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밤 마실을 돕듯, 더 쉽게 즐겁게
고향에 가서 아빠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전화가 울렸다. 아빠의 오랜 친구 지섭 아저씨.
"나? 늦게 자지—" 몇 시에 자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모양.
"뭐 일어날 때 일어나지—" 몇 시에 일어나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모양.
몇 분 통화를 주고받으시더니, 아빠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지섭이가 지금 오래."
저녁 7시인데 지금요? 여든이 훌쩍 넘으신 두 분의 밤 마실이라니.
아저씨는 요즘 몸이 불편하셔서 집에만 계신다고 한다.
"어딘데요? 제가 서울 올라가는 길에 모셔다드릴게요."
"푸른숲 아파트니까, 가는 길에 내려주면 돼."
“몇 동 몇 호?”
"몰라, 아파트 가서 전화하면 지섭이가 나오겠지."
엄마랑 나는 동시에 눈을 맞추고 입을 열었다.
몇 동 몇 호인지 지금 알고 가야 편하지, 아파트 단지도 넓고 밤이라 캄캄한데. 아저씨가 전화를 못 받을 수도 있고요.
"지섭이가 날 기다리고 있는데 왜 전화를 안 받아."
“아파트가 넓어서 동에서 동까지 5분 이상 걸어야 할 수도 있고, 아저씨가 마중 나오시기도 어려우시잖아요. 딱 그 집 앞에서 전화하면 좋지 않겠어요?”
그제야 전화를 하신다. "몇 동 몇 호냐?"
엄마는 종이 쪽지에 주소를 받아적고, 나는 아빠한테 카톡을 보냈다.
308동 2503호.
출발.
아저씨가 사시는 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상가 가까운 쪽이었다. 마침 308동이란 숫자가 커다랗게 보인다.
아빠 여기, 308 보이죠?
“나는 여기 내려주면 된다. 알아서 갈 수 있으니.”
아파트 정문 앞에서 아빠를 내려드렸다.
바로 이 오른쪽 건물이에요.
"아빠, 우리 집 아파트 같이 숫자판 앞에서 2503 이렇게 누르고 벨모양 누르면 돼요. 잘 안되면 그 숫자판앞에서 아저씨한테 전화하세요."
"알지 알지"
아빠를 내려드리고, 지켜봤다. 308동 방향으로 아버지가 사라졌다.
엄마의 신신당부—아빠가 키패드 누르고 호출할 줄 모르니, 가능하면 눌러드리고 와 – 가 생각났다. ‘알지 알지’ 하셨지만... 뛰어가서 아파트 안을 들여다 보니 엘리베이터 복도에 아무도 없다.
그렇게 빨리 올라가셨나? 엘리베이터가 멈춰있는 층수를 보니, 25층이 아니다.
흠.
조금 더 걸었더니 상가와 상가 사이 골목길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 아빠가 보였다.
"아빠!!!"
여기여기. 여기가 입구잖아요.
"아, 그게 안 보였네."
안 보이기는요…
아빠와 같이 키패드 앞에 섰다.
아빠 이렇게 2503. 누르고. 호출. 문이 지잉— 열렸다.
같이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25층. 같이 내렸다. 2503호를 찾았다.
아빠, 여기요.
"초인종이 어디 있냐?"
일단 노크를 하고, 현관문 패드에 달린 초인종을 찾아 눌렀다.
곧 "어어—" 하고 아저씨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이다.
두 분이 잘 만나시는지만 보려고 나는 복도에 물러나왔다. 아저씨가 보면 놀라실 수 있으니.
"어어, 왔어." 하며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혼잣말.
아빠, 집에 가는 건 하실 수 있죠? 엘리베이터는 타시니까.
오늘은 택시 타세요. 제발
난 명확히 설명했다.
어디가 입구인지도, 키패드로 초인종을 누르는 방법을 명확하게 알려드렸다.
아빠도 "알지 알지." 하셨다.
알려주는 쪽인 내가 하는 일은 헤매는 시간을 줄이도록 돕는 것, 직접 하는 사람의 에너지를 더 중요한 곳에 쓸 수 있게. "알지 알지"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일수록, 말로만 설명하지 말고 직접 보여주고, 함께 하기.
서울에 잘 도착했노라고 전화를 드리니, 아빠는 아직이라신다.
즐거운 시간 보내셨길 바라며..
일도 삶도 조금 더 — Easier & Merr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