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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er Aug 27. 2021

출근할 때 뭐 입지? 비즈니스 캐주얼이 뭔가요

비즈니스 캐주얼의 패러독스



취준생 시절,

내 머리를 쥐어 싸매게 만든 고민거리 하나가 있다.


"면접 복장 : 비즈니스 캐주얼(정장 금지)"


비즈니스룩이면 비즈니스룩, 캐주얼이면 캐주얼,

둘 중 하나만 할 것이지 도대체 뭘 어떻게 입으란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면접 복장 하나 때문에 며칠을 고민한 게 바보 같긴 하지만

당시 취업이 절실한 나한텐 엄청 심각하고 중대한 일이었다.  


두 번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이 바보 같은 고민을

도쿄에 와서 다시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1. 고독한 마루노우치 힙스터



서울 본사에 출근할 때는 일주일 내내 캐주얼데이여서

스타트업에 다니는 사람처럼 옷을 편하게 입고 다녔다.

아침에 눈 뜨면 그냥 눈앞에 보이는 옷을 아무거나 집어 입고 출근하곤 했다.


도쿄지사 출근 3일 차 되던 수요일 아침.

아직 국제 이삿짐이 오지 않아서 입고 나갈 만한 옷이 마땅치 않았다는 건

사실 핑계지만

어차피 일본인들은 남들이 뭘 입든 별로 신경 안 쓸 것 같아서

본사에서 입고 다녔던 것처럼 편하게 입고 나가기로 했다.


그날 아침,

비비드한 빨간색 반팔 티에

무릎이 살짝 찢어진 힙한 청바지를 입고 출근했다.


대충 요런 느낌? 물론 내 다리는 아니다. (출처 : UNIQLO 홈페이지) 


그날따라 출근길에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 잠시 '뭐지?' 싶었지만,

어느새 그 시선들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혼자 자아도취에 빠져서

모델이 무대 위를 걷는 것처럼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로 걸어서 회사로 들어갔다.


콧노래를 부르며 기분 좋게 출근해서

컴퓨터를 켰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내 옆자리 과장님께서 사내 메신저로 말을 거셨다.

 

과장님 : 굿모닝입니다~


무슨 할 말이 있으신가?

잘 모르겠지만 일단 활기차게 대답했다.


나 : 네!! 좋은 아침입니다 과장님!

과장님 : 다른 건 아니구~본사가 지금 아마 상시 캐주얼데이죠?

나 : 네 맞습니다!

과장님 : 그... 본사랑 도쿄지사랑 조금 다른 게 있어서..
여기는 아직까지 금요일만 캐주얼데이거든요ㅠㅠ

나 :  (..............??)

과장님 : 복장이 너무 캐주얼하면 윗분들이 꼰대 발언을 하실 수 있으니ㅠㅠ
고객이나 외부 미팅 없으실 때는 비즈니스 캐주얼까지는 괜찮습니다~!



헉... 전혀 몰랐다..

본사가 상시 캐주얼데이니까 당연히 해외지사도 같은 줄 알았다..


확실히 도쿄지사 직원분들 복장이 본사에 비해서 포멀한 느낌이긴 했지만

그냥 일본 직원분들의 개인 옷 취향이 그런 줄 알았다.


남들이 뭘 입든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알고 보니 도쿄지사뿐만 아니라

마루노우치 빌딩가에 있는 대부분의 직장인들 옷차림이

남자는 정장, 여자는 오피스룩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마루노우치 오피스 레이디 패션 예시 (출처 : https://oggi.jp/6462357)


그렇다.


나는 마루노우치의 고독한 힙스터였다.

고독한 힙스터 (출처 : https://to-bally.jp/images/CLR-T-CLD/)


그동안 마루노우치에서

나 혼자 캐주얼데이였던 것이다.


옷 핏이 좋아서 나를 쳐다본 게 아니라

혼자 스타트업 다니는 사람처럼 

자유분방하고 힙한 복장으로 마루노우치를

휘젓고 다니니까 이상해서 쳐다봤던 것이다.



이건 마치 여의도 증권가에서

정장을 쫙 빼입고 출근하는 증권맨들 사이에

혼자 쇼미 더 머니 예선전 나가는 사람처럼

입고 출근한 것과 같다.

