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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똑같은 풍경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한겨울에 떠난 아이슬란드 여행

by 길 위의 앨리스 Jan 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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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중 작성된 글이며 발행시점과 상이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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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겨울의 나라, 아이슬란드에 있다.


한겨울에는 하루 네시간 정도만 해가 떠 있는 곳. 그래서 가성비를 따지는 사람이라면 절대 겨울에는 오지 않을 것만 같은 곳. 그리고 이름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추위.


 한 겨울에 하필이면 왜 아이슬란드? 라고 묻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멀기도 하고, 유명한 것도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물가가 쌀 것 같지도 않은 그런 곳. 추운 날씨만큼 사람들도 차가울 것만 같은 곳.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와서 보니 틀린 말도 아니다. 핀란드나 영국을 경유하면 1번의 경유로도 닿을 수 있지만 나는 공짜표를 찾아 헤메는 하이에나 같은 백수 아닌가. 넘쳐나는 아시아나-스타얼라이언스 마일리지는 비즈니스로 세계일주를 할 수 있을 만큼이나 쌓여있는데 마일리지표를 구하기란 정말 로또맞을 확률과 비슷하다. 나같이 시간 넘치는 백수야 새로고침과 검색조건을 백만번씩 바꿔가며 찾는 손품을 팔 수 있겠지만 일반인이 어디 그러한가. 어찌됐든, 나는 생각보다 짧은 손품(약 1주일?) 기간을 거쳐 유럽 왕복 비즈니스 티켓을 손에 쥐었다.


 그렇지만 공짜 비즈니스 표들이 항상 그러하듯 내 입맛대로 목적지까지 바로 가는 표가 구해지지 않았다. 해서, 나는 인천-로마 직항으로 유럽대륙에 도착해 하루를 자고 난 후 또한번의 경유(로마-프랑크푸르트-레이캬비크)를 거쳐 이틀만에 아이슬란드에 닿았다.(따져보니 거의 36시간 만에...) 그러니 내게 아이슬란드는 정말 남미만큼이나 머나먼 땅이었다.


 가기 전 물가에 대해서는 유튜버들이 하도 말을 많이 해서 마음의 준비가 조금 되어있었다. 그런데다 아이슬란드가 워낙 천혜자연의 땅이므로 렌트카를 하던 여행사를 통한 당일~2일 투어를 하던 부수적인 비용이 상당히 들 게 뻔했다. 운전실력이 별로 뛰어나지 않은 1인 여행자가 겨울에 도로사정도 모르는 나라에 가서 차를 굴리기란 비용적으로나 안전상의 이유로서나 굉장히 부담스런 일이었다. 그래서 여행사를 통한 당일투어 상품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과감히 안락한 호텔을 포기하고, 호스텔을 이용 중이다. 6인실 이용 기준 5박에 약 32만원을 지불하였고 위치나 안락함, 청결도 등을 고려할 때 굉장히 합리적인 소비였다고 생각한다. (타도시 호스텔 대비 비싸지 않다)

6일동안 자주 자리잡았던 호스텔 내 창가자리와 부엌.



 하지만 당일투어의 경우 저렴한 것을 서치하더라도 10만원~25만원선의 비용이 지출된다. 내가 여행했던 국가들의 평균치를 낸다면 대략 탑3 정도 수준이긴 하다. 커피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저렴하다. 아메리카노가 약 2천원선에서 시작되고 맛집이라 소문난 카페에서 라떼를 사먹어보니 대략 7천원정도 가격이다. 그리고 한번의 아이슬란드 정찬(3코스밀로 양고기스테이크를 먹었다) 비용이 주류포함 약 12만원 수준. 워낙 우리나라 물가가 무시무시한 수준으로 올라서 그런가 지옥물가란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마끼아또. 7천원.(시내카페) 토마토치즈그릴샌드위치와 코코아. 1만 9천원.(온천시설 안)



 추위는 생각보다 덜하다. 오히려 한국이 제일 추운 거 같다. 작년에 갔던 뉴욕도 그랬고, 아이슬란드도 따뜻한 날은 영상 9도까지 올라간다. 밤에도 영상 4도를 유지한 날도 있었다. 물론 빙하투어나 크루즈투어, 야간투어를 할 경우는 옷을 껴 입어야 한다. 국적을 불문하고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여행객들 사이에 방수부츠와 스키바지는 국룰인거 같았다. 하지만 난 대한민국의 한파를 겪은 40대 중년이다. 절대 죽지않지. 스타킹과 히트텍, 그리고 면추리닝으로도 야간4시간 투어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우리에겐 비장의 무기, 핫팩이 있다. (핫팩은 정말 천하무적이다) 결론적으로 아이슬란드보다는 한국이 더 춥다. 물론 안 그럴 때도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이번 12월 날씨는 아이슬란드가 훨~~~씬 따뜻했다. 영하로 내려간 시기가 거의 없었고, 내려가봤자 영하 3~4도가 최하였으니까.

(네, 안그럴 때도 있겠죠. 반박 시 님말이 맞습니다)


 아직 찾아보진 않았지만 아이슬란드는 관광산업으로 상당부분의 경제를 지탱하는 것 같다. 아무도 안 올 줄 알았지만 버스 정류장에는 투어를 기다리는 관광객들이 낮이고 밤이고 넘쳐난다. 마트에는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월등히 많다(12월 기준) 시내버스에도 9할이 관광객이었다. 그래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아주 친절하다. 영어도 대부분 잘 하는 것 같다. 시내의 건물과 거리는 깨끗하고 정갈하다. 사람이 많은데도 지저분한 구석이 없고 나간 동네같은 느낌도 없다. 화산이 터졌는데도 바로 옆 온천탕엔 사람이 미어터진다. 온천까지 가는 길에는 화산재로 덮인 황량한 대지가 전선줄이나 조명 하나 없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우리가 무슨 자동차 CF하는 곳을 보면 도로만 덩그라니 놓인 채 천혜 자연경관이 펼쳐지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는데 딱 그거다.

