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기철 James Ohn Oct 20. 2020

한글: 스님과 왕

각별 문자와 리브스 프린시플(Rebus Principle)


충북 보은에 훈민정음 공원이 조성되었다. 공원 중앙에 커다란 신미대사의 동상이 서 있고 그 주위에 작은 세종대왕을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의 동상이 자리 잡았다. 한글 창제의 주역이 세종대왕이 아니고 신미대사라는 뜻이다. 


작년에 상영되었던 "나랏 말씀이"라는 영화는 신미대사가 어떻게 세종대왕을 도와서 한글을 만들었는가를 주제로 하고 있다. 한글 창제의 주역은 신미대사였고 세종대왕은 이일을 행정적으로 도왔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하면 한글을 창제한 인물은 세종대왕 자신이 아니고 신미대사라는 놀라운 역사적 사실의 폭로였다. 


라디오, 자동차, 텔레비전, 전화, 전기의 발명처럼 문자도 발명하는 것일 까? 하는 의문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글은 일국의 왕이 발명했다고 한다. 과연 왕이 나랏일을 하기도 바쁜 데 허구한 날 문자 연구를 할 수 있었을 까? 요지음의 대통령이 연구실에 처밖여 있었다고 상상해보면 전혀 합리적이 아니다. 


그러면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고 치자. 어리석은 백성을 깨우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한글이 백성을 깨치는 데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400여 년 동안 조선왕조는 한글이 아닌 한문을 공식문자로 사용했다. 한글은 한문을 우리말하는 식으로 토를 다는 데 사용되었다. 한글이 국민계몽에 사용된 것은 독립신문이 최초이다. 


한글은 지구 상에서 왕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발명한 유일 한 문자이다. 문자 형성에 대단히 예외적인 역사적 사실이다. 자연히 의심이 많이 가는 대목이다. 그러면 문자는 어떻게 발전해 가는 것일까? 인간은 생각과 말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그림을 그렸다. 상형문자의 시작이다. 그림이 점점 간소화되어 기호로 변한다. 하다 보니 도대체 소리를 표현할 길이 없다. 그래서 한 가지 기호를 어떤 때는 뜻을,  경우에 따라서는 뜻이 없는 소리로 표현했다. 이러한 기록들은 퍼즐을 풀 듯 읽는 사람이 알아내야 했다.  이를 리브스 프린시플이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뜻을 표현하는 상형문자는 사라지고 소리만을 나타 내는 기호만 남게 되든 가 아니면 뜻을 나타내는 글자와 소리를 나타내는 기호를 갗이 쓰는 형태로 남게 된다. 라틴 알파벹은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출발하여 리부스 피린시플 단계를 거쳐서 지금 시리아 중부지방에 있는 페니키아 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본문자는 소리를 표현하는 글자와 뜻을 표현하는 글자를 병행해서 사용한다. 


한글도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중국의 한자도 처음에는 뜻만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한 글자가 뜻과 소리를 때에 따라서 다르게 표현했다. 이것이 신라, 고려 시대에 이두라고 생각한다. 리브스 프린시플의 시작이다. 


언제부터 인지 확실 한 연대는 모르나 약 천여 년 전부터 구결 문자라는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리브스 프린시플과 완전한 소리글자의 중간단계라고 볼 수 있다. 구결은 입겿이라는 뜻이고 한국말의 토씨를 표시할 때 사용한 문자이다. 중국말 문법 체계로 기록한 한문을 한국말하는 것처럼 기록하여 한국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사용한 문자가 구결 문자이다. 구결 문자는 뜻글자인 한자의 약자체를 이용하여 간단하게 소리를 기록하게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EcOR-Sc2Ac&t=184s


KBS 역사스페셜 – 천 년 전 이 땅에 또 다른 문자가 있었다




1443년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에도 이 땅에는 또 다른 우리 문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구결이 바로 그것이다. 구결이란 한자의 획을 줄여 우리말의 조사와 어미를 표시한 문자이다. 불가에서는 최근까지 그 전통이 계승되어왔다. 제작진은 성철스님의 유품에 남아있는 구결 문자를 취재했다. 20여 년 전 초조대장경 속 각필 점토 구결의 발견으로 우리나라 구결의 역사는 새롭게 써졌다. 각필 점토 구결은 사슴뿔이나 대나무 끝을 뾰족하게 깎아서 점(·)과 선(-)을 새겨 400여 가지의 우리말 토시를 표현한 것이다.  육안으로 쉽게 구별되지 않아 그동안 존재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최초로 각필을 발견한 일본 고바야시 교수는 일본 가나 문자의 기원을 한반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가나 문자 제자원리와 우리 구결의 제자원리에서 유사성을 발견한 것이다. 또한 각필 점토 구결의 제자원리는 훈민정음 창제에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구결은 훈민정음의 기원일까? 역사스페셜 178회– 천 년 전 이 땅에 또 다른 문자가 있었다 (2002.10.12. 방송) http://history.kbs.co.kr/



SHOW MORE"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발명)한 것이 아니고 천년이 넘는 일반적인 소리글자 형성의 과정을 거쳐서 세종대왕이 하나의 소리글자로 정착시킨 것으로 보인다. 일파 베트와 비교하면 이집트 상형문자가 아닌 중국의 상형문자에서 출발하여 리브스 프린시플을 거쳐서 소리글자가 된 것이라고 추론해 본다. 구결 문자를 가장 많이 사용했던 사람들은 불경을 소리 내어 읽어야 했던 스님들이었고 이문자의 전문가가 신미대사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세종대왕은 우리말을 좀 더 자유자재로 기록할 수 있는 문자의 필요성을 느껴서 새로운 문자 연구를 주도했음은 틀림없으나, 기술적인 글자 연구는 신미대사가 집현전 학자와 협조하여 진행했다고 추측해 본다.  천년 이상 한문 사이에 끼어 쓰던 구결 문자를 한국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기록할 수 있는 소리글자로 발전시킨 것이 한글이 아닐까? 


이 글을 다 써가도 내 마음은 석연치 않다. 이렇게 과학적이고 배우기 쉽고 세상의 소리를 다른 어느 소리글자 보다도 가장 많이 글로 쓸 수 있는 문자가  왜 400여 년 동안 국민계몽에 크게 기여 하지 못 했던가? 백성을 위해서 만든 글자라 하지 않았던 가?


작가의 이전글 마취의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