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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Jun 11. 2022

우울은 수용성이라구요?

그래서 녹여봤습니다






거기 @@리조트죠?     



 무작정 전화를 걸어 빈방을 확인했다. 두달치 예약이 꽉 차 있는데 내일부터 2박만 한방이 빈다고 했다. 재빠르게 예약을 넣었다. 그리고 상사에게 가서 2일 연속 연차를 쓰겠다고 했다. 특별한 일 없죠? 라고 묻는 상사의 목소리가 그다지 좋진 않았지만 휴가를 내겠다고 온 부하직원에게 뭐라 하랴. 그렇게 결재가 났다.     


  왜 난 우울하고 무기력할까. 약을 먹은 지도 2년이 지났다. 이제 겨우 한 번 복용약을 살짝 줄였다. 약이 줄어서일까. 그래서 약을 전과 같이 먹어봤다. 그냥 더 무기력할 뿐이었다. 그럼 뭘까. 추측컨대 아마도 자유롭지 못한 내 신분에 대한 근원적인 슬픔일 것이리라. 회사를 그만두면? 굶어죽을 순 없다. 나는 아직 브런치에 공짜 글을 뱉는 인간 나부랭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알량한 월급을 받으며 상사 눈치 보랴 동료 눈치보랴 일은 일대로 하면서도 견제는 견제대로 받으면서 나는 그런 지질한 일들이 너무 싫고 귀찮다. 사람들은 본능이라는 글자 뒤로 숨으면서 너무 지질한 행동을 하는 자신을 합리화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에게 그깟 돈 몇푼에 왜 그러고 사냐라는 말을 대놓고 할 순 없다. 왜냐면 그 사람들에게 가장 아플 수도 있는 부분을 공격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회사생활에서 오는 우울과 슬픔을 안으로 삭였다. 그랬더니 넘쳐 흘러나오려고 한다.

아, 위험해. 그래서 나도 본능적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그렇게 숙소를 예약하고 바다로 무작정 내달려 왔다.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샤워를 해봤다.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조금 나아진단 것이지 우울이 사라지진 않았다. 샤워 정도의 물 용량으론 안 녹나보다. 그래서 더 큰 물을 보러 바다로 왔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정도로는 중증인 내가 이렇게 멀리 떠나려면 에너지를 엄청나게 써야 한다는 뜻이다.


 세 시간을 내달려 온 동해바다. 첫날 나는 쿵쿵대고 소리지르는 아이들 소리가 다 울리는 콘도에서 초저녁부터 쿨쿨 잠을 잤다.


 그리고 오늘은 다음날. 머리가 맑아진 것 같다. 바다를 보고 발도 적셔본다. 엄청 신이 날 정도로 좋은 건 아닌데 우울함의 정도는 확실히 내려갔다. 정말 수용성이 맞나보다. 산으로 가지 않길 잘 했다.  


    

어제는 맥주를 조금 마셨다. 사실은 해물탕에 청하를 한잔 마시고 싶었는데 식당에는 소주만 팔았다. 나는 소주를 못 마신다. 아쉽지만 맥주 한병으로 만족해야했다. 원래의 나는 기분이 좋지않을 땐 술을 마시지 않았다. 건강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했고 기분이 언짢을 때 술로 이성을 잃으면 실수할 확률도 높아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회사에서 좋지않은 일이 있을 때나 기분이 울적할 때 맥주부터 찾는다.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한 캔 정도? 그 의식같은 행동을 하면 그 나쁜 것들이 쓰레기통에 훅 하고 버려지는 것 같았다. 어제도 그랬다. 잊자. 마시고 잊자. 녹여버리자 하고 마셨다. 효과는 있었다. 정신이 알딸딸해지면서 내가 처한 현실도 살짝 잊어버렸으니까. 물론 상황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잠깐의 마취효과 정도는 있었다.     


 나는 우울증 환자다. 내가 바다를 보고 살면 이 우울이 다 녹아내릴까 생각했다. 그건 아닐 것 같다. 지금있는 집에서도 멀리 바다가 보인다. 그냥 잠깐 뿐이다. 우연처럼 오늘 구독하는 어느 브런치 작가님이 눈물에 대해 쓰신 글을 읽고 저녁에는 슬픈 영화를 보면서 울어볼까 한다. 예전에도 지금도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니라 나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나 멘탈이 내려앉는 일이 생기면 저절로 눈물이 났었다. 그리고 한참을 울고나면 정말 조금은 시원해진다. 눈에서 물을 떨궜을 뿐인데 왜 속이 시원할까. 신기하다.      


 우울은 약간의 수용성은 맞는 것 같다. 확실히 단기적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가 사라지지 않으면 그 거대한 빙하같은 우울이 아예 녹아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 이유가 대체 뭘까. 퇴사가 답일까. 아니면 이 고통스런 삶의 종결이 해답일까. 아직 그건 찾고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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