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lighter Aug 15. 2021

개성 넘치는 도쿄 오피스 레이디스

일본에서 활약하는 멋진 내 친구들


원래도 인간관계가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회사원이 되고 나서는

친한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친구를 만드는 게 정말 어렵게 느껴졌다.


스무 살 도쿄로 유학을 와서

동고동락하며 20대의 절반을 함께 보낸

같은 대학 한국인 친구들과 대학 검도부 친구들이

내가 '친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다.


2주 간의 자가격리가 해제된 지난주 금요일과 토요일,

정말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몇 년 만에 만는 데도 어제 본 것처럼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마치 대학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으며 좋아하는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다.

눈앞에 펼쳐진 천국(산해진미)
색색깔의 멕시칸 요리 타코스




스무 살 고향을 떠나 머나먼 도쿄에서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열심히 살아온 자랑스러운 내 친구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마루노우치 OL(Office Ladies)'이 되어

일본 비즈니스계에서 각자 맹활약 중인

개성 넘치는 내 친구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 마루노우치 OL : 일본의 경제 중심지인 '마루노우치'로 출퇴근하는 여성들을 일컫는 말)



#1. 체력·정신력 만렙 검도부 친구 S양



홋카이도의 하코다테(函館) 출신인 S양

내가 알고 있는 일본인 친구 중 가장 특이하고 재밌는 친구 중 하나다.

보통 일본인은 앞뒤가 다르다고 많이들 생각하는데

이 친구는 앞뒤가 똑같다.

생각하는 게 입 밖으로 바로 나온다. 

내 생각엔 자기도 모르게 나와 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친 체력과 정신력의 소유자다.


집이 꽤 잘 사는 편데도

부모님한테 용돈을 받지 않고

대학 4년 내내 학교 근처 웨딩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해서 생활비를 벌고,

동시에 4년 동안 주 6회 검도부 활동까지 소화해낸 대단한 친구다.  


대학교 1학년 때 첫사랑 남자친구한테 푹 빠져서

1학년 1학기 전과목에서 'F'를 받고

학교에서 전설적인 존재가 된 그녀

용케도 유년 없이 4년 만에 칼 졸업을 하고 

외국계 IT 대기업에 컨설턴트로 입사했다.


S양이 다니는 회사는

야근이 많고 업무 강도가 세기로 유명한 곳으로,

프로젝트 기간에는 매일 밤 12시 너머까지

야근을 밥 먹듯 하는데도 

그녀는 불평불만 없이 격무를 버텨낸다.

일반 사람이라면 2~3년도 버티기 힘들텐데

우리의 S양은 올해로 그 회사를 다닌지

벌써 7년 차에 접어든다.

평일에 밤늦게까지 일하면 주말엔 쉴 법도 한데 

주말에는 새벽 4~5시에 일어나서 골프를 치러 간다고 한다. 비즈니스 상의 이유는 아니고

그냥 순수한 취미란다.


그녀는 놀 때도 열과 성을 다해서 논다.

S양과 만나는 날은 거의 항상 예외 없이

끝장을 볼 때까지 논다.

만나서 1차 밥 먹고 2차 술 먹고 3차 노래방 4차 S양의 집에서 밤샐 때까지 노는 경우가 허다하다.


참고로 이 친구알코올 분해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마디로 술이 겁나게 세다는 뜻이다.)


S양을 만난 지난주 금요일도

역대급으로 술을 많이 마신 후

(사케 3병, 와인 1병, 맥주 셀 수 없음)

나는 다다음날까지 심각한 숙취에 시달렸다.

그런데 나와 함께 엄청나게 달린 S양은 다음날도 너무나 멀했다.


이쯤되면 나와 동일한 생물기능을 가진

인간이 맞는지 합리적인 의심이 들 정도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2차전 : 이때부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의 일론 머스크급 체력을 보유한 능력자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S양의 능력을 일본에서만 썩히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S양을... 세계로!"



#2. 회계하는 서퍼 O양



경영학과 출신에 학업성적도 우수했던 모범생 O양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고 유머러스함도 겸비해 인기가 많았던 친구다.


대학 졸업 후 일본 대기업 화학회사 회계부서에 입사한 O양은

현장 경험을 매우 중시하는 일본 기업의 방침에 따라

입사하자마자 일본 지방에 있는 공장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아는 사람도 없고 주변 인프라와 교통이 열악한

일본 지방 소도시에서 그것도 외국인으로서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O양은 그 어려운 걸 해냈다.

(나 같으면 진작에 그만뒀을 것 같다..)


3년이 지나고 도쿄 본사 회계부서로 이동한 O양은

마루노우치 OL이 되어 멋지게 활약하다가

돌연 안정적인 대기업을 그만두고 한국 스타트업의 일본지사로

이직해서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 주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7년 간 회계 외길 인생을 걸어온 O양은  

최근 회계 업무의 전문성을 살려서

외국계 회계 컨설팅펌으로 이직하는 데 성공했다.


탄탄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능력 있는 O양의 반전

바로 그녀가 4년 차 서퍼(surfer)라는 사실이다.

물론 저분은 O양이 아니다. (출처 : pixabay)


그것도 그냥 취미 수준으로 서핑을 즐기는 게 아니라

서퍼가 본캐고 회사원이 부캐가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서핑에 푹 빠져 산다.

