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사람을 빚더라.
헬스장으로 복귀했더니 선생님이 물었다.
"뭐가 제일 맛있었어요?"
흠... 커피요.
커피쟁이인 나는 한 잔에 1,300엔인 Aged Blend 드립커피를 마셨는데,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와인을 묘사하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향과 맛이 너무나 근사한 커피였다.
그걸로 이번 여행은 대만족. ㅎㅎㅎ
두 번째는 새로운 발견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여러 번 일본에 갔지만, 이번 여행은 2020년 코로나 직전 이후 첫 일본 여행이었다. 조카 2명을 모시고 간 덕에 패키지 팀에 끼어서 가이드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지난 5년간의 조직심리학 훈련 덕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적어보자면,
가이드가 말했다. "일본은 조화를 중요시하는 문화입니다."
그런데, 아니 그 결과 이지메(집단 따돌림)가 만연합니다.
왜? 조화를 깨는 사람은 강력하게 처벌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교에서 이지메 피해자를 도우려는 선생님도 이지메를 당한다니,
조화를 위한 시스템이 이지메를 만든다.
"이 건물은 지진이 나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어떻게요?"
"흔들리게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면진 구조란다.
땅이 흔들려도 건물은 위아래로만 흔들린다. 흔들림을 흡수하는 설계.
대지진을 반복해서 겪은 나라가 만든 기술이다.
충격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을 수는 있다.
"이치고 이치에(一期一会). 한 번의 만남, 한 번의 기회."
언제 다시 만날 지 모르지만, 지금 만난 인연이 소중하다.
버블 붕괴, 지진, 원폭... 언제든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걸 경험한 사람들.
그래서 현재를 소중히 여긴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
일본사람들은 now에 집중한다.
일본인들은 코스프레를 좋아한다.
아사다 마오의 트리플 악셀처럼 필살기(특기)에도 집착한다.
왜? 일상에서는 조화를 강요당한다. 개성을 드러내면 이지메.
그래서 특정 공간에서 극단적으로 개성을 표출한다.
코스프레 축제, 필살기 자랑의 맥락.
전국에 자판기가 무려 3만 대 있다.
“지금 어디?” 하면 “자판기 2698번 옆이야.” 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재난이 생기면?
이 3만대의 자판기가 재해 대응 자판기로 변신한다.
물, 모포, 손전등이 구비되어 있으며, 대피 안내도 한다.
재해 후 72시간이 골든타임임을 깨달은 일본이 만든 시스템, 생존을 위한 시스템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한국이 더 잘산다고 생각해요."
버블 붕괴 이후 세대는 잘 살아본 적이 없다.
한국 화장품 쓰고, 일본 넷플릭스 10위 중 6개 프로그램이 한국산이다.
최근 ‘잃어버린 30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잘 사는 나라라는 생각이 남아 있는 나를 발견했다.
세대마다 경험이 다르다. 세대마다 처한 맥락이 다르다.
중딩 조카들은 디즈니랜드에서 7개를 탔다는 점에 가장 만족했다.
인기 넘버1이라는 메론소다는 너무 달다며 남겼지만, 매일 편의점 털이를 하며 디저트와 과자들은 대 환영이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새로운 일본을 만났다.
현재의 일본 - 시스템, 문화를 만든 역사적 맥락을 보았다.
행동 = 사람 × 맥락 × 갭
위 공식은 내가 만든 변화를 시작하는 행동 공식인데,
한 시점에서는 위 공식처럼 사람과 맥락과 그 격차가 행동을 시작하도록 에너지를 준다.
그런데 과거-현재-미래라는 연결성을 생각하면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
행동들이 쌓여서, 사람에게 다시 영향을 미친다.
여러 번의 지진으로 상실하고 재건했던 행동들이 사람을 ‘안전’ 중심으로, ‘조화’를 중시하는 문화를 더 단단히 하는 것처럼. 순환이다.
한국에 돌아오니 도쿄보다 훨씬 추웠지만,
이 아침 단골 카페의 커피가 너무나 맛있다.
easier & merrier
조직심리학자 Jam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