 


하...ㅆ...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2. 비즈니스 캐주얼은 어떻게 입는 건가요?



일본인들은 남들이 뭘 입든 관심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정말 나의 크나 큰 착각이었다.


한국 회사는 금융회사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직원들의 복장에 대해 관대한 편이지만

일본 회사는 복장에 대한 제약이 한국보다 훨씬 엄격한 느낌이다.


옆자리 과장님께서 외부 고객과의 미팅이 없을 때'비즈니스 캐주얼'까지는 괜찮다고 말씀하셨는데

도대체 일본에서 말하는 비즈니스 캐주얼의 허용 범위가 어디까지란 말인가.

※ 비즈니스 캐주얼 [ business casual ]

캐주얼한 옷을 차분한 분위기로 맵시 있게 입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마드라스 체크의 캐주얼한 재킷에 드레스 셔츠, 흑 무지의 넥타이, 검정이나 진갈색의 로퍼 슈즈, 동색의 벨트를 합쳐 캐주얼한 가운데서도 비즈니스 웨어에 가까운 드레시한 이미지로 스타일링하는 것.  
(출처 : 패션 전문자료 사전)

 

"캐주얼한 옷은 차분한 분위기로 맵시 있게 입는 것?"


애초 캐주얼 차분함이 공존할 수 있는 단어였단 말인가. 


구글에 일본어로 '비즈니스 캐주얼'이라고 검색하니

'정장처럼 너무 딱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사복처럼 너무 캐주얼하지도 않은 차분한 비즈니스 스타일'이라고 나온다.


내 짧은 식견으로는 '비즈니스 캐주얼'이 함축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인터넷의 힘을 빌리기로 결심했다.


일본의 대표 취업 포털 리쿠나비(リクナビ)에서

'출근할 때 입으면 NG인 코디'에 대해 정리한 포스팅이 있길래 들어가 보았다.




♥ 일본 회사에서 출근할 때 입으면 NG인 코디 


(※ 주의사항  : 어디까지나 일본 취업포털 '리쿠나비'의 주관이 섞인 의견이므로 참고만 해주시기 바란다.)



1) 캐주얼한 느낌이 강한 옷 & 아이템은 NG

티셔츠와 스웨터 등 실루엣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 옷이나 데님 소재 옷은

깔끔해 보이지 않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출근할 때는 피하는 것이 좋다.


[NG 아이템]

티셔츠, 반바지, 바닥에 닿을 듯한 롱 스커트

스웨터 직물 및 데님 소재 옷

모자, 큼직한 액세서리, 컬러 스타킹 등


[NG 예]

(왼쪽) 치마가 바닥에 닿을 것 같아서 NG / (오른쪽) 데님 소재 바지와 샌들 구두가 NG

(왼쪽) 치마가 바닥에 닿을 듯 너무 길어서 NG

(오른쪽) 데님 소재 바지와 샌들 구두가 NG


[OK 예]

(왼쪽) 깔끔한 인상을 주는 커리어우먼 스타일 / (오른쪽) 짧지도 길지도 않은 적당한 길이의 스커트 굿

(왼쪽) 시크하고 깔끔한 옷차림이라서 OK

(오른쪽) 짧지도 길지도 않은 스커트가 품격 있어 보여서 OK


(스커트 길이가 품격을 결정한다는 건

또 처음 알았다.)



2) 스타킹 없는 맨다리, 너무 높은 하이힐, 운동화도 NG

사무실에서 맨다리는 완전 NG이므로 살색 스타킹 착용은 필수! 편한 운동화도 너무 캐주얼한 느낌을 주므로 피하는 게 좋다.


(실제로 내 일본인 친구들도 맨다리로는 절대 안 나가긴 하더라. 심지어 더운 여름에도 꼬박꼬박 스타킹을 신고 다니는 걸 보고 충격받은 적도 있다.)