휴일이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서핑을 하기 위해 도쿄 근교 지역으로 가고

서핑 연습 노트까지 꼬박꼬박 작성할 정도로 서핑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최근에는 아예 서핑을 할 수 있는 바닷가 근처에 숙소를 구해버렸다.

평일에는 그 숙소에서 아침 일찍 서핑을 한 후 재택근무를 하고

주말이 되면 도쿄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O양의 서핑 사랑은 아무도 못 말린다.


공적으로는 똑 부러지고 이성적인 회계 컨설턴트,

사적으로는 바다를 사랑하는 열정 가득한 서퍼.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딱 O양을 두고 하는 말 같다.

  


#3. 긍정 파워 200% E양



E양은 톡톡 튀고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다.

태어나서 E양만큼 긍정적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대학 시절 힘들기로 유명한 햄버거집 아르바이트조차

너무 재밌고 배우는 게 많다고 말했던 E양이다.


외향적이고 밝은 성격을 가진 E양은

대학 졸업 후 일본 대기업 화학회사영업직으로 입사했다.

참고로 한국과 다르게 일본에서는 영업직이 '문과 직무의 꽃'이라고

불릴 만큼 인기가 높은 직무다.

직무 특성상 아무래도 여직원보단 남직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E양처럼 여직원이 영업부서에 배치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케이스다.


E양이 영업부서에 배치되고 처음 맡은 업무는

한국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B2B 영업을 하는 일이었다.

E양이 다니는 일본 회사는 예전부터 한국 기업과의 사업 수요가 있긴 했지만,

비즈니스 문화 차이로 인해 좀처럼 진척이 없던 답답한 상황이었다.

한국 기업은 느려 터지고 뭐 하나 확실한 답을 주지 않는 일본 기업이 답답하고

일본 기업은 뭐든 빨리빨리 밀어붙이려는 한국 기업을 좀처럼 믿을 수 없고...

고구마 같이 꽉 막힌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문화도 잘 알고 일본 문화도 잘 아는

E양이 들어와 그 간극을 사르륵 메워주면서

거래가 성공적으로 성사됐고,

E양은 놀라운 영업 성과를 냈다.

(이 무슨 드라마 같은 일이란 말인가.)

출처 : www.wallpaperflare.com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현재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E양은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재밌고 회사생활에 완전 만족한다고 한다.

태어나서 E양처럼 직장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난 E양이 너무 신기하다.

E양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분명 힘든 일이 있었을 텐데

긍정의 힘으로 그걸 이겨내다니...

정말 대단한 친구다.


E양과 만나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그동안 너무 세상을

염세적이고 냉소적으로 봐온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나한테는 항상 좋은 자극이 되는 친구다.

 


#4. 반전 매력의 소유자 A양



나와 같은 경상도 출신으로 저음 목소리가 매력적인 A양

같은 대학 같은 전공에 살던 곳도 같은 맨션이어서

대학 4년 내내 붙어 지냈던 친구다.


맨 처음 봤을 때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락밴드 음악을 즐겨 들으며,

노래방 가는 것도 좋아하고

술도 엄청 좋아하고 잘 마시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였다.


나랑 성격이 잘 맞아서 항상 같이 붙어 다녔었는데

둘 다 노는 걸 너무 좋아하고 즉흥적인 성격이어서

대학 시절 툭하면 수업을 째고 같이 여기저기 놀러 다녔다.

전공이 경제학과인데 범죄학이나 심리학 같은

경제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희한한 수업을 같이 듣고,

시험 전날 밤에 시험공부를 시작하는 등 학점관리를 아주 엉망으로 했다.


그 결과 둘 다 2점 초반대의 처참한 학점으로 가까스로 졸업하긴 했지만

A양과 함께 강의실 밖을 벗어나

대학생이 누릴 수 있는 자유란 자유는 모두

만끽했으니 후회는 없다.  

A양과 정말 자주 갔던 학교 앞 노래방 (출처 : rubese.net/gurucomi001/?id=2887717)


노는 걸 굉장히 좋아하지만

놀 땐 놀고 할 땐 하는 능력자 A양

대학 졸업 후 외국계 대기업 보험회사에 입사했다.

(참고로 취준생에게 친화적인 일본 취업시장에서는 학점을  안 보는 기업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2점 대 학점은 취업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취업을 하고 나면 자기 계발에 소홀해질 법도 한데

A양의 자기 계발은 대학 졸업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퇴근 후 시간을 쪼개서 꾸준히 회계 공부를 해온 그녀는 최근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까지 따서

회계 컨설팅 펌으로 이직하는 데 성공했다.

정말 대단한 친구다.


대학 때처럼

앞으로 도쿄에 있는 3년 간 굉장히 자주 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간 건강 관리는 철저히 하면서

건전한(?) 만남을 지속했으면 좋겠다.






개성이 넘치다 못해 폭발하는 친구들이지만

친구들의 특징을 적다 보니 공통점이 하나 보인다.

바로 각자의 삶에 진심을 다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님 곁을 떠나 먼 타향에서

혼자 직장생활을 하면서

분명 힘들 때도 많았을 텐데

그럼에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내 친구들이 너무나도 존경스럽다.

 

이렇게 멋지고 훌륭한 사람들을

친구로 두고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인복 하나는 정말 끝내주게 좋나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