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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Nov 22. 2024

백수도 금요일 밤이 좋아

만인의 요일, 불타는 금요일이다.


백수가 되면 금요일이든 월요일이든 상관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습관이 무서운 것인지 참 희한하다.

요상하게 금요일만 되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즐거운 것이다.

괜히 느슨해져서는 금요일 저녁은 무리해서라도 꼭 맛있는 걸 먹는다.


 오후에 볼일을 잠깐 보고 들어오면서 오늘 저녁은 뭘 먹을지 정했다. 백이면 백 마다않는 치킨이다.

요즘은 1인가구용으로 조금 작은 양의 치킨을 주문할 수 있는 곳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오늘 비싼 치킨을 시켜먹을거다. 그 브랜드에 그 메뉴는 1인용으로 주문이 안된다. 하지만 먹고싶다. 그러니, 진행시켜~!

집에 와서 배달시키려 보니 그집에 피자메뉴도 있었다. 오래 전 미국의 사촌오빠를 방문했을때 오빠가 시카고 명물맛집이라며 딥디쉬를 사줬었다. 오리지널 딥디쉬는 치즈도 풍성하고 정말 컸다. 전성기때 미국 빅사이즈 피자 반판이상 혼자 뚝딱하던 나지만 한조각 이상 먹지 못했다. 치킨집 딥디쉬피자 메뉴를 보니 참을 수가 없다. 피자도 시켰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다섯시 즈음 시켰지만 배달은 여섯시가 조금 넘어서야 도착했다. 배달음식, 택배를 수령하려 현관문 열 때의 설레임은 정말 질리지가 않는다. 벌써 맛있는 냄새가 가득퍼진 복도에서 내 음식을 낼름 집어들고 집안으로 들어와 펼쳤다. 전에 사다둔 맥주도 한캔 땄다. 식탁 가득 음식을 차려놓고 앉으면 정말 행복하다. 부자가 된 기분이다.


 누가 보면 혼자서 굳이 투머치로 그렇게 음식을 시켜먹느냐고 뭐라 하겠지. 어차피 한번에 다 먹지도 못할 거, 청승이라고 하는 이도 있을테다. 평소에 항상 이러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혼자라도 어쩌다 한번, 그렇게 좀 느슨하게 사치부리게 되는 날이 있다. 보통 그게 금요일 저녁이다. 나는 매일 늦잠자도 아무도 뭐라할 사람도 없고 그렇게 해도 큰 문제가 없는데도, 이상하게 금요일 저녁이면 내일은 유일하게 게으름 피워도 되는 날 같다. 오래 그런 생활을 하다보니 아닌데도 그냥 내 무의식이, 감정이 착각을 한다.


 백수도 금요일 저녁이 되면 한주를 돌아본다. 사실 오늘은 꽤 바빴다. 지방에 잠깐 여행을 다녀온 후로 어수선했던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하느라 앉지 못하고 집안일만 했다. 겨우 소파에 엉덩이 붙이고 시계를 보니 오후 두 시. 낮잠 30분 자고 책 조금 읽고 바깥에서 볼일 조금 보고 들어와서 저녁먹으니 지금 이 시간이다.  이번 주도 굉장히 빠르게 지나갔다. 놀러도 갔고, 집정리도 했고, 크고작은 일들을 결정하고 해결했다. 그런 것 때문에 그냥 나도모르게 스스로에게 보상심리가 발동했나보다.


 지금의 내게 금요일은 내 생계수단인 주식시장(주로 해외장을 본다)의 한주 마지막 날이다. 다른 요일보다 늦게까지 잠들지 않고 시황을 확인한다. 직장에 다닐 땐 일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동일한 경제적 보상이 정해진 날 들어왔지만 지금은 실시간으로 내 경제적 보상량이 움직인다. 그래서 금요일이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같은 논리로, 주말이 솔직히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확인이 안 되고, 액션을 취할 수 없으니까.) 월요일이 기다려진다는 게 직장인일 때와는 사뭇 다르다. 시장이 나쁘지 않아서 그런지 주말보다는 주중이 좋다.


 백수일 때도 직장인일 때도 좋은 금요일. 그렇게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먹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지금 입병이 잔뜩 나서 입술 안쪽과 혀 옆쪽이 다 쓸리고 쓰리지만 그래도 맛좋다. 남한테 손벌리지 않고, 직장이든 투자든 내 능력껏 사고싶은 것 먹고싶은 것 구입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어서 좋다. 남은 음식은 냉동실이라는 아주 훌륭한 보관수단이 있다. 적어도 서너 끼는 해결할 수 있으니 부자된 기분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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