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1 프롤로그: 일터를 떠나는 대신 시도해 볼 잡 크래프팅
10여 년전 이력서에는 6개의 회사를 다녔다고 적혀 있었다.
여러 이유로 회사와 나 사이의 어긋남(misfit)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업무 자체가 재미없어 지기도 했고, 나를 탐탁치 않아하던 매니저나 반대로 내가 탐탁치 않았던 매니저도 있었고 이유는 매번 달랐었다.)
여튼 그런 깨달음이 들면, ‘나와 잘 맞는 곳이 있을꺼야’라는 주문을 외우며 다음 회사를 찾았다.
그때마다 선배들은 말했다.
“직장은 다 거기서 거기야.”
“그 놈 피해서 가면, 더한 놈 만난다.”
“일이 다 똑같지. 돈 받으면 장땡이야.”
참 여러 버전으로 들었다.
당시에는 도통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절반 이상은 맞는 말이었다. 기억의 왜곡도 한몫 했겠지만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담이 이렇게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러 개의 직장과 직업의 형태를 겪으며 발견한 바는, 나는 재미와 의미가 있어야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내게는 재미가 곧 의미다.
40대 중반, 조직심리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했을 때에도 핵심은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행동 변화를 리드해야 하는 직업상 심리는 항상 궁금하던 주제였으니까. 깊이 원리를 알게 되는 것이 무척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개인적으로 의미도 있었다.
처음 만난 교수님의 질문에, 나는 거의 아무말 대잔치를 벌였다.
요점은 이거였다.
“직장생활 중 상당 부분이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는 인생의 절반을 일하며 보내잖아요.
그 시간을 좀 더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게 곧 조직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알고보니 교수님께선 ‘무작정 찾아왔다’는 표현으로 이 장면을 기억하셨다.
학문적 밑천이 일천한 이과 출신이 심리학 박사과정을 하겠다고 하니, 과연 무작정 무모한 용기였다.
교수님께서는 아무 말도 못하는 나를 예상하셨던지,
“최근 우리 랩에서 낸 논문 열 편쯤 읽고 주제를 생각해보세요.” 하셨다.
대학원 지원서에는 버젓이 ‘연구계획서’ 란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읽었던 10편의 논문에서 발견한 개념이 잡 크래프팅(Job Crafting) 이었다.
스스로 자신의 일을 다시 짜는 전략이자 행동 = 잡 크래프팅 job crafting
잡 크래프팅은 내가 늘 고민하던 “일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개념이자 구체적인 전략들이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내가 수도없이 했던 업무 행동들이었다.
“요즘 좀 한가한데, 새로운 프로젝트에 자원해볼까?”
“새로 온 마케팅 매니저와 밥을 먹자고 해야지. 알아두면 같이 일할 때 도움이 될 거 같아.”
“온보딩 교육 끝! 신입사원이 회사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니 무척 기쁘다. 역시 보람찬 일이야.”
논문을 읽으면서 내가 즐겨 쓰던 잡 크래프팅 패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연스레 연구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술술 떠올랐다. 그렇게 잡 크래프팅을 주제로 연구 계획서를 써서 입학했고, 같은 주제로 졸업논문까지 썼다.해결하고자 했던 연구 질문에 답을 한 셈이니 억수로 운이 좋았다.
논문 제목은 <한국 직장인의 잡 크래프팅 잠재프로파일과 전이 분석: 조절초점, 시간적 및 직무특성의 영향을 중심으로> 이다.
한국 직장인에게 나타나는 잡 크래프팅의 유형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 안하는 사람 등), 잡 크래프팅 프로파일별 업무몰입도 차이, 잡 크래프팅 행동을 촉진하는 개인적, 조직적 특성을 연구했다.
내가 생각하는 잡 크래프팅의 핵심 매력은 ‘내가 결정한다는 감각’(자기결정성이론, Self-Determination Theory) 이다. 직장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업무나 직장을 바꾸는 것보다 실행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점도 한몫한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고, 따라서 성공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내가 결정했다”는 감각이 업무 몰입과 만족감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설령 시도한 결과가 성공적이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시도하고 실패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양한 잡 크래프팅 전략들은 직원과 조직 모두에게 더 긍정적인, 번영하는 직장 생활과 성과를 돕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지금 나는 더 이상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일’을 다시 디자인하는 일은 여전히 계속된다.
잡 크래프팅은 회사 안에서만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라, 삶의 주도권을 찾는 기술이기도 하다.
✅μgom P.S.
이 글을 끝까지 읽었다면, 이미 당신의 잡 크래프팅 1단계는 시작됐다 �
✅ 일하는 습관, 잡 크래프팅 프로파일 시리즈 — 일과 일의 의미를 디자인하다
퇴사 대신 업무 디자인, 직장생활이 즐거워지는 잡 크래프팅
시리즈 목차
1️⃣ 프롤로그 — 이직하려는 분은 보지 마세요
2️⃣ Ch.1 잡 크래프팅의 심리학
3️⃣ Ch.2 네 가지 잡 크래프팅 프로파일(유형) — 여러 전략을 같이 사용하기
4️⃣ Ch.3 잡 크래프팅 프로파일이 업무 몰입·직무 적합성에 미치는 영향
5️⃣ Ch.4 잡 크래프팅 프로파일의 촉진 요인
6️⃣ Ch.5 잡 크래프팅 프로파일은 변하는가?
7️⃣ 에필로그 — Thriver, Not Survivor
* 박사 논문 기반: 김선영, 한국 직장인의 잡 크래프팅 잠재프로파일과 전이 분석: 조절초점, 시간적 및 직무특성의 영향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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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