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살구 11년 4개월의 삶을 마치다
여름이 오는데, 점점 더워지는데 살구는 점점 악화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다니던 서울의 병원에 갔다.
일단 진료를 한 의사... 왈~ '많이 안 좋다'라고.... 한.... 다..... 어. 쩔. 수. 없. 다. 고
그래도 뭔가를 해볼 게 없냐고...(이제 와서 이게 무슨 소용이랴만....)했고 의사는 침이라도 맞아 보자고 했다. 뒷다리를 못쓰는데 침이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단다. 그러나 한번 맞아선 안되고 최소 주 1회 이상은 와야 한다는데 여기 서울까지 주 1회를 어찌 다니랴... 만 사실 아이를 살린다는데 그깟 주 1회를 못 오냐? 고 생각해 봤다. 하지만 역시 현실적으로 힘들다. 우선 살구가 긴 시간 차를 타고 다니는걸 너무나 힘들어한다.
해서 침을 맞으러 격주로 라도 오겠다고 하고 3주 치의 약을 다시 받아 왔다
물론 자두도 같이 가서 진료를 했고 자두 역시 노화가 왔고 심장이 안 좋아졌다고 해서 자두도 약을 지어 왔다. 둘 다 일단 관절기능과 심장기능이 약화된 건 마친가지에다 살구는 '쿠싱 신드롬'인데 신장기능도 안 좋고 전반적으로 다 나쁘단다. 문제는 여기 침 맞으러 다니는 것보다 약먹이기가 더 문제... 다
일단 또 시도를 해봤다. 여러 가지를... 역시 거의 실패... 이젠 밥도 잘 안 먹으려 한다
그게 5월 말쯤이었고 살구는 더 이상 걷지 못했다. 먼 서울 병원까지는 못 가고 동네 병원에 가서 상태를 보여줬더니 의사는 이번 여름을 못 넘길 것 같다고 했다. 무더위와 땡볕 그리고 곧 올 장마...
하는 수 없이 살구는 실내로 들여와야 했다. 거실에서 나와 같이 잤다. 밤에 일어서려 애쓰면 일어나 붙잡아 세워 보조끈을 채워 나가 오줌을 뉘었고 물을 먹였고, 그렇게 하룻밤에 대여섯 번씩 해야 했다.
쿠싱 신드롬의 특징이 물을 엄청 마시고 그만큼 오줌도 많이 쌌고 무엇보다 헐떡임이 보기에 너무나 안타깝게 했다. 움직임이 없어도 헐떡였고 누워서 가슴이 벌렁벌렁 할 정도였다. 게다가 이제 뒷다리를 완전히 쓰지 못하니 더욱 안타까웠다.
뒷다리를 아예 쓰지 못해 이런 보조끈을 이용하여 세워서 오줌을 뉘러 나가곤 했다
저걸 채워 위에서 잡아주면 설 수가 있었고 저렇게 하고 나마 몇 걸음 떼고 밖으로 나가 오줌을 눌 수 있었다. 아직은... 저걸 잡아 세워주면 일어나 물도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장마가 왔고 무더위가 왔다.
물은 엄청 마셨고 건사료가 아닌 습식사료는 때론 엄청 먹었다. 닭죽을 끓여 닭살을 발라내 주면 그건 잘 먹었다. 좋아하는 간식도 딱딱한 건 안 먹었고 요플레나 츄르 정도만 먹었다. 그것도 약을 섞어 주지 않을 때만 받아먹었다. 밤에 몇 번씩 움직이려 애를 쓰는데 못 일어나니 가서 잡아 세워주고 데리고 나가 오줌을 뉘고 다시 물을 먹이길 하룻밤에 대여섯 번씩 해야 했다. 너무나 안쓰러웠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 그것이라도 해줘야지... 하며 밤을 새웠다.
얘는 일어서려 애쓰지만 내가 일으켜 주지 않으면 꼼짝 못 하고 물도 먹여줘야 하고 오줌도 데리고 나가 뉘어줘야만 하는데 이거라도 내가 해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거라도...
산책이 문제였다. 물론 이런 애를 데리고 무슨 산책이냐... 할 테지만 이 애에게 뭔가를 해줘야 할 것 같고 또 이게 마지막이라면... 산책이라도 시켜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하는 수 없이 유모차에라도 태워 나가자 하고 이렇게 얘를 데리고 나갔다.
이게 이 애의 마지막 산책이었다.
그 후 산책은커녕 집안에서도 꼼짝없이 누워만 있었고 점점 나빠져 물 이외엔 먹으려 하지도 않았다.
약도 먹지 않고 난 해준 게 없고(강제로라도 약을 먹였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오지만) 이 아이의 마지막 가는 길에 내가 해줄게 그냥 밤새 아이가 괴로워할 때 부둥켜안고 쓰다듬고 같이 괴로워하는 거밖에 없었다.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와도 반응이 별로 없었다. 어떤 땐 누워 꼬리를 흔들지만 어떤 땐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검은 동자는 뿌옇게 변해가고 있어 아마도 나를 잘 알아보지도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를 못 알아볼까 봐... 그게 슬펐다. 그래도 내 냄새라도 맡으면 알겠지... 하며 쓰다듬고 만져주는 걸 했다.
그것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예 못 움직이니 누워서 오줌을 쌌고 기저귀를 채워 놓았더니 사타구니가 헤어져 살결이 까져 피가 났다. 이젠 기저귀도 채울 수 없었고 그냥 깔개를 깔고 그 위에 까는 기저귀를 펴고 살구를 위에 눕혀 놓았다. 누워서 오줌을 싸면 세워서 대충 마른 수건으로 씻기고 다시 눕히고 많이 싸면 목욕을 시켰다. 컨디션이 좋으면 엎드려서 물을 먹었으며 늘 털은 오줌 때문에 젖어 있었다. 그래도 저렇게 라도 살아 있어 주어 고마웠고 내가 이것이라도 해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점점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아 안타까웠지만 막을 수 있는 게 없었고 한편으로는 긴병에 효자 없다고 내가 지치고 힘들어 이 아이가 귀찮아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밀려와 슬프기도 했다. 너무나 미안했고 그러면 그냥 아일 붙들어 안고 '이이구 살구야 살구야'만 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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