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만에 돌아온 호피
지난해 여름 자두와 같이 11년을 살았던 '살구'가 세상을 떠나자 시름에 빠진 자두는 우울증인지 밥도 안 먹고 잠만 자는 등 행동변화가 오기 시작했는데 이때 '자두' 우리로 '호피'가 들어온 겁니다. 그 시초는 아마도 데크에서 밥을 먹다 다른 아이들에게 쫓겨 '자두'네 우리로 들어온 게 아닐까 합니다. 그때 '자두'가 이 애를 보호해 주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상극이라 여겼던 길냥이가 '자두' 우리에 들어오자 놀랬지만 의외로
'자두'는 이 조그만 아이에게 공격성보다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심지어는 보호해 주다가 둘이 절친이 되어 같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이 둘은 산책도 같이 다니는 등 동네 스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겨울이 될 때까지 같이 살다가 지난 연말 무렵 '호피'는 집을 나갔습니다. '자두' 우리에서 같이 동거하던 '호피'가 어느 날 독립을 한 거지요... 이 무렵부터 사실 '호피'는 수컷성묘의 기질을 보이며 다른 냥이들을 경계하며 싸움도 하고 그때 '자두'네 집 지붕 위로 와서 밥을 먹던 '블랙이 2호'를 공격하고 '턱시도'까지 공격하는 만행을 부리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해가 바뀌어 봄이 올 때까지는 출퇴근하듯 '자두'네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자두'와 놀다가기도 하더니 3월 중순이 지나자 아예 오지 않더군요. 그렇게 겨울 끝부터 점차 오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올 때마다 점점 말라가고 마지막으로 왔을 땐 아주 말라서 건강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아서 걱정을 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아이는 안 좋은 일을 당했거나...
뭐 암튼 그렇게 안타깝지만 포기를 하고 있었는데...
저녁때 외출을 하려는데 '자두'가 막 낑낑거려서 무슨 일인가 나가봤더니... 세상에... '호피'가, 분명 '호피'가
와 있는 겁니다. '자두'는 좋아 어쩔 줄 모르고 핥고 난리가 난 겁니다. '호피'도 그걸 즐기듯 아주 좋아 죽겠다는 표정입니다. 아무튼 정말 놀라서 '호피'야 하고 부르니 냐옹거리며 내게도 아는 체를 합니다.
일단 츄르를 주고 닭고기도 주었더니 허겁지겁 막 먹습니다. 세상에... 3개월간 보이지 않아 나쁜 상상을 했던 내가 무색하게 다시 나타나 '자두'와 애정 행각(?)을 벌이고 있는 '호피'가 너무나 대견하고 반갑고 정말 집 나간 아들이 다시 들어온 기분이었습니다. 일단 '자두'는 아주 좋아 죽습니다(예전에도 호피만 보면 좋아 죽는 자두) 외출에서 돌아오니 '호피'는 계속 있던 건지 나갔다 다시 온 건지 역시 '자두' 우리에 있습니다. 다시 밥과 간식을 주고 쓰다듬다 몸 상태를 보니 선명한 호피 무늬가 좀 옅어진 것? 같은 느낌과 좀 마른 것처럼 보이는 것 외엔 괜찮아 보입니다. 다만 왼쪽 귀 뒤에 상처가 나 딱지가 덮기 전 피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
세상에 이 아이가 중성화 수술을 하고 온 겁니다. 왼쪽 귀 끝이 잘려 있는데 이건... 중성화 수술한 고양이를 구분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아인 집 나가더니 수술을 받고 돌아온 꼴이 된 거죠~.
놀랄 일입니다. 이 아이는 어디론가 가서 살다 그 동네서 포획당하여 중성화 수술을 당한 거겠죠. 그리고 회복하여 또다시 이곳으로 온 것이고요... 정말 기가 막히고 놀랍고 반갑고 이쁘고 그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지요... 그러니 '자두'는 또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간 '자두'네 집 테이블에 이 아이의 밥그릇과 물그릇에 늘 밥과 물을 채워 놓았었고(혹시라도 배가 고파 왔을 때 밥그릇이 비어 있어 밥을 못 먹을까 봐) 그 덕에 그간 다른 아이들이 와서 먹고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또 '자두'네 집안에는 '호피'의 자리를 깔아 놓은 것도 안 치우고 있었는데 정말 온 겁니다. 3개월 만에 중성화 수술까지 마치고 당당히(?) 돌아온 '호피'~~
다음날 아침에 다시 온 호피는 밥을 주니 먹고는 발라당을 하며 놀아달라 합니다. 그런데 귀뒤엔 상처가 있고 이게 아물지 않은 상태입니다. 왜 길냥이들 귀 뒤엔 이런 상처들이 자주 날까요?
이 애들의 피부병의 일종인지... 서로 싸우다 생긴 상처인지.... 아무튼 이제 무사히 잘 있다는 걸 봤으니 이렇게 가끔이라도 와서 밥을 먹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집에 오는 애들 중 '턱시도', '최강신예' 와 '호피'까지 이제 3마리가 중성화 수술을 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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