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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Oct 25. 2024

병원에 갔다가 인간 바베큐가 되었습니다

인간통구이 될뻔한 사연


 이석증으로 이비인후과를 다니게 되었다. 

엄마의 고질병을 유산으로 물려받게 될 줄이야. 

이석증은 귀의 평형감각을 잡아주는 돌들이 떨어져나가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병이다.

증상은.....고개를 숙이거나 특정자세를 했을 때 앞이 마치 다람쥐통을 탄것처럼 돈다.

그래서 중심을 잃으면 낙상사고의 위험이 있다. 

특정자세란 건 사실.....딱 고정된 자세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그냥 어느순간 올 수 있다. 공황과 비슷하다. 하지만 사람은 인형이 아니므로, 그냥 앉았다 일어서거나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아주 간단한 움직임에도 돌아돌아 증상이 오기때문에 빈도가 훨씬 잦다. 


기압이 낮아서 좀 어지러운가...하는 증상이 3일 이상 가자, 전적이 있던 엄마가 이석증같다며 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엄마의 단골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선생님이 귀 안을 들여다보고, 이석증 진단을 위한 검사를 했다. 어딘가를 밟고 서서 균형잡는 검사, 머리와 눈에 뭔가 쓰고(잘못 보면 VR게임하는 줄 알 법한 비주얼) 화면을 보라고 하는데 이게 은근 눈도 아프고 피로하다. 그리고 나서 누웠다 일어났다 고개를 돌렸다 말았다 하는 자세를 하며 안구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이걸 그 VR 기구같은 걸 씌운 채 하는데, 눈 앞이 마치 흑백요리사 눈가리개를 한 냥 캄캄하다. (이븐하게 익었는지 맛볼 음식은 없지만...) 안 보이는데도 눈을 크게 떠야하는데 계속 고개를 움직여대니 어지럽고 메스꺼워 꽤 힘들다. 어쨌든 그 힘든 과정을 거쳐 이석증을 진단받았다. 


 첫날은 귀 뒤에 진동기를 대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딱 받고 나왔을 때는 그냥 아무렇지 않았는데 집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울릉울릉 울릉도로 향하는 배를 탄 것같았다. 그 배를 계속 타고 가는 느낌?

오래 지속되니 당연히 속이 안좋고 식욕은 전혀 없었다. TV도 끄고 계속 눈감고 누워있었다. 잠이 들면 그게 멈추니까 계속 잠만 잤다. 약을 먹으면 잠이 오기도 하고. 둘쨋날은 더 심해졌다. 아니, 병원을 갔음 나아져야 하는 거 아니야? 나 뭔가....진료가 잘못된 게 아닌가? 유경험자인 엄마의 얘기로는 물리치료 첫날이 힘들지만 둘째날부터는 확실히 괜찮아질거라 했다. 지옥의 주말을 보내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선생님은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더니, 전보다 좋아졌다며 회복기에서도 어지러움, 메스꺼움, 편두통을 느낄 수 있다며 크게 걱정하지 말라 했다. (선생님, 그건 걱정이 아니라 아픈 거잖아요...)아무튼 난 또 울릉도 아니 독도행 배에 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안고 물리치료실로 향했다. 그때였다.


"쌤, 바베큐 준비해주세요!"


바.....베......큐.......?



분명 물리치료실로 나를 보내며 간호사선생님께 의사쌤이 하는 말이었다. 엥? 바베큐? 설마...나를 두고 한 말인가? 아니겠지? 아....이 병원은 아침부터 바베큐얘길 할 정도로 돈독하신가? 그래도 그렇지 무슨 아침부터 일하다 말고 바베큐 타령을 하냐....설마, 나를 뜨끈한 통에 넣고......통으로 바베.......헉! 에이~

N성향의 내 망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내 망상은 그저 망상이 아니었다. 간호사선생님은 나를 눕혔다. 그러더니 "오른쪽으로 돌아누우세요" "조심히 엎드리세요" "다시 왼쪽으로 돌아누우세요" "똑바로누우세요" 순서대로 나를 통돼지처럼 굴렸다. 

그렇다. 나는 바베큐대상이 맞았던 것이었다. 

그럼 난....통돼지야? 


말도 못하고 약간의 수치심을 느끼며 물리치료를 마쳤다. 밖에서 기다리던 가족들에게는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다. 혹시 내가 잘못들었을 수도 있잖아. (청력에는 이상이 없다 했는데) 그러고는 집에가서 조용히 네이버에 이석증 바베큐를 쳐봤다. 

그랬더니 이게 떴다.


출처 : 네이버 검색창


뭔가...내가 한 동작과는 다른 설명같지만 어쨌든 이석증의 치료법으로 바베큐가 실제 있다는 거였다!


혹시 나와 같은 이석증 환우 여러분께...아니, 앞으로 겪을지도 모를 예비환우분들께 공유드리니, 의사 입에서 바베큐 소리가 나와도 당신은 통구이가 아닙....아니, 의학용어이니 수치심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의사쌤들께 조심스레 여쭤보고 싶습니다. 

매우 직관적인 용어이긴 한데.....통구이 당하는 입장에서는 약간 수치스럽긴 합니다. 

용어 변경은 어려울까요????


아무튼....이석증 물리치료차 인간 통구이가 되었다. 


그 다음날, 절친한 전 직장 선배에게 전화를 받았다. 예전같으면 회사 뒷담화나 업무 애로 등의 얘기를 했을 수 있는데 우리의 주제는 건강이었다. 젊을 때도 가성비 떨어지는 배터리 같은 몸을 가졌던 선배와 나는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고 건강관리에 꽤 진심이었음에도 AS센터 방문이 잦아졌다. 우리의 대화는 결국 건강해야 퇴사든 뭐든 도모할 수 있겠다는 결론으로 끝이 났다. 부지런해도, 나처럼 백수로 쉬고 있어도, 건강이슈는 피해가지 못한다. 이석증상 10일이 지나 지금은 배탄 것 같은 흔들림은 사라졌지만 매일같이 자가 통구이 바베큐 치료 중이다.  비타민D, 미네랄, 철분이 부족하지 않게 잘 챙겨먹으라고 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부디 통구이 신세를 지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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