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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Sep 13. 2024

10개월차 백수의 소비생활

가볍게 살고 있습니다

 와, 이제 살 게 없다.


 회사를 다닐 때도 그만두고 난 후에도 나는 소비요정이었다. 옷이나 모자 등을 사는 것에 돈을 쓰기도 하고 살림용품, 비교적 고가의 전자제품을 사는 것도 좋아했다. 배달 앱은 거의 뭐, 븨븨븨아이피 수준으로 사용했다. 아주 '지겹도록' 소비를 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내가 이상하다. 집안 정리가 어느정도 끝나가고 있어서도 있고, 그냥 별로 갖고싶은 게 없다. 먹고싶은 것도 없다. 알림문자를 뒤져보니 내가 최근에 한 소비는 병원진료비와 약값, 그리고 절친한 지인의 생일선물(1주일 전)이었다.  배달음식은 열흘도 넘게 시키지 않았다. 이쯤 되면 배달업체에서 "고객님, 어디 아프신거 아니죠?"라고 가정방문 할 법도 한데. ㅋ 


 옷은 이미 있는 옷도 많이 버리고 현재 생활패턴에 맞는 옷들은 이미 충분하다. 머리는 길러보기로 했다. 내가 먹는 것은 하루 커피 한잔(원두), 맥주 한두 캔, 우유, 토마토, 가끔 라면 이정도다. 간단하게 허기를 해소할 만큼의 음식은 이미 냉동실에 있는 걸로도 해결된다. 잘 안보는 OTT와 각종 앱 등도 구독해지했다. 최근 쓴 돈 중 가장 금액이 큰 건 아파트관리비였다. 여름피서를 가지 않으니 집에서 에어컨을 거의 매일 매시간 틀어놓았으나 그에 비해 관리비 자체가 많이 나온 건 아니었고 에어컨 틀지 않았던 전달보다 2~3만원정도 더 냈다. 


 억지로 졸라맨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불편하지 않다. 편하다. 매일 오던 택배포장 쓰레기도 없고 맨날 핸드폰으로 쇼핑 앱 들여다보던 시간이 없어져서 책도 많이 읽고 있다. 원래 나의 목표는 하루에 딱 1분만 책을 읽는 거였는데 일주일에 두껍지 않은 책 2권 정도는 평균적으로 본다. 짧은 산책도 한다. 아직 더위가 꺾인 건 아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살짝 나가서 5분정도 아파트 단지를 한바퀴 돈다. 풀냄새도 맡고 출근하는 사람들도 보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딱히 갖고싶거나 하고싶은 일이 없는 요즘의 생활이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 변화가 왜 찾아왔는지도 지금은 잘 모르겠다. 다만 주변정리를 잘 해두고 삶에 예기치 않은 요동이 찾아와도 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거기에 약간의 명랑 한 스푼. 미니멀리스트까지는 아니고, 마음도 몸도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렇게 살아볼까 한다. 가볍게. 언제든 뭐가 되든 원하는 것이 있을 때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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