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아아... 살구,,,,
애들은 다행히도 잘 적응하고 딱히 말썽도 없고 잘 지냈다. 처음 와서 낯설어선지 집에도 안 들어가고 비를 맞고 있더니 이젠 자기 집을 인식한 건지 집에 들어가 잠도 잘 자고 잘 먹고 했다.
다만 살구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진단을 해도 노령견이니 어쩔 수 없다... 또는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하게 소개해 보겠다는 등의 제의를 해왔지만 나는 선뜻 결단을 못 내리고 시간을 보냈다. 살구는 처음엔 관절이 안 좋아 뒷다리를 잘 못쓰는지 알았는데 나중엔 디스크라 했다. 그래도 아직은 밥도 잘 먹고 산책은 긴 시간은 안 하고 짧은 거리로 할 수 있었다.
길냥이 들이 집 주변에 많아 두 애들이 아주 흥분하고 난리를 피워대지만 길냥이들을 못 오게 하거나 어찌할 수는 없었고 급기야 길냥이 중 몇 아이들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이제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거의 살다시피 하는 애들이 되어 버리기도 했다.
원래 살구는 자두보다 더 건강했고(그래 보였고) 행동도 더 날쌔고 동작도 빨랐다. 높은 곳에 뛰어 올라가는 건 물론 자두가 물려하면 높은 데로 풀썩 올라가 피하고 자기 키보다 훨씬 높은 곳도 잘 뛰어올랐고 넘어 다녔다. 털상태도 자두보다 더 좋았으며 윤기 나는 상태로 털갈이 때도 자두보다 관리가 더 쉬웠고 반지르르 한 윤기가 나며 고왔다. 다만 얘는 원래 입이 짧아 많이 먹지 않거나 같은 종류를 오래 먹지 않아 식성이 까다로운 편이었다.
그러나 근육 상태는 말 근육처럼 움직임이 보였고 그야말로 소위 근육질(?)처럼 보였었다. 둘이 어리고 젊었을 때는 산으로 산책을 가서 1~2시간쯤은 돌아다녀도 둘 다 싱싱했고 살구는 훨씬 잘 다녔었다. 다만 덩치가 작고 소심하여 자두에게 밀리고 밖에서 만난 다른 개들을 무서워하거나 피하긴 했었다. 둘 다 진돗개의 피를 받아서(살구가 더 순종에 가깝다고 했다) 추위에 강해 겨울에도 눈밭에 누워 있거나 눈에서 뛰놀기를 좋아했다. 수의사 말로 대개의 개종류들이 추위보다 더위가 더 문제라 했다.
그렇게 겨울이 왔고 노령견이고 밖에서 사는 애들이라 체온조절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어 처음으로 애들에게 겨울옷을 입혔다.
나는 사실 평소에 개들에게 옷 입히는 걸 반대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개들은 털의 반응으로도 의사소통을 하는데 옷을 입혀 놓으면 그게 가능하지 않으니 옷 입히는 걸 반대해 왔는데 이 애들이 11살이 되는 겨울이 되니 사실 밖에서 사는 애들에게 옷을 입히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고 수의사도 웬만하면 그렇게 하라 하여 애들에게 처음으로 옷을 입혔다. 그리고 처음 몇 주는 밤에 입히고 낮에 벗기고를 하며 적응하게 하고 또 낮엔 해가 있으니 벗기고 했는데 자두가 옷 입고 벗는 걸 싫어해 12월 중순부터는 그냥 입혀 놓고 살았다. (옷에 벨크로 붙이고 뗄 데 '쫘아악~~'하고 나는 소리에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벗길 때마다 자두는 반항을 했다. 마치 옷 벗기지 말아요~~ 하는 것처럼) 그래서 평소 입혀 놓고 있다가 가끔 한 번씩 벗겨 털을 빗어 주곤 했다.
두 녀석을 옷 입혀 산책을 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해댔다. 여긴 시골마을에 그냥 마당에 묶어 키우느라 개 옷을 입혀 다니는 걸 보지 못했다.
그래선지 동네 어르신들이 신기해하며 인사를 했다. 살구의 빨간 파카는 그래도 잘 맞는 것 같은데 자두는 한 치수 더 큰 걸 사야 했나 싶게 허리춤이 다 드러나는 게 좀 웃기긴 했다. 살구는 왼쪽 뒷다리를 끌면서도 산책은 꼬박꼬박 나가려 했고 이때만 하더라도 뒷다리를 살짝 절며 살짝 끌며 다니곤 했다.
관절염 보조제와 간보조제, 항산화제등을 인터넷으로 구매해서 먹였고 다행히 이 보조제들은 두 녀석 다 잘 받아먹었다. 그렇게 22년의 겨울이 지나고 23년의 봄이 되었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두 녀석 다 노화가 오는 게 눈에 보였고 우선 털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고(특히 살구의 모질이 엉망이 되었다) 자두는 한쪽 눈이 실명된 것을 제외하면 딱히 변하는 건 없었는데 살구는 뒷다리를 저는 게 더 확실해져서 질질 끌다시피 했고 복수는 눈에 띄게 차올라 누가 봐도 얘는 배가 이상해...라고 했다. 병원에서 약을 받아 먹이기 시작했으나 약 먹기를 거부하는 살구 때문에 매일 약먹이기가 일이 되었고 매일 아이디어를 짜내 약을 먹여야 했다. 좋아하는 것에 타서 주거나 섞어 주면 아예 그 자체를 먹지 않았다. 닭고기에 섞어 주면 닭고기를 안 먹었고 츄르에 타서 주면 츄르를 안 먹었고 요플레(살구의 최애 간식)에 타서 주면 그마저도 안 먹었다. 바늘을 뺀 주사기에 약을 넣어 입안에 짜 넣어 주기를 해봤는데 입을 강제로 잡고 넣어 주는걸 극도로 싫어해서 그마저 포기했다.
동네 병원에서는 살구를 '쿠싱신드롬'같다고 했다.
부신피질 호르몬 이상으로 생기는 병인데 일단 다음, 다뇨, 다식, 헐 떡임 등이 주 증세인데 이게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제한 급수를 하지 않으면 하루 몇 리터의 물을 마실지도 모르게 물을 먹어댔고 그만큼 오줌을 많이 쌌으며 밥을 잘 안 먹다가도 폭식을 하기도 했다. 헐떡임이 제일 보기에 안타까웠는데 움직이지 않아도 헐떡이고 조금만 움직이면 더욱 심하게 헐떡였다. 그리고 뒷다리를 점점 못쓰게 되어 산책도 못 나가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산책은 자두만 데리고 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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