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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철 James Ohn Jun 22. 2022

한국전쟁; 스탈린은 미국 개입을 원 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Joseph Stalin Britanica.com

“스탈린은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을 확인하고 김일성에게 남침을 허락 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구 소련 비밀문서에서 이와 정반대로 스탈린이 미군의 개입을 원했기 때문에 김일성에게 남침을 허락 했다는 사실이 밝혀 졌다. 한국전쟁 발발 전후의 자초지종을 하나 하나 짚어 보면서 어떻게 된 영문인 지 알아 보자. 


1949년 3월 7일의 김일성과 스탈린 대화록 중 일부


6.25 사변이 일어나기 일년3개월 여 전이다. 미군이 아직 남한에 주둔하고 있고 소련이 원자폭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이 싸우고 있었다. 미군은 남한에 500명의 고문단만 남기고 1949년6월28일 철수를 완료 했다. 소련은 1949년8월29일에 원폭실험에 성공했다. 중공은 1949년10월1일에 건국 했다. 장개석이 모택통에게 완전히 패배하기 전이다. 


김일성: 지금 상황으로 볼 때 우리가 한반도를 군사적 수단으로 해방시킬 필요가 있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남조선 반동세력은 평화통일에 결코 동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북조선을 공격하기에 충분하다고 믿을 때까지 나라의 분단을 영구화할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주도권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다. 우리 군이 남조선군보다 강하다. 게다가 우리는 남조선 내에서 강렬하게 일고 있는 게릴라 운동의 지지를 받고 있으 며 남조선의 인민대중은 친미정권을 증오하고 우리를 도울 것이 확실하다. 


스탈린 : 북이 먼저 남침해서는 안 된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조선인민군은 남조선 군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하지 못하다. 내가 알기론 수적으로도 뒤진다. 둘째, 아직 남조선에는 미군이 있다. 적대관계가 되면 미군이 개입 할 것이다. 셋째, 38선에 관한 미소협정이 아직도 유효하다. 이 사실을 잊 어선 안 된다. 우리 측이 협정을 파기한다면, 그것은 미국이 개입할 수 있 는 이유가 된다.


김일성: 그렇다면 가까운 장래에 한반도를 통일할 기회가 없다는 뜻인가? 우리 인민들은 다시 하나가 되고 싶어 하고, 반동정권과 미국 상전들의 멍에에서 벗어나기를 열망하고 있다.


스탈린: 적에게 침략의도가 있다면 조만간 침략해올 것이다. 그들이 공격해오면 반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때 반격하면 모든 사람이 당신의 행동 을 이해하고 지지할 것이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고 소련에게 핵이 없는 상황에서 소련이 김일성에게 남침을 허락 할 수 없었다. 


1950년 3월30일에서 4월25일 김일성과 박헌영은 다시 스탈린과 만났다.  


소련은 미국과 같이 핵 보유국이 되었다. 미군은 한국에서 전면 철 수 했다. 중국 대륙에 공산국가가 탄생 했다. 한국군은 칼빈총 하나로 무장한 빈약한 군대 였다. 


김일성 : 모택동 동지는 항상 조선 전체를 해방하는 우리의 희망을 지지 했습니다. 모택동 동지는 중국혁명만 완성되면 우리를 돕고, 필요한 경우 병력도 지원하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조선통일을 이루겠습니다. 우리는 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스탈린 : 완벽한 전쟁준비가 필수입니다. 무엇보다 군사력의 준비태세를 잘 갖추어야 합니다. 엘리트 공격사단을 창설하고 추가 부대창설을 서두르시오. 사단의 무기보유를 늘리고 이동 전투수단을 기계화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된 귀하의 요청을 모두 들어주겠습니다. 그런 연후에 상세한 공격계획이 수립돼야 합니 다. 기본적으로 공격은 3단계로 작성하시오. (1)38도선 가까이 특정지역으로 병력집결, (2)북조선당국이 평화통일에 관해 계속 새로운 제의를 내놓을 것, (3)상대가 평화제의를 거부한 뒤 기습공격을 가할 것.

