절을 겪은 사람이다.
IMF, 구조조정, 폐업, 세일
신문의 숫자들이 매일 사람의 체온을 낮추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 공기의 냄새를 기억한다.
축축했고, 무겁고, 한숨이 많았다.

엄마는 새벽마다 출근했다.
해가 뜨기 전, 빛이 형체를 갖추기 전의 시간이었다.
그녀는 고쳐 쥔 가방을 들고, 차가운 공기를 뚫고 걸어갔다.
그 뒷모습은 전쟁터로 향하는 병사 같았다.
아무도 모르게 싸우는 사람,
살아남기 위해 매일 전선을 옮겨 다니는 사람.

아버지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는 매일 셔츠의 주름을 펴고, 넥타이를 매만졌다.
그러나 그 넥타이는 더 이상 어딜 향하지 않았다.
그는 출근 대신 거실로 향했다.
신문을 펼쳐 활자를 따라 손끝을 움직였다.
그 정적은 마치 바위의 결 같았다.
단단하지만, 이미 내부에서는 미세하게 깎이고 있었다.

나는 그 침묵이 무서웠다.
폭풍보다 무서운 건 말이 없는 시간이었다.
사람이 소리를 잃을 때, 그 자리에 남는 건 책임의 냄새였다.
아버지의 침묵은 체념이 아니라 윤리였다.
그는 무너지는 대신, 무너짐의 자리를 지탱했다.
그게 인간의 품위라는 걸,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 시절의 집은 늘 젖어 있었다.
냉장고의 소리조차 멎을 듯 희미했고,
부엌에서는 계산기의 버튼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엄마는 그 버튼으로 가족의 생존선을 재고 있었다.
“이건 다음 달로 미뤄야지.”
그 말은 현실적이었지만, 이상하게 따뜻했다.
살아남는다는 건 때로 계산의 문제였다.
그러나 그 계산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낮에는 거리의 간판이 계속 바뀌었다.
‘폐업’, ‘임대’, 그리고 그 위에 붙은 새로운 이름들.
도시는 늘 흘러갔지만,
그 흐름은 물이 아니라 결핍의 형태였다.
건조한 공기 속에 보이지 않는 습기가 남아 있었다.
모두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세상은 무너지고 있었다.
다만 서서히, 조용히, 그리고 품위 있게.

나는 그 시절, 돌이었다.
단단했지만, 조금씩 닳아가고 있었다.
부모의 손끝, 도시의 공기,
그리고 우리 안의 침묵이 나를 깎았다.
그 닳음은 고통이 아니라 기록이었다.
지층이 생기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침묵이 그 시간을 굳힌다.
그때는 몰랐다.
그 침식이 언젠가 내 세계를 단단하게 할 줄은.

이제 나는 아이들을 본다.
그들은 비를 맞으며 웃는다.
젖은 운동화를 신고 달리고,
아무 일도 아닌 듯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창가에 서서 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문득, 그때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는 나를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던 사람이다.
그의 침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아직 모른다.
세상이 무너지는 법을.
하지만 언젠가는 그들도
자신의 시대 속에서 침식을 겪을 것이다.
바람에 깎이고, 관계에 닳고,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결을 만들어낼 것이다.

나는 이제 안다.
삶의 본질은 완성에 있지 않다.
삶은 늘 깎이는 일이며,
그 깎임 속에서만 우리는 빛을 낸다.
돌은 닳아야 반짝이고,
사람은 흔들려야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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