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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er Aug 19. 2021

저, 정시에 출근합니다.

험난했던 첫 도쿄지사 출근기




서울 본사에서 근무할 때는

항상 정시에 맞춰서 출근했었다.


내가 근무하던 부서는

수직적인 우리 회사 안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부서였다.

부서장님이 휴가나 출퇴근 시간에도 굉장히 관대한 분이셔서

휴가도 가고 싶을 때 아무 데나 갈 수 있었고

부서원들 모두 정시에 딱 맞춰서 오거나 5~10분 전에 출근하는 게 보통이었다.


8월부터 내가 근무하게 될 도쿄 지사의 분위기가

어떨지는 가보기 전까진 알 수 없겠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내가 있던 부서보다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1. 두근두근 첫 출근길



이번 주 월요일은 2주 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드디어 도쿄 지사 사무실에 처음으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같은 회사 내 인사이동이긴 하지만

근무지가 바뀌다 보니(그것도 서울에서 도쿄로)

이직회사에 첫 출근하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근무지는 일본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도쿄의 중심부,

일본 직장인들의 로망,

도쿄 마루노우치(丸の内)에 위치해있다.

일본 경제의 중심지, 마루노우치 빌딩가


첫 출근하는 날 아침.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은 후

나름 시간적으로 여유 있게 호텔을 나와서 지하철을 탔다.


아무 생각 없이 지하철을 탔는데

헉 세상에 이런 일이...!!!

도쿄 지하철 안에서 국민요정 아이유 님을 발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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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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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지하철에서 발견한 국민요정 아이유 님


한류 열풍이 도쿄 지하철 안까지 점령하다니

내가 광고를 찍은 것도 아니지만 새삼 뿌듯해진다.



현재 묵고 있는 호텔에서 회사까지 환승 없이 한 번에 가려면

긴자역(銀座駅) 내려서 걸어가는 게 가장 빠르다고 나와서

8시 40분쯤 긴자역에서 하차했다.


역에서 회사까지 도보 10분이라고 나오지만

난 걸음이 빠른 편이니까 5분 컷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회사에 도착하면 8시 45분쯤 되겠다.



그런데...



긴자역이 그렇게 클 줄은 몰랐다.


두더지 소굴.. 아니 긴자역 안내도 (출처 : https://www.jorudan.co.jp)


이건 뭐 지하철역이 아니라 두더지 소굴이 따로 없었다.


구글맵 선생님이 A10 출구로 나가면 된다는데

지하철역 출구가 30개가 넘는다...


긴자역을 형상화한 그림 (출처 : 픽사베이)


나..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


태어날 때 방향 감각을 엄마 뱃속에 두고 나온 내가

아침부터 미로 탈출 게임에 강제 참전하게 될 줄은 몰랐다..


탈출구를 찾아서 여기저기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가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듯

정말 운 좋게  A10 출구를 찾아냈다.


가까스로 출구를 찾아 바깥세상으로 나왔지만

진짜 게임은 나와서부터가 시작이었다.


긴자 거리 (출처 : dreamstime.com)

"전사여... 살아남을 수 있겠나..?"

긴자 거리를 형상화한 미로 (출처 : 픽사베이)


멘탈이 바사삭 부서지는 순간이다.

그리운 고추 바사삭(출처 : 굽네치킨 홈페이지)


나.. 오늘 안에 출근할 수 있을까..?

출근 첫날 지각을 해버리는 대참사만큼은 막고 싶었다.


구글맵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열심히 회사를 찾아 헤맸지만

구글맵 선생님이 내 처참한 방향감각까지 어떻게 해주진 못했다.


결국 긴자역에서 5분 컷이라고 예상했던 거리를 20분 걸려서

9시 되기 2분 전 아슬아슬하게 회사에 도착했다.

이미 온몸은 땀범벅이었다.


그래도 하늘이 도왔는지

다행히 출근 첫날 지각이라는 대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첫날 일찍 출근해서

앞으로 함께 일할 직원분들에게 

능력 있고 똑 부러지는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었는데..


의도치 않게 

얄짤 없이 정시에 딱 맞춰서 출근하는

MZ세대의 표본을 보여주고 말았다.



"저, (첫날부터) 정시에 출근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출처 : https://channelj.co.kr/program/view/?drama&bsID=2&pro=253)


이왕 이렇게 된 거 앞으로도 그냥

정시에 출근해야겠다.



#2. 화려한 퇴근길



출근은 정시에 했지만 퇴근까지 정시에 하기엔 살짝 눈치가 보였다.

6시에 바로 일어나진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6시 반쯤 자리에서 일어나서 퇴근 인사를 드리고 회사를 나왔다.


집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또 회사에서 긴자역까지 찾아가야 한다.


그냥 아침에 왔던 길을 그대로 따라서 가면 되는데

퇴근길은 또 완전 새롭게 보인다.


같은 길이지만 올 때와 갈 때를 전혀 다른 길로 인지해버리는 능력은

준비된 길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퇴근길은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 길 좀 헤매더라도

긴자의 화려한 밤거리를 구경하면서 가기로 했다.


길가다가 신기하게 생긴 아이스크림 가게도 발견하고,

길가다 발견한 신기한 아이스크림 가게


화려한 명품숍 건물도 발견했다.

물론 저 명품숍들 중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지만 말이다.

길가다 발견한 화려한 명품 숍 건물


왼쪽에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갔던 미쓰코시 백화점도 보인다.

화려한 긴자의 밤


긴자의 밤은 정말 화려하다.

퇴근길이 너무 화려해서 눈이 핑핑 돌 지경이다.


내 비록 지금은 저 화려한 가게들 중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지만

앞으로 돈 많이 벌어서

미래에는 긴자를 휩쓸고 다니리라 굳게 다짐한다.



저녁을 못 먹었더니 배가 고프다.

호텔 근처 역에 도착한 후 근처 드럭스토어에 들어갔다.

(일본의 드럭스토어에는 약품, 화장품, 생필품, 식료품까지 안 파는 게 없다.)

없는 게 없는 일본의 드럭스토어

오늘 하루 고생한 나를 위한 소박한 선물로

시칠리아 산 레몬이 함유된 레몬 츄하이와

짭조름한 맛이 일품인 명란 버터 쟈가리코(감자스틱)를 사서 귀가했다.

레몬 츄하이와 쟈가리코

퇴근 후 마시는 술 한 잔과 감자 과자는

최고의 조합이다.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우여곡절 많은 하루였지만

무사히 별 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 앞으로도 잘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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