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와 산책 중에 만난, 호피와 치즈 1호
지난 12월 중순 즈음, 자두네 집을 나간 '호피'는 어디서 생활하는지 가끔, 잊을 만하면 나타나 밥을 먹고 갑니다. 이젠 언제 올지 모르게 그냥 왔다가 밥만 먹고는 훌쩍 떠나버리고 자두와 산책도 같이 안 나가고 자두의 애를 태우며 점점 멀어져만 갑니다. 처음엔 걱정되고 그러더니 가끔이라도 와서 안부를 전하니 다행이기도
하고요. 그러던 얼마 전 자두와 산책 중 집에서 좀 떨어진 곳 도랑옆을 지나는데 갑자기 자두가 나를 끌고
가며 낑낑거리기에 가보니 세상에... '호피'가 거기서 물을 마시고 있습니다.
또랑에 흐르는 물을 마시고 있던 겁니다. 자두는 그걸 알고는 그리로 나를 끌고 가 낑낑거리고 있는 거고요.
마치 " 저기 호피 있어요 아저씨~~"라고 하는것 처럼요. 그런데 저 또랑 물은 흐르는 물이긴 하지만 깨끗하지는 않은 물인데... 길냥이로 돌아간 '호피'는 그 물을 마시고 있고 '호피야... 호피야~~' 여러 번 부르니 물을
마시고는 길가로 올라옵니다. 마침 주머니에 있던 추르를 주니 잘 받아먹습니다.
이 놈이... 집에 있으면 깨끗한 물에 밥에, 가끔 이런 츄르도 줄텐데 왜 길을 나가 이러고 있니... 하며 '호피'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자두는 냄새 맡고 핥고 합니다... 만 예전처럼 자두도 좋아 죽는, 뭐 그런 호들갑은
안 떨더군요... 자두도 이젠 마음의 정리를 하는 건지.... 근데 자두가 좀씩 이상해지긴 합니다(요건 다음회에 자두 편으로 쓰겠습니다) 그리곤 츄르를 다 먹더니 또 휙 떠납니다.
정말 이 아인 이제 길냥이로 다시 돌아간 모양입니다. 그렇게 뒤도 안 보고 가길래 자두와 나는 다시 갔습니다. 그렇게 몇 걸음 가다 돌아보니 세상에... 거기서 우두커니 자두와 나를 보고 있더군요... 그러면서도 쫓아오지 않고 있다는 건 분명 독립했다는 걸 보여주는 거겠죠... 나는 '호피'가 독립하였으니 그저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빌었습니다. 자두도 같은 마음이었겠지요...
우리 집 현관에서 10개월가량 살다 역시 이번 겨울, 길 떠난 '치즈 1호'도 잊을만하면 와서 밥을 먹고 가는
길냥이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그렇게 안쓰럽고 걱정이 되더니 이렇게라도 와서 이 애도 안부를 전하는구나... 하니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어디선가 자릴 잡고 잘 살고 있으려니 하며 말입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자두와 산책하다 마을회관 쪽으로 가는데 주차장에서 고양이들 하악질 소리가 나길래 가보니 어디선가 낯익은 고양이가 자동차 밑을 향해 날 선 경계의 몸짓과 소리로 하악질을 하는데 좀 가까이 보니 '치즈 1 호'인 겁니다. 세상에... 이 애는 여기서 또 대장 고양이 노릇을 하는 건지... 여기다 터를 잡은
건지... 자두를 한쪽에 묶어 놓고 가까이 가니 자동차 밑에 있던 애가 도망가고 '치즈 1호'는 쫓아 가는데
자동차 밑에 있던 애는 두 마리로 좀 작은 '블랙이'가 도망가고 그 뒤에 좀 큰 '고등어'가 가는데 '치즈 1호'는 이 두 애와 쌈을 하고 있었고 이렇게 세 아이들은 다른 차 밑으로 가서 또 대치를 합니다.
나는 더 이상 가까이 가지 않고 돌아오면서 저 '치즈 1호'는 이곳에서 터를 잡고 다른 애들을 쫓아내고 있구나... 또는 다른 애들이 잡고 있는 터를 이 애가 접수하려는 모양이구나... 하며 돌아왔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또 뭔가 씁쓸하기도 한 이 감정... 뭐라 딱히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이 아이도 다른 동네서 자릴 잡고 있구나... 안도를 하며 왔습니다.
그 후에도 이 아이는 가끔 와서 밥을 먹고 갑니다.
* 대개 길냥이들의 대장 고양이 역할은 '치즈 1호'처럼 얼굴이 크고 넙데데 한 애들이 길냥이들의 대장 고양이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대장 고양이는 새로운 애들의 영역 접근을 막고 주로 높은데 올라가 있고 먹을 것이
있을 때 먼저 먹는 정도의 권위(?)를 가진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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