레이캬비크 시내. 그리고 저녁8시반 오로라투어버스를 기다리는 인파.

 지금은 아침 8시 반, 아이슬란드 케플라비크 공항 안이다. 10시 비행기로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저녁시간 비엔나에 도착 예정이다. 4시쯤 일어나 씻고 짐을 챙겨 다섯시반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숙소 앞에서 탔다. 그시각 레이캬비크의 기온은 영상 4도. 강풍이 불었지만 한국보다 춥지 않았다. 선이 고운 얼굴을 한 젊은 태국 여자분과 둘이 버스터미널을 거쳐 공항으로 왔다. 사실 난 핀에어에 대한 기억이 반반이다. 처음엔 친절한 따루씨를 닮은 여성분이 한국말로 안내를 해주고 짐도 무거운데 그냥 부쳐줬다. 그러나 다음번부터는 약간의 오버웨잇도 얄짤없었다. 그리고 핀란드 공항에서 입국심사자의 고압적 태도로 그닥 인상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의 약간의 오버웨잇한 짐도 그냥 부쳐주었고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중국 단체관광객들의 혼돈의 드롭오프 속에서도 줄을 먼저 섰던 내 차례를 인정해줬다.


 체크인과 드롭오프를 마치고 보안검색대로 향하는데 그 태국여성분을 다시 만났다. 우리는 내적 친밀감에 마치 친구를 다시 만난 듯 아이스란드 여행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파리에 사신다는 그분은 고향인 태국으로 향하는 길인데 오로라투어 때보다 남부 해안투어를 떠났을 때 훨씬 선명한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역시 남부 해안 투어를 했어야!!) 나는 두번의 오로라헌팅투어를 신청했는데 처음엔 완전 실패, 두번째에 겨우 성공...했지만 육안으론 아주 희미하게 보이는 정도였다. (카메라를 들이대야 선명한 오로라를 볼 수 있다. 이게 진실...)

오로라투어 시 사진찍는 설정을 따로 알려준다. 육안으로 보는것보다 사진이 훨씬 더 진하지만 감동은 역시 실제가 다르다.




 1990년대 뉴욕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편 경유지인 앵커리지에서 새벽4시 내가 봤던 오로라는 그땐 오로라인지도 몰랐지만 엄청나게 진한 거였다.....보라색과 녹색으로 저 멀리 빛나는 빛을 보고 나는 인가가 이 새벽에 참 밝기도 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녀와 나의 대화는 오로라든 뭐든 모든 투어(를 비롯한 모든 게) 결국 운이다 라는 말로 끝맺었다. 우리는 면세쇼핑점 앞에서 헤어졌고 나는 지인들과 가족들을 위한 작은 초콜릿 선물을 사들고 게이트 넘버가 뜰 때까지 작은 레스토랑 안에서 로컬 비어를 마시며 글을 적고 있다.


 400ml 생맥주(로컬비어이긴 하다)의 가격은 약 15천원. 겁나게 비싼 물가이다. 마지막이니까 먹지 이런 가격의 맥주는 평소라면 절대 마시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맛있다. 홉의 쌉싸름한 맛도 느껴지고 뒷맛도 깔끔하다. 너무 라이트했으면 솔직히 돈이 아까워서 배가 아플 뻔 했는데 그렇진 않다.


 어제 골든 서클 투어를 다녀오는 길에 버스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화산지형의 들판을 보았다. 제주도랑 비슷한 거 아냐? 라고 말한다면 절대 아니라고 말하겠다. 드넓은 들판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화산석들이 울퉁불퉁하게 자리한 들판에 아주 연한 녹색의 이끼같은 것들이 푸릇푸릇하게 자라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눈.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혹은 내가 미치도록 훌륭한 사진가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버스의 지저분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 그대로의 모습을 찍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내눈에 담고 내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수밖에. 이끼일지 잡초일지 모를(하지만 잡초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평평해 보였다) 그것들의 대단한 생명력은 경이로웠다. 까만 아스팔트 도로만이 그 세상의 유일한 문명일 것 같은 그곳에서 나는 그저 자연 그대로의 내가 되는 것 같았다. 그 어떤 관광지나 대도시에서 느껴볼 수 없는, 유일하게 이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우 희소한 감정이었다. 묻을 대로 묻은 온갖 찌든 때가 다 씻겨져 내려가는 느낌.


 화산지형에 여름-겨울만 존재하며, 겨울이건 여름이건 영상1도~영상10도 내외의 기온을 유지하는, 면적은 대한민국 남한 면적과 가장 흡사하지만 사람이 살 수 있는 면적은 적은 나라. 하지만 5천만 대한민국 인구에 비해 40만명의 너무나도 적은 인구가 살아서인지 쾌적한 인구밀도 수준을 보이는, 깔끔하고 친절하며 자연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는 나라. (민주화지수는 전세계에서 3위) 정식 군대가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 최고수장 3자리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나라(영어의 짧음으로 정확히 그3자리가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못알아들었다). 온천으로 몸도 씻고 자연의 치유력으로 마음과 정신도 많이 씻고 간다. 섣불리 추운 제주도 정도의 풍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먼 좋겠다. 그건 완전히 착각이니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기억이 좋기란 힘든 것인데 그 힘든 걸 내게 선물한 나라. 아이슬란드였다.

아이슬란드에서의 마지막맥주. 그리고 떠나는 비행기의 얼어붙은 차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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