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냥이로 돌아가는 치즈 1호와 오지 않는 치즈 2호
'치즈 1호'는 '턱시도' 다음으로 우리 집에 온 아이로 거의 1년이 되어 갑니다.(3월이면 1년) 신기하게도
'턱시도'와 같이 데크 중앙을 터전으로 삼고 밥을 먹고 살았던 아이로 무슨 사연인지 '턱시도'가 먼저 자릴
잡고도 '치즈 1호'를 같은 영역에서 살게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아이들은 무리동물도 아니고 모자 사이라도 젖만 떼면 독립해서 따로 산다는데 이 둘은 신기하게도 데크 중앙에서 같이 살았습니다.
가끔 '턱시도'가 심술을 부리며 냥펀치로 '치즈 1호'를 때리기도 했으나 먹을 걸 줄 때 '턱시도'는 먹다가도
'치즈 1호'가 머릴 내밀며 들어오면 먹다가도 양보를 하곤 했습니다.
그 후 '치즈 1호'는 데크에 올라오는 다른 냥이들을 물리치고(턱시도와 함께)이 중앙을 굳건히 사수했는데
웬일인지 지난겨울 집을 나가 한동안 안 들어와 걱정을 시키더니 다시 돌아온 후엔 들락날락하면서 점점
안 들어오는 날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겨우 들어와서 밥을 먹고는 또 며칠은 나가서 안 들어오고....
(길냥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건지....) 날이 풀려 다행이긴 합니다만 좀 걱정되는 건 건강 상태입니다.
외형상으로는 다행히 눈곱도 없어지고 귀뒤 피부병으로 긁어 피가 나고 털도 지저분한 상태는 벗어났는데
문제는 가끔 토합니다. 아무튼 일단은 이 애에겐 잘 먹이려 했습니다.
(물론 먹는 것 만으로 도움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잘 먹여서라도 영양상태가 좋아지면 건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마음이지만 다른 애들 보다는 신경이 더 씌었던 애였습니다(일단 외모는 좋아졌습니다)
어디든 가서 잘 먹고 또 어디 가든 애들과 싸우지 말고 다치지 않고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치즈 1호'가 없는 사이 요즘 데크 중앙인 현관은 막무가내 '블랙이 3호'가 와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합니다. 그 앤 여기서 살 생각은 없어 보이고 그저 와서 깽판만 치고 가는 줄 알았더니 요즘
와서 자고 먹고 하는 걸 보면 정말 데크중앙을 노리고 있었던 게 맞나 봅니다. 웃픈 건 턱시도입니다.
그 애가 올 땐 '턱시도'는 안절부절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밥 먹는 걸 보기만 하고...
심지어 현관에서 잠도 자고 가는 걸 '턱시도'는 밖에서 지켜보기만 합니다.
'치즈 2호'도 작년 봄쯤에 와서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이 애는 데크 중앙으로 오지 않고 데크 오른쪽으로 와서 자릴 잡았습니다. 그래서 다행히도 먼저 자릴 잡은 '턱시도'와 '치즈 1호'와는 영역이 겹치지 않아 싸우지 않고 지냈습니다만... 오른쪽인 이 애의 구역에 밥이 없을 때 중앙으로 오면 그때는 '치즈 1호'와 대치를 하며 둘이 싸우려 합니다. 그때 밥을 주면 이 애는 순순히 물러나 자기 구역으로 갑니다.
아주 신사 같은 아이죠... 이 아이도 아침, 저녁으로 꼬박꼬박 와서 밥을 먹지만 이 애는 아직도 하악질을 합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가까이 가지 않고 간식도 못주고 밥만주고 물러나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손길은 허락하지 않고 가까이 가는 건 가만히 있더군요... 그때 간식도 주고 추르도 주었더니 잘 받아먹었습니다.
(얼마나 요란하게 츄르를 먹던지....) 그래도 하악질은 여전합니다. 좀 괘씸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가을까지는 결석도 없이 정확하게 아침, 저녁에 밥을 먹고 갔습니다.
그러다 지난가을 며칠 안보이더니 다시 나타났을 땐 다리를 다쳐서 절며 왔습니다.
오른쪽 앞 다릴 들고 다니더군요. 그러니 먹이 활동을 제대로 했을 리 없고 밥을 주니 허겁지겁 먹는데...
얼마나 안쓰럽던지... 그렇게 다리를 절면서도 밥 먹으러 잘 왔고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다리는 다 나았고 겨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안 보이기 시작하더니 거의 두 달 만에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안 올 땐 어딘가 가서 자릴 잡았나? 혹시 나쁜 일이 생긴 건가? 별별 걱정을 다 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 반가웠는데 밥을 먹고는 사라져 또 안 옵니다.
이 애는 다른 동네에 터를 잡은 건지 오래간만에 와서 안부만 전하듯 와서 밥 한 끼 먹고는 또 떠난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이 애의 구역이었던 데크 오른쪽은 여러 아이들이 와서 밥을 먹고 가는 곳이 돼버렸습니다.
두 군데 밥을 주는데 아침, 저녁 두 번 다 싹싹 비워져 있는 걸 보면 아마도 옆집에서 건너오는 '블랙이 0호'와 새로운 아이 '삼순이' 요즘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밥을 먹고 도망가는 '블랙이 2호'와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애들이 와서 밥을 먹는 곳이 된 것 같습니다. 뭐 누구든 배고픈 애들이 와서 먹고 갔으면 좋겠고
안 오는 '치즈 2호'도 어딜 가든 배곯지 않고 싸우지 않고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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