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사랑
사랑은 빛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손끝으로 더듬어 나가는 탐사에 가깝다.
그 어둠 속에는 오래된 침묵의 돌들이 쌓여 있다.
우리는 그것을 파내려가며 서로를 이해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서로의 표면을 닳이며,
조금씩 자신을 잃어가는 일에 가깝다.
나는 그 광산에 한 번 들어간 적이 있다.
그녀와 함께였다.
입구는 환했다.
햇빛이 비스듬히 스며들어,
우리를 마치 세상의 시작점으로 이끄는 듯했다.
하지만 몇 걸음만 들어가자 빛은 금세 사라졌다.
그때부터 사랑은 나침반 없는 탐험이 되었다.
그녀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감정의 언어를 아껴 쓰는 대신,
눈빛으로 세상을 더듬었다.
나는 반대로 말이 많았다.
표현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서로 다른 도구로
한 지층 아래의 감정을 파내려갔다.
처음엔 모든 것이 빛났다.
그녀의 웃음은 막 캐낸 수정처럼 맑았고,
그 웃음에 비친 내 얼굴은
오래된 먼지를 털어낸 듯 반짝였다.
하지만 빛은 오래가지 않는다.
깊어질수록 공기는 희박해지고,
소리는 벽에 흡수된다.
우리는 서로를 부르며,
점점 더 낮은 지층으로 내려갔다.
사랑은 어느 순간부터 침식의 형태를 띠었다.
감정이 닳는 것이 아니라,
자아가 닳는 일이었다.
그녀의 말투에 나의 목소리가 섞였고,
내 습관 속에 그녀의 리듬이 스며들었다.
우리는 점점 비슷한 형태로 닮아갔다.
그 닮음이 따뜻했지만,
동시에 조금 무서웠다.
닮아간다는 것은 경계를 잃는 일이었으니까.
광산의 벽면에는 오래된 균열이 있었다.
그 틈새로 물이 흘러내렸고,
그 물은 석회질처럼
우리의 마음을 천천히 굳혔다.
사랑이 식은 게 아니라,
형태를 바꾼 것이었다.
뜨거운 것이 단단한 것으로 변하는 시간.
그 변화가 침식의 다른 이름이었다.
때로는 싸움이 일어났다.
광산의 공기가 탁해지면
우리는 서로의 탓을 했다.
“당신이 먼저 변했어.”
“당신이 예전의 나를 지웠잖아.”
그러나 나중에야 알았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사랑은 본래 두 개의 시간대가
충돌하며 생기는 단층 같은 것이었다.
그 단층은 필연적으로
어딘가를 무너뜨린다.
그 무너짐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심연을 엿본다.
광산 깊은 곳에서
우리는 서로의 그림자를 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피로,
이해하려다 닳아버린 온기,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시선.
그건 고통이라기보다
일종의 관측이었다.
사랑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관찰의 지속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사랑이란,
타인을 통해 자신의 구조를 보는 일이다.
결국 우리는 다시 지상으로 나왔다.
눈이 부셨다.
오랫동안 어둠에 있던 눈이
빛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는 잠시 손으로 이마를 가리고 말했다.
“이제는 다 봤네요. 서로의 안쪽까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처럼 들렸다.
돌이켜보면
그 광산은 파괴의 장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우리를 깎고, 다듬고,
조금 더 단단한 결로 만들어준 자리였다.
우리는 서로를 침식시켰지만,
그 침식이 끝난 자리에
새로운 광물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건 이해, 용서, 혹은 인간의 회복 같은 이름이었다.
사랑은 완전함이 아니다.
그건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기술이다.
감정의 지층이 깎일 때마다
서로의 결이 드러나고,
그 결이 겹쳐 새로운 패턴이 만들어진다.
그 무늬가 바로 회복의 형태다.
사랑은 결국 회복의 기하학이다.
두 인간이 서로의 표면을 침식시켜
다시 세상과 맞닿을 수 있는 구조로 다듬는 일.
이제 나는 믿는다.
회복은 신에게서도,
세상의 구조에서도 오지 않는다.
그건 오로지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닳아가는 과정에서,
그 침식의 고통을 끝까지 바라보려는 시선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