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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Oct 18. 2024

백수가 되어도 끝나지 않는 것들

따뜻한 말 한마디면 되는데

10월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올해의 지긋지긋한 폭염도 저물어간다.

아침저녁엔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기도 한다. 낮엔 여전히 온도가 높지만 밖을 걸어다닐만한 날씨가 되었다.

나는 이 계절이 좋다. 너무 짧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지만, 그렇기에 더 소중한 것도 같다.


나의 행복지수가 연중 제일 높을 때는 10월에서 12월 사이다. 그런데 내겐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다.

행복지수와는 달리 이 시기에 내게는 일신상의 사고(?)가 많이 생긴다는 점이다.


 몇년전 10월 끝자락 즈음 평소와 똑같이 밤에 잠을 자려다 심장이 멎는 듯한 증상에 집에서 고독사할 뻔한 적이 있었다. 머리에도 피가 안 통해서 앞이 캄캄해지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못해 머리를 바닥에 세게 박고서야 정신이 겨우 들었다. 비상상황이 되면 119를 부르던가 소리를 지르던가 해야된다는 것쯤 당연히 알고 있지만 실제상황에서는 소리를 지를수도, 전화기를 찾을 수도 없었다.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사람이 몸에 힘이 빠지고 숨이 멎는다는 것을 제대로 체험했었다. 이마에 난 상처만큼 충격도 좀 오래갔다. MRI상에는 문제가 없어보인대서 정신과로 가란 이야기를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1년 남짓 지나고서 나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 이후에도, 또 그이후에도 10월이면 어디가 크게 아프던가, 교통사고가 나던가, 컨디션이 매우 안좋아서 나가기 힘들다던가의 일이 반복됐다. 그래서 10월이면 각별히 조심했다. 생각해보니 회사도 10월에 그만뒀다. (곧 진짜 무직신분이 된 지 딱 1년이 된다)


 어제 병원에 다녀왔다. 월요일부터 고개를 숙이거나, 잘때 돌아누울때 눈앞이 돌면서 평형감각을 잃어버렸다. 날이 흐리고 기압이 낮아서 그런가 했다. (기압낮은 날엔 두통이 약간 있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적이 많았다) 그런데 그 증상이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나의 공황증상과 조금 달랐다) 그런데 3일이 지나도록 증상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병원에 갔다. 눈동자를 움직이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하는 검사를 받고 이석증 진단을 받았다. 에효.


 이석증 증상엔 원인이 불명이라고 한다. 현대인들이야 스트레스 얘기를 한다. 물론 백수도 스트레스 받는다. 그런데 뭐 회사다닐 때에 비하면....오히려 의사는 원인불명이라고 했을 뿐 스트레스 얘기를 하지 않아 좋았다. 이틀 후 다시 보기로 하고 병원을 나왔다. 그런데 약사 선생님이 나의 약을 주시면서 앉아보라고 했다. 이석증 진단 받았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다. 약사가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입을 뗐다.


"혈색이...증상 처음이신 거 맞아요?"

"네. 처음이요."

"음...혀를 좀 내밀어 보실래요?"


응? 혀? 내 얼굴과 혀를 살펴보더니 미네랄과 철분, 비타민D를 잘 챙겨먹으라고 했다.(약팔려고 그러는가 싶어서 첨에 좀 경계했다) 그러더니 최근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스트레스야 받지. 안 받는 사람이 있을까? 생리주기도 물었다. 생리 끝나고나서 생겼다고 했다. 그랬더니 몸에서 에너지를 다 빼서 쓰고 혈액도 모자르는데 생리까지 하고 나니 이석이 온 것 같다며 시간내서 혈액검사를 받아보라고 하고는 약을 줬다. 엥? 뭐 약 이런건 안 파나? 그런얘긴 없었다.


 집에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랬다. 최근에 내게 있던 이벤트가....일단 나의 19년지기 멍멍이가 강아지별로 떠났다. 가정불화가 있었고 그리고....지금은 동생내외가 1살안된 조카를 데리고 부모님댁에 와 있다. 또 집에 새로 강아지를 임시로 맡아 기르고 있다. 백수가 된다고 아주 지루하고 이벤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크고작은 스트레스와, 그리고 건강상의 문제는 백수가 된다고 안 생기지 않는다.