*옹진반도를 점령하겠다는 귀하의 계획에 동의합니다. 공격을 개시한 측의 의도를 위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북측의 선제공격과 남측의 대응공격이 있은 뒤 전선을 확대할 기회가 생길 것이오. 전쟁은 기습적이고 신속해야 합니다. 남조선과 미국이 정신을 차릴 틈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강력한 저항과 국제적 지원이 동원될 시간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황해도 옹진반도는 38선 이남이지만 거의 38선상에 있어서 가장 심한 분쟁 지역이었다. 


김일성은 스탈린 동지에게 왜 미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인지 상세한 분석을 해보였다. 공격은 신속히 수행돼 3일이면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남조 선 내 빨치산운동이 강화돼 대규모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박헌영도 남 조선 내 빨치산 활동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20만 당원이 그곳에서 대규모 폭동을 주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http://audio.dn.naver.com/audio/ncr/1406_1/20120817134913128_VVREWFZTQ.pdf


스탈린이 아니라 누가 봐도 김일성이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무엇 보다도 미국과의 전면전을 꺼려 했다. 3차 세계 대전을 우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만약 미국이 38선 이북으로 쳐들어 올 경우에 중공이 개입할 것을 확인한 후에 김일성에게 남침을 허락 했다. 


스탈린의 속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일어난 사건의 경위와 문서에 나와 있는 사실로 부터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 지 추론 할 뿐이다. 스탈린은 중공의 참전을 한국전쟁의 필수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그가 미군의 개입을 계산하고 있었음을 반중하고 있다고 생각 한다. 


유엔주재 소련대사 야콥 말리크는 1950년 1월부터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나가지 않고 있었다. 유엔이 중공대신에 중화민국(타이완)을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으로 정 한대에 대한 소련의 항의 표시였다. 


말리크는 1950년6월27일 열리는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하겠다고 본국에 연락 했다. 스탈린은 전화로 말리크를 불러 불참을 지시 했다.  그는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안전보장 이사회는 유엔군 한국 파병을 통과 시켰다. 


스탈린은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기를 원 했다. 또한 그는 중공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유도 했다.

그래서 둘이 싸우는 동안 소련은 유럽에서 세력을 확장 하겠다는 응큼한 계략이 있다. 미국은 소련과 중공의 공동의 적이 되고 두 공산 국가는 단결 하는 결과를 예측 했다. 


결정적인 증거는 2005년에 발견된 스탈린이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 주재 소련 대사  에게 보낸 편지이다


스탈린의 놀라운 고백 편지 발견! | Save Internet 뉴데일리

스탈린의 電文: "한반도를 美中 대결장으로 만들 것"


  최근 소련의 안보리 불참과 관련된 중요한 문서가 발견되었다. 2005년에, 러시아의 3大 국립문서보관소 중 하나인 社會政治史(사회정치사) 문서보관소(RGASPI)에서 안드레 레도프스키라는 러시아 학자에 의하여 발견된 스탈린의 편지(문서번호 fond 558, opis 11, delo 62, listy 71∼72)가 그것이다. 이 문서에 대하여 베이징大 역사학부 김동길 교수(한국인)가 논문을 썼다. 편지의 全文은 이렇다. 


  필리포프(스탈린)가 프라하 주재 소련 대사에게 보낸 편지: 체코슬로바키아 클레멘트 고트발트 대통령에게 전달할 메시지(1950년 8월27일)


  고트발트에게 아래 메시지를 口頭(구두)로 전달할 것. 요구한다면 筆寫(필사)하여 줄 것.


  우리는 지난 6월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소련이 불참한 것과 그 뒤의 사태전개에 대하여 고트발트 동지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는 안보리에 네 가지 이유로 불참하였다: 첫째, 새로운 중국과 소련의 단결을 과시하기 위하여, 둘째, 미국이 안보리(상임이사국)에서 국민당 괴뢰 정권을 중국의 대표로 인정하고 (注-모택동이 이끄는) 중국의 진정한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는 정책의 바보스러움과 어리석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셋째, 두 강대국의 불참 때문에 안보리 결의는 정당성이 없음을 드러내기 위하여, 넷째, 미국 정부가 안보리 다수결을 이용, ‘프리 핸드’를 갖고 어리석은 짓을 마음대로 저지르도록 함으로써 여론이 미국 정부의 진면목을 알도록 그렇게 하였다. 

