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임시보호 멍멍이와 함께 살고있다.
19년지기 멈머(얼마 전 강아지별로 여행을 떠났다)는 매우 소심 예민하고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와 함께 살고있는 이녀석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다.
매우 양반멍멍이라는 것을.
두달 전 우리집에 온 이친구는 3개월된 퍼피였다.
가래떡같이 하얀 털과 큰 귀, 짧은 다리를 한 이녀석은 가정집에 오면 통과의례인 밤샘하울링은 커녕
하울링 비슷한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켄넬에서 내리자마자 집안 곳곳을 조심스레 탐색한 후에 맘마와 물을 조금 먹고는 깔아놓은 패드
정 가운데에 오차없이 볼일을 보고는 조용히 잤다.
뭐 이런 양반멍멍이가 다 있지? 싶을 정도.
하루이틀이 지나자 엄마멍멍이마냥 내 뒤를 쫄랑쫄랑 따라다니기 시작했고
어쩌다 내가 외출을 해도 잠깐 낑 외마디 한번 하고는 거실로 쫄쫄 들어가 제시간을 보냈다.
어디 아픈건가? 싶었지만 병원에 데려가도 아주 건강하다고 했다.
반려동물과 산 지 십수년인 나의 구력상 이 아이의 성격은 매우 차분하고 양반인 것이었다.
게다가 똑똑해서 하지 말라고 하면 바로 안 하고 사람에 대한 친화력도 좋았다.
아주 짧은 개춘기를 지나 두달이 된 지금 우리 둘의 동거생활은 매우 안정적이 되었다.
입양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타이밍이 맞지 않아 이 친구는 다음달에
미국으로 건너가 평생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성격도 좋고 건강하고 대인 대견 사회성도 좋아서 어딜 가도
잘 적응하고 예쁨받으며 잘 어우러져 살 친구다.
외모도 너무나 유니크하고 귀엽다. (하얀 진도코기기타등등 믹스된 아주 특별한 아이다)
그러니 걱정할 것이 없다. (솔직히 이친구가 떠난 후에 나만 잘 적응하면 된다.)
멍멍이도 그렇지만 요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에 대해서 반추하게 된다.
너무 직설적으로 언행하는 사람들이 예전엔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었는데
솔직함으로 포장하기에는 너무 무례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서 그리 좋게 생각되지 않는다.
나 역시도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아니, 아직도 그런 사람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고 무례했구나...싶었던 기억들이 파편처럼 떠오를 때가 많다.
물론 상황상 다소 부드럽지 못하더라도 그런 대응을 해야하는 때도 있다. 그런데 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었는데...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일할 때 버릇이 되어놔서 그런지 어떤 때는 아주 적나라하고 세세하게 직설적일 때도 있고
반대로 어떤 땐 너무 생각이 많다보니 에둘러 말하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된 적도 종종 있었다.
표정은 또 어떻고. 나는 원래 표정관리가 잘 안되는 인간이기도 하다.
생각이 너무 얼굴에 투명하게 드러나는 편인데 이건 결국 생각과 감정을
둥글게 가지는 연습을 부단히 할 밖에 없다.
정확한 의사전달 두 스푼, 온화로운 표정 한 스푼, 세련된 말솜씨 세 스푼 이렇게
레시피라도 있다면 좋으련만.
요즘 즐거운 어른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나는 막연하게 단정하고 친절한, 하지만 내공은 느껴지는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즐거운 어른의 저자는 여러해를 가정주부로 생활해오신 70대 여성분인데 내가 추구하는 친절까지는 아니지만 여러모로 나의 꿈에 가까운 롤모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멋진 생각과 행동을 하시는 분 같았다. 도덕교과서에 나오는 얘길 하시지도 않으면서 유쾌하게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시는 것이 세련돼 보였다.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것은 그사람이 이룬 사회적 업적과 부가 아니라 건강한 마인드와 태도같다. 나는 아직도 수양이 덜 되어서 비싼 명품백도 있고 한데 요즘은 좀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백수고 뭐고를 떠나서, 그렇게 고가의 물품이 나에게 어울리는건지 자꾸 묻게된다. 오랜시간동안 장인정신과 좋은 히스토리를 쌓아 가치를 인정받은 명품들을 든다고 내가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저 기호와 패션이기에 저축을 하든 돈이 많아서든 사고 쓰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자유다. 하지만...언젠가 알면서도 등쳐먹는 사람에게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 남자의 팔에 고가명품 팔찌가 걸려있었다. 가뜩이나 비호감이었던 사람이 더 없어보였다. 이런식으로 사람들 돈을 등쳐서 산 명품이구나 싶어...
오늘 운전을 하면서도 느꼈다. 비싼 외제차가 위험하게 차 사이를 다니는 걸 보면서, 예의없는 인간들이 두른 고가품은 그저 천박함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란 사람은 어떨까. 오늘 길에서 만난 다른 차들은 내 차를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인간의 캐릭터엔 정답이 없다. 하지만 품성, 품격에는 등급이 있다. 별 다섯개짜리 인간이 되긴 어렵겠지만, 별한두개짜리 인격으로 익어가고 싶지 않아졌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품성 품격도 솜솜히 뜯어 생각해보면 정답이 없을 것도 같다. 배려심은 조금 떨어지지만 정이 많은 사람도 있겠고, 위트는 조금 떨어지지만 따뜻한 사람도 있듯이....그렇게 자신의 레시피를 만들다보면,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