 백수가 되면서 불편한 점이 또 하나 있다. 가까운 이들이 내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을 쉽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올케가 몸에 이상이 생겨 조직검사를 받고 동생은 일이 생겨 잠시 한국을 떠났다 돌아오는 상황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조카아이를 봐야 하니 나에게 본가로 매일 일찍 와서 애를 보자는 말씀을 하셨다. 솔직히 시간이 있고, 나도 부탁을 한다면 잠깐씩 봐줄 용의는 있지만 당사자인 동생내외가 부탁한 게 아니면 내가 왜? 라는 생각이 든다. 감기에 걸려서 아플때를 제외하고 거의 매일 하루 세번씩 부모님댁에 들렀고 하루에 최대 두끼이상 먹지 않는 나도 억지로라도 아침점심저녁을 같이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석이 오고나서 어지러워서 거의 누워 자는데 한시간마다 아버지한테 문자가 오고 전화가 온다. 늙은 아버지가 우는 손주를 앞에 메고 하루에 네다섯시간씩 밖으로 나가 재워주고 놀아주는데 동생내외는 엄마가 부재중인 짧은 시간에도 아버지 식사 한번 챙겨주는 법이 없다. 애 밥부터 챙겨야하고 동생 혼자 육아중이니 어쩔수 없는 것은 안다. 하지만 말 한마디라도 아버지 고생하시는데 드시고싶은 거 없어요? 제가 사드릴게요. 라고 부부가 한번을 말을 안한다.(올케고 동생이고 내가 보기엔 똑같다) 나에게는 애증의 아버지지만 또 다른사람이 홀대하는 걸 보면 속이 터진다. 그 비싼 집값도 대주고, 한국 왕복 항공비즈니스석도 끊어주고, 몇백만원어치 며느리 피부미용비용에, 비보험 병원비, 각종 쇼핑비용(AND 이제는 시터도 부를테니 시터비용 추가)까지 다 대주고도 예의없이 구는 내외를 보는 것도 불편하고, 그러면서 말도 못하고 끙끙 앓으면서 만만한 나한테 은근히 육아부담을 전가하는 것 같아 아버지한테도 불쾌하다.


 엄마와 외할아버지는 며칠 전 여행을 떠나셨다. 아흔 훌쩍 넘기신 할아버지와 여행갈 날이 언제나 오겠냐며 다녀오시라고 했다. 용돈도 챙겨드렸다. 할아버지는 자꾸만 나에게도 여행을 가자고 하셨다. 여건이 된다면 너무 좋지만 임시보호강아지가 있어 같이갈 수 없었다. 몇시간 잠깐이면 모를까 1살 안된 애가 있는 집에다 개까지 몇일 맡기기도 그렇고, 어차피 내가 간다했어도 못갈 그림이었다(올케가 누워있으니...)할아버지는 늙은 할아버지의 딸이 운전하는 게 안쓰러워 나에게 시키려고 그러셨다고 덧붙였다. 조금 섭섭했지만 원래 손주보단 자식이 가까운 법이니 그럴수도 있다. 백수가 되면 내 시간이 온전히 많이많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인간관계는 홀로 출가해 산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회사의 인간관계가 죄다 끊어지니 이제 가족관계가 발목을 잡는다.


 타인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실망도 하는 법이다. 너무 인색하게 살지 말자고 다짐하고 다짐하는데 나도 인간인지라 내가 하는 희생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에게 뭔가 내어주기는 싫다. 그게 가족이면 더욱더 그렇다. 인간은 다 다르고, 다름 그 자체가 불편한 건 당연하다. 친한 친구가 내게 "불편한 것을 우아하게 표현하는 법을 익히려 부단히 노력해왔다"고 했다. 가족인데 그정도도 못 해주냐고 한다면 가족인데 왜 말한마디가 어렵냐고 하고 싶다. 그런데 그것도 나와 다른 가족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기대를 내려놔야 되는 거겠지?

어제 회복중인 올케가 내게 아이보느라 아픈 거 같아서 마음이 안좋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절대 그것때문에 내가 아픈 건 아니지만 말이라도, 마음에 없는 말이라도 마음써준 말이라서 고마웠다. 다른 것들은 다른 거고. 내가 바란건 그저 그거 하난데. 그게 그렇게 어렵냐. 이 빌어먹을 동생놈아?


 아. 쉽지않다. 현명한 독자 여러분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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