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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철 James Ohn Oct 08. 2020

마취의사

사생결단



환자는 숨을 멈춘다. 인공호흡을 시작한다. 3분 동안만 그냥 두면 환자의 뇌가 손상되고 곧 사망한다. 기도에 튜브를 삽입하고 튜브에 인공호흡기를 연결한다. 인공호흡기에 마련된 마취 기계는 마취약과 산소를 환자의 폐에 공급하고 환자가 내 벧는 탄산가스를 제거한다. 마취의사는 외과의사가 수술을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어 야 한다. 수술하는 동안 환자가 움직여서는 안 된다. 외과의사가 환부에 접근할 수 있도록 환자의 근육을 고무줄처럼 늘어나게 해주어야 한다. 마취의사는 근육 이완제를 간헐 적으로 주사한다. 만약 이약을 보통 환자에게 쓰면 예외 없이 숨을 못 쉬어 사망한다. 만약 수술 중에 과다 출혈을 하면 신속하게 수액과 혈액을 주사하여 환자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 환자는 수술을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기억에 남지 않게 하는 것도 마취의사의 책임이다. 


마취의사는 허리 부위 등 뒤에 바늘을 꼽는다. 척추 신경에 마취약을 주사한다. 환자는 배꼽 밑으로는 아무 감각이 없고 움직일 수 도 없다. 외과의사가 수술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또 다른 방법이다.  만약에 그 바늘이 몇 밀리미터만 더 들어 가도 환자의 척추신경을 손상하여 치료 불능의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마취의사가 매일 하는 중요한 두 가지 일이다. 나는 이일을 40여 년 동안 휴일을 빼고 거의 매일 했다. 매일 사생결단을 한 샘이다. 환자들은 자신들은 그저 잠자는 동안에 수술받은 처럼 생각한다. 그렇다고 환자에게 미주알 꼬주알 위험한 과정을 다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취는 당신이 비행기 타고 여행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마취는 비행기 타는 것보다 더 안전합니다. 마취 사고는 비행기 사고보다 더 적게 발생하기 때문이지요."라고 수술 전 환자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나의 버릇처럼 되었다.  


항생제, 예방주사와 마취는 근대 의학의 3대 중요한 발명이다. 발달된 마취 기술은 외과 수술을 가능하게 했다. 간단한 맹장염도 수술을 하지 못해서 죽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칼에 찔려도 수술하면 살 사람들이 죽기도 했다. 요지음엔 총에 맞아도 빨리 손 쓰면 산다. 다 마취 기술의 발달 덕이다. 


1971년 의과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군에 입대했다. 빨리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대 의무대 군의관으로 3년 썩으면 돌대가리 될 까 봐 걱정이었다. 마침 3개월짜리 마취 교육 프로 그램이 발표되었다. 군에 부족한 미취 의사를 보충하기 위해서 3개월 교육을 마치면 군 병원의 마취의사로 일 할 좋은 기회였다. 3개월짜리 교육을 마치고 후생병원에 배치되어 사생결단을 시작한 것이 1972년이다. 


1974년에 미국에 와서 마취의사 수련의가 되기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위험한 직업 이었기 때문에 미국 의사들이 기피하는 과였다. 수련의 들은 대부분이 외국의사 들이었다. 수련을 마치고 직장 구하기도 수월 했다. 


내가 12살 되던 해에 어머님이 산후에 갑자기 돌아 가시는 것을 목격하고 의사가 될 것을 결심하고 의과대학에 다니면서 급사하는 사람들을 소생시키는 과에 관심을 둔 것이 마취과를 택한 동기라고 할 수 있다. 


비행기는 이륙, 비행, 착륙의 삼단계를 거친다. 마취도 잠재우기(induction), 유지(maintenanace), 깨우기(eduction)의 삼단계로 나눈다. 이륙과 착륙이 비행 시기보다 더 위험한 것처럼 잠재우기와 깨우기가 유지하는 시기보다 더 위험하다. 특히 가끔씩 발생하는 잠재우기가 어려운 환자의 경우는 마치 폭풍을 맞이 하는 것과 같다. 약 5분 내지 10분 에 걸쳐서 일어나는 광풍이 지나가고 나면 언제 그렸냐는 듯이 조용해진다. 마치 무지개 뜬 맑은 하늘 밑에 있는 기분이다. 


그렇게 배우기 어려운 기술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케이스는 별일 없이 잘 재워지고 깨어났다. 그러나 가끔씩 일어나는 뜻밖의 어려운 경우는 날이 갈수록 스트레스를 주었다. 한동안 지나서 기술이 느니 스트레스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빈도는 줄었서도 힘든 경우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래도 수련의 동안은 뒤에 교수님이 바처 주어서 괜 찮았다. 돈벌이를 시작하니 모든 게 내 책임이었다. 수련의 과정이 끝 날 때는 모르는 것이 없고 못 다룰 케이스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으나 개업 전선에 뛰어드니 경험이 부족 함을 절실히 느 꼈다. 5,6년 지나니 자신감이 스트레스를 이겨내게 해 주었다. 단순하지 만 똑같은 일의 수많은 반복이 필요했던 것이다. 


순간적인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고 지루한 가운 데 한시도 놓치지 않고 환자를 살펴야 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환자를 영원한 불구로 만들 든가 아니면 본의 아니게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런 정황인데도 마취의사는 외과의사의 편리를 봐주어야 한다. 잠재우는 데 오래 걸리면 핀잔이다. 수술하는 동안에 

근육이 이완되지 않아 환부에 접근하기 힘들면 아우성이다. 외과의사의 마음에 안 들면 파면이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나서 7시까지 병원에 가야 했다. 7시 반에 수술이 시작되기 때문에 30분 동안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거의 매일 3시 전후에 일과가 끝났다. 당직이 4일 만에 한번씩 돌아왔지만 밤중 내 일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과 같이 보낼 시간이 다른 과에 비해서 많았다. 돈벌이도 다른 과목 보다 월등하게 좋았다. 마취하는 데 필요한 도구, 기술, 마취 약이 점점 좋아졌다. 나 자신의 기술도 좋아지고 외과의사 비위 맞추기도 이골이 났다. 스트레스가 즐거움으로 나도 모르게 바뀌었다. 그동안 부족했던 마취에 대한 공공의 인식이 점점 좋아졌다. 외과의사들의 마취의사에 대한 이해심도 많이 향상되었다. 


이제는 위험한 마취가 안전한 과목으로 바뀌었다. 산부인과, 심장외과의사의 의료과실 보험료와 비슷했던 마취과 의사의 보험료가 요지음은 내과의사보다 저렴하다. 외국의사들만 지원하던 마취과 수련의 과정이 의과대학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그저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기술을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과목은 나에게는 더없는 행운을 안겨 주었다. 가족과 같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면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게 해 주었다. 부모님 한 테서 물려받은 재능은 필요한 기술을 배우는 데 부족하지 않았다. 


"행운은 근면의 결과"라는 말이 있다. 세상은 그리 공평하지 않다. 세상살이에는 운이 따라야 머가 된다. 그렇다고 운을 어떻게 할 수도 없다. 그저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운 좋은 내가 할 일은 불행 한 사람들을 돕는 일이다. 막 시작할 려는 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방해를 놓는 다. 나는 하늘님께 감사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약속한다. 사생결단후에 한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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