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지만 호화로운 아침식사
누구에게나 추억의 음식들이 있다. 내가 힘들 때나 특별한 순간에 먹고 행복했던 음식들. 그래서 때때로 힘이 들거나 힐링이 필요할 때 떠올리게 되는. 그래서 그 어떤 위로보다 힘이 되고 기운이 나게하는 건 그 음식일 때가 있다.
내게는 힐링이라기보다, 생명줄과 같았던 음식이 있다.
한창 공황장애로 고생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내 증상은 꼭 식사를 한 후에 찾아왔다. 그 공포감 때문에 한동안 난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배가 조금 부르다 싶을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공황발작때문에 매일이 죽음의 지옥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먹지 않아 속이 오랫동안 비어있으면 어지럽고 기운이 없어 그도 살수가 없었다. 뭔가를 오래 씹는 것도, 밥상 앞에 앉아있는 것도 하기 싫고 힘이 들던 그런 시기였다.
왜, 언제 그릭요거트를 먹게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아주 작은 용량의 그릭요거트를 먹었다. 배는 그리 부르지 않았는데 허기가 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날 오후엔 공황발작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온라인마켓에서 작은 용량의 그릭요거트를 몇개씩 주문했고 하루 한두번의 끼니해결 시간에 그 그릭요거트를 떠먹었다. 부드럽고 소화에 부담을 주지 않는 그 아주 가볍고 적당한 포만감이 좋았다.
나중엔 그래놀라를 조금씩 첨가하게 되었고, 거의 2년 가까이 나의 주식은 그릭요거트였다. 복직 후에도 나는 한동안 일반식 대신 그릭 요거트를 점심메뉴로 먹었다.
10킬로가 넘게 빠진 체중과 기력을 겨우겨우 지탱할 수 있었던 것도, 복직을 하고도 식후 공황발작이 오지 않았던 것도 이 음식 덕분이었다.
누군가는 질리지 않느냐고, 그것 갖고 식사가 되느냐고 말했지만 사실 질리지 않았다. 그리고 식사메뉴의 선택권이 그 당시 내게는 사실 별로 없었다.
증상이 거의 없어지고, 예기불안과 같던 식단에 대한 공포도 서서히 사라지면서 그릭요거트를 끊다시피 했다. 정상적인 입맛이라면 누가 한 메뉴를, 아무리 맛이 있더라도 매끼니를 몇년이나 먹고 싶겠는가.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날, 온라인 마켓으로 장을 보는데 내가 즐겨먹곤 하던 그릭요거트가 추천메뉴에 떴다. 마침 소화불량 증상이 오래 지속되던 차였다. 문득 몇 년전 생각이 났고 몇개를 주문했다.
잊고 살았던 부드럽고 꾸덕한 식감의 하얀 그릭요거트를 작은 스푼에 한껏 얹어 입에 넣어본다. 나에게는 여전히 맛이 있었다. 그릭요거트는 사실 백수인 내가 먹기엔 양 대비 단가가 비싼 음식이다. 하지만 아침을 줄곧 거르던 내가 아침식사를 새롭게 시작한다면 가장 부담없는 메뉴다. 적은 양이지만 이상하게 내겐 밥보다 포만감이 오래 지속되는 것 같다. 좋아하는 시나몬 맛 그래놀라를 뿌려 먹으면 더더욱. 거기에 매일 아침 마시는 맛있는 원두로 내린 블랙커피 한 잔이면, 내겐 초호화 아침식탁이다.
✔️총예산 : 3,500원
✔️볼비 두유그릭요거트 100g 2400원, 마켓컬리
✔️그라놀로지 시나몬스터 5g 250원 상당, 마켓컬리
✔️블루보틀 벨라도노반 원두 10g 850원 상당, 마켓컬리
✔️치트키:없음(꿀을 첨가하면 좀더 맛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