나는 우리가 이런 목적들을 달성하고 있는 중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안보리에 불참한 이후 미국은 한국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 엮이어 들어가 군사적 名聲(명성)과 도덕적 권위를 망치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서 침략자와 暴君(폭군)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미국이 한때 생각하였던 것만큼 군사적으로 강력하지 않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더구나 美 연방합중국이 極東(극동)에 묶여 현재 유럽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는 사실도 명백하다. 이 같은 사실은 세계의 세력 균형에 있어서 우리에게 得(득)이 되지 않는가? 의심할 바 없이 그렇다. 


 미국 정부가 極東(극동)에 계속해서 묶여 있고,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에 중국을 끌어들인다고 가정하여 보자. 이로부터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

첫째, 미국은, 그 어떤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방대한 병력을 보유한 중국과 싸워 이길 수 없다. 미국은 이 투쟁에서 (戰線을) 지나치게 넓히게 될 것이다. 

둘째, 그렇게 함으로써 미국은 가까운 장래엔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제3차 세계대전은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지만 연기될 것이고, 이는 유럽에서 사회주의를 강화하는 시간을 줄 것이며, 더구나 미국과 중국의 투쟁이 極東의 全지역을 革命化할 것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모든 것들이 세계의 세력 균형에 있어서 우리를 유리하게 만들지 않는가? 의심의 여지없이 그렇다. 귀하도 이해하겠지만, 소련이 안보리에 참여할 것이냐 아니냐는 피상적으로 보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는 문제이다. 


이런 이유로 하여 우리는 “민주진영은 안보리에 불참해선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참여할 것인가 불참할 것인가는 당시 상황에 따라 결정할 문제이다. 국제 환경에 따라서 우리는 또 다시 안보리에 불참할 수도, 復歸(복귀)할 수도 있다. 


왜 우리가 지금 안보리에 복귀하였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돌아간 것은, 미국 정부의 침략적 정책을 폭로하고, 그들이 안보리의 깃발을 이용하여 침략성을 은폐하려는 책동을 저지하기 위함이다. 미국이 한국에 침략적으로 개입하였으므로 안보리에 참여하여 이를 폭로하기가 매우 쉬워진 것이다. 이는 너무나 명백하므로 더 설명할 필요도 없는 事案(사안)이라고 생각한다. 


  필리포프(스탈린)


https://www.wilsoncenter.org/publication/did-stalin-lure-the-united-states-the-korean-war-new-evidence-the-origins-the-korean-war


한국전쟁은 스탈린이 죽은 후에 휴전 되었다. 스탈린은 아마 집요하게 미국을 한국전쟁에 묶어 놓으려 했는 지도 모른다.  미국이 한국을 구했다면 중공은 북한을 구했다. 미군개입으로 인민군은 38선 이북으로 패퇴 하여 멸망할 위기에 처 했으나 중공군이 개입하여 미군을 남쪽으로 내 몰았다. 스탈린이 예상 한 대로 미국은 중공에게 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스탈린은 중공에게 약속 했던 원조와 공군 지원을 충분히 해주지 않았다. 

배신감을 느낀 중공은 소련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동안 소련이 형 노릇을 하려 드는 데 어쩔 수 없이 따라 다니던 중공은 소련과 사이가 점점 벌어졌다. 


한국전쟁은 미국이 유럽에서 가지고 있던  계획을 수행하는 데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미국은 마샬 프랜으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독일을 비롯한 서방국가를 재건하는 데 성공 했고 나토를 결성하여 스탈린의 공산세력의 확장을 막 았다. 그 결과 스탈린의 꿈과는 달리 소련은 망했다. 스탈린이 원했던 미국의 한국전쟁 개입은 오늘날의 선진 한국을 만들어 주었다. 스탈린의 계략은 오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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