[NG 아이템]

화려한 페디큐어

운동화, 샌들 류 등 캐주얼 아이템

너무 높은 하이힐


[NG 예]

(왼쪽) 위아래 편안한 옷차림에 운동화까지 너무 캐주얼 느낌이 강해서 NG / (오른쪽) 샌들 구두에 화려한 페디큐어 NG

(왼쪽) 운동화도 NG, 옷차림도 캐주얼 느낌이 너무 강하므로 NG

(오른쪽) 화려한 페디큐어와 샌들 콜라보에 구두 소리가 시끄러울 것 같아서 NG



3)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화려한 컬러 & 무늬는 NG

밝은 색상의 컬러 아이템을 입고 싶은 경우 파스텔 등 연한 색상으로 입고, 그 외는 그레이, 네이비, 베이지, 화이트, 블랙 등의 기본 컬러로 정리하면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NG 아이템]

발색이 강한 비비드 컬러

호피 무늬 등 화려한 프린트


[왼쪽 : NG 예 / 오른쪽 : OK 예]

(왼쪽) 초록색이 차지하는 면적이 너무 많아서 NG / (오른쪽) 꽃무늬가 차지하는 면적이 적당해서 OK

(왼쪽) 비비드한 초록색이 전체 의상의 반 이상을 차지해서 NG

(오른쪽) 화려한 무늬의 옷이라도 차지하는 면적이 작으면 괜찮아서 OK



(*참고 : next.rikunabi.com/journal/20170820_t1)




#3. 실제 일본 직장여성들의 출퇴근 옷차림



출근길 지하철,

일본 직장여성들은 회사 갈 때 어떤 옷을 입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하철에 탄 여성분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약 1주일 정도 출퇴근길 일본 직장 여성분들의 패션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내 나름대로 3가지 공통점도출해냈다.


<일본 직장여성들의 출퇴근 패션 공통점 3가지>

일본의 세련된 직장여성 패션


일본 직장여성들은 기본적으로 회사에 갈 때 굉장히 신경 써서 옷을 차려입는다.
→ 일본 잡지에서 나올 듯한 세련된 오피스룩을 입은 사람들이 많다.


확실히 편한 캐주얼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직장 여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 찢청은커녕 청바지를 입은 사람도 찾기 힘들다.


복장이 다채롭긴 하지만 확실히 일정한 선을 지키며 옷을 입는 느낌이다. 그들만의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하는 듯하다.
→ 안타깝게도 내 처참한 패션 감각으로는 도저히 그 규칙을 알아낼 수 없었다.




흠... 과연 내가 일본 직장여성들처럼

회사 갈 때 세련되게 차려입을 수 있을까?


나는 대부분의 옷을 SPA 브랜드에서 사기 때문에

애초에 차려입고 갈 만한 세련된 옷 자체가 없다.



개인적으로 옷 사는데 돈 쓰는 걸 굉장히 아까워하는 편이라 무리해서 비싼 옷을 사고 싶지도 않고,

회사 갈 때 입는 옷에 그렇게 많은 정성을 들이고 싶지도 않다.

(출퇴근 복장 = 작업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4. 결론


출근할 때 뭐 입을지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냥 욕먹지 않을 정도의 무난한 옷차림을 입고 다니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 내가 생각한 '비즈니스 캐주얼'의 정의 :
나의 존재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무난하고 수더분한 옷차림. 예를 들면 흰색, 검은색, 네이비색 등 무난한 색상의 블라우스나 셔츠에 검은색 정장 치마나 슬랙스, 그리고 검정이나 진갈색의 로퍼 슈즈. (출처 : 내 머릿속)


이상적인 비즈니스 캐주얼의 예시 1
내가 결론 내린 비즈니스 캐주얼의 정석


이상적인 비즈니스 캐주얼 예시 2
출처 : https://prtimes.jp/main/html/rd/p/000000014.000011795.html


흰색 블라우스나 셔츠 + 검은색 정장치마나 슬랙스의 조합이면

출근할 때 뭐 입을지

비즈니스 캐주얼의 허용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더 이상 머리 쥐어 싸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 패션에 욕심이 날 때 컬러풀한 카라 티셔츠를 입어주는 정도의 사치는 부릴 수 있을 것 같다.

출처 : https://to-bally.jp/images/CLR-T-CLD/



"Simple is the best."



내일 퇴근길에 유니클로에 들러서 검은색 슬랙스나 하나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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