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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Aug 17. 2024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삶

 

 "저기 담벼락 끝에 보시면 흙이 모자라거든요. 버리는 화분 있으시면 거기에 흙을 뿌리고 밟아두세요."


 작은 화분들은 흙을 일반쓰레기봉투에 넣고 버렸었는데, 큰 화분들은 양이 많다보니 이걸 그렇게 버리는게 맞나 싶어 경비아저씨께 여쭤보니 그렇게 하라고 하신다. 잘됐다 싶어서 좀 덜 더울때 소생불가로 판명된 블루베리 화분을 버리려고 베란다 구석탱이에 화분을 박아둔 채로 외면하고 한참 지냈다. 그러다가 다른 화분을 들이게 될 것 같아 진짜로 정리하고 토분을 분갈이용으로 쓰려고 봤는데 어? 못보던 게 생겼다.


이게 뭐지? 하고 보니 새잎이었다!

죽은 거 아니었니????



남은 잎들도 다 누렇게 말라들어가서 떨어진 앙상한 가지에 새 잎이 몇개가 나 있었다. 사실 분갈이를 1번 해준 아이였는데, 분갈이 때 화분에서 나무를 꺼내보니 흙이 너무 단단하고 축축해서 좀 말리려고 별 짓을 다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단단하게 멍석말이 되어있듯 뭉친 그 본진 뿌리 덩이를 어쩌지 못했고 그렇게 과습으로 죽어갔다. 물은 한달 넘게 주지 않았고 통풍만 무지하게 시켰는데도 속수무책이었는데. 얘도 살고 싶었던 걸까. 새 잎을 보자 정신이 번쩍 나면서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식집사 초초보인 내 방법이 맞는지는 몰라도 일단 단단히 굳어있는 흙과 과습을 해결해야 될것 같았다. 무중력 습도측정계(흙에 꽂으면 과습한지, 말랐는지가 측정해주는 꼬챙이같이 생긴 기계)로 흙을 막 쑤셨다. 구멍을 내는 것이다. 뿌리가 다칠 것 같지만 그 방법이 제일 덜 다치면서 통풍을 시키는 방법 같았다. 그래서 안쪽 흙 깊숙한 곳까지 구멍을 내 놨다. 선풍기는 낮시간동안 계속 돌리므로 그렇게 해두면 전보다는 낫겠지 싶었다. 그렇게 해두고 이틀을 지나니, 블루베리 잎사귀가 두어개가 더 올라왔다. 어휴. 하마터면 멀쩡한 애를 땅에 묻어버릴 뻔했다.


 매번 죽이던 마오리 소포라도, 햇빛을 좋아한다기에 가장 해가 잘 드는 창가 바로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두었더니, 매번 잎만 떨구던 아이가 3일만에 새 순을 내보였다. 거기가 네 자리였구나. 안 되면 그 아이도 작별하고 화분만 다른 아이들 심을 용도로 쓸 생각을 했었더랬다. 연둣빛 새 순을 내보이는 마오리 소포라는 진짜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과습이 안 좋은 아이라길래, 정말 마를 때까지는 물 주는 것을 약간 자제해볼 생각이다.

 식물도 생물이라서, 매일같이 봐 주고 사람이 신경을 쓰면 확실히 다르다. 좀 미친소리 같겠지만 가끔 식물에 말도 걸어본다. 저절로 그렇게 된다. 야, 너 진짜 대단하다. 이렇게. 가끔 나도 모르게 박수도 친다. 플럼바고라는 꽃이 피는 식물이 있는데, 이 아이는 번식력이 남다르고 건강하다 해서 들였다. 한달여 동안 꽃을 두번째 피우고 있다. 보랏빛 작은 꽃들이 만개하면 정말 예쁘다. 키도 많이 컸고, 잎사귀들도 건강하다. 화분이 너무 작아서 조금만 큰 화분으로 옮겨줄 계획이다. 내가 키운 최장수 나무화분은 유주나무인데 얘는 거의 1년동안 최소 두세번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어쩜 그렇게 열일을 하는지 진짜 신기하다. 병충해도 벌레도 없다. 키운 지는 거의 6년 된 것 같은데 한번도 아픈 적이 없다. 더운 한낮엔 32도까지 찌는데 그 와중에도 새싹을 올리는 식물들을 보면 덩달아 기운이 난다.


 인간도 그렇지만 죽는 게 쉽지 않다. 꺼져가는 와중에도 힘을 내서 싹을 틔우는 식물들을 보면서 살아있는 모든것들에 경외감을 느낀다고 하면 좀 오버일까. 그런데 진심이다. 신기하게도 식물을 키우면서 나 자신도 조금씩 돌보게 된다. 생전 한번 안 하던 팩을 하고, 머릿결도 관리하고. 물을 마셔도 몸에 좋다는 대로 마시게 된다. 요즘은 배달음식 대신 장을 봐서, 그리고 직접 채소를 키워서 먹고 있다. 회사 프로젝트 잘 되는 것보다 뿌듯하다. 아무래도 난 백수가 정말 체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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