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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Jun 13. 2022

등산과 인생의 관계

가련한 내 가성비



 오늘은 휴가 3일차다.


지금 있는 곳에서 제법 거리가 있지만 예전에 다녀오고자 했던 숲이 있어 겸사겸사 어제 저녁부터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주말인지라 길이 막힐 것도 같고 내일 일찍 올라갈테니 휴가의 실질적인 마지막날이 될 것 같아서 저녁을 먹기 전엔 필히 글을 쓸 시간을 가져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려면 네시정도엔 돌아와야 하는데 자작나무숲까지는 왕복 4시간이 걸렸다. 계산해보니 늦어도 아침 여덟 시엔 출발해야 3시간 내외라는 그 숲길 등산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일어난 건 일곱시 반. 씻고 밥도 먹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어쩔까 하다 아침을 건너뛰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테이크아웃했다. 그렇게 여덟시 십오분 숙소 출발. 순조롭게 차없는 고속도로를 막 달렸다. 그런데 딩동. 달갑지 않은 손님의 메시지일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사장님 문자였다. 이런.      


 여차저차 업무 때문에 어제 나간 자료가 맘에 안 든다는 피드백이었다. 에효. 전속력으로 달려 제일 가까운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말아침인데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성질급한 나의상사는 어젯밤 잠도 자지 않고 문제를 해결한 모양이었다. 역시 사랑받는 회사원과 찍힌 노예놈의 차이란 이런 것이구나. 다시한번 체감했다.   

   

 어찌됐든 거래처에 전화해서 이래저래 해결책을 마련하고 다시 출발.

 그랬더니 열한시가 넘어 자작나무숲에 도착했다.


 왕복 세시간 넘게 걸린다는데 평소 필라테스 외엔 운동을 하지 않는 내가 과연 혼자서 올라갈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하지만 두시간 걸려 차를 끌고 150킬로 넘게 달려왔는데다가 블로그를 찾아보니 자작나무숲이 워낙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냥 한번 시작이나 해보자 하고 숲길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길은 험하지 않았다. 얇은 샌들을 신은 나도 그럭저럭 힘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날씨가 더웠다. 6월 중순, 지금은 초여름이었다. 아침에 잠시 비를 뿌렸던 날씨는 거짓말처럼 맑게 개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도 제법 많았다. 생경했지만 붐비는 속에서도 야외에서 사람들이 마스크를 다같이 벗고 산을 올랐다. 이 좋은 곳에 와서 마스크라니. 좋은 공기 담뿍 마시려고 나도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나는 걸음이 빠른 편이다. 더군다나 혼자 오르다 보니 한시간 남짓 해서 3.8킬로미터의 산길을 올라갔다. 처음엔 여기 무슨 자작나무가 있단 건지 모를 정도로 그냥 나무들만 즐비하고, 하얀 몸통을 자랑하는 자작나무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그런데 한시간 정도 오르니 하얗고 푸른 숲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요정나라에 온 것처럼 아름다웠다. 산바람은 비지땀을 흘리는 나의 얼굴도 식혀 주었다.

풍경이 확 바뀌며 신비로웠던 자작나무숲. 앨리스 촬영.
요정숲에 사는 다람쥐. 앨리스 촬영.


 그런데 그 아름다운 요정의 숲에서 내가 머문시간은 고작 20분. 그 20분을 위해, 산행에만 2시간 넘게 쓴 것이다. 내려오며 나는 생각했다. 나에게 등산이란 무엇일까. 올라오고 내려오는 그 과정이 오직 20분의 아름다움을 보기위한 고생이라면 나에겐 너무도 가혹한 긴 시간이 아닐수 없다.


 우리의 인생은 어떠한가. 잠깐의 희열을 맛보려고 숱하게 힘든 시간을 견뎌낸다. 수험생일 때는 합격이라는 목표만을 보며 몇 년 동안 많은 것을 포기했었다. 취업준비생일 때는 취업이란 과업 앞에서 셀수 없이 많은 서류 탈락을 겪으며 인내해야했다. 그 길고긴 고난의 끝에 맛본 성공의 기쁨은 너무 짧았다. 나만 그럴까. 아마 구체적인 건 서로 달라도 사람들이 겪는 그 긴 인내와 짧은 행복은 비슷할 것이다.  

    

 자기동정이 건강한 감정이 아니란 건 알지만 내 자신도 문득 가여워졌다. 꼭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걸까. 나는 등산이 꼭 내 불쌍한 월급노예생활 같아 참을 수 없어졌다. 이 분통을 터뜨린 대상이 필요했고 나는 제일 만만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난데. 겁나 힘들어. 세시간을 땀 뻘뻘 흘려서 왔어.

이거 보자고 왕복 세시간 등산에 플러스 네시간 운전은 너무한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나 그만둘까봐.”     



 뜬금포 퇴사로 흐르는 나의 맥락없는 대화. 엄마는 매번 그 얘기가 나올때마다 피식 웃는다. 종달새냐고 놀리기까지 한다. 지치지 않고 퇴사를 부르짖지만 그만두진 못하고 마는 나의 소심함도 너무 잘 아는거지. 하지만 월급노예의 워케이션 활동이 실패로 끝나고 나니 나란 인간이 얼마나 멀티플레이가 안되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나도 월급이 얼마나 소중한지 너무 잘 안다. 저당잡힌 시간만큼 회사는 꼬박 돈으로 보상을 하기 때문에 알바처럼 생각하며 그냥 다니자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내가 나의 성향을 안다. 요즘 N잡은 기본이라지만 내 성향과 너무 안 맞는다. 나는 경주마같이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채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집중해서 뛰어가는 스타일이다. 이것도 저것도 열중할 자신이 없다. 회사가 글감이 되어주진 않을까? 나의 이 불완전함을 다듬어줄 쇠줄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며 열심히 마음속으로 합리화하며 퇴사까지의 유예기간을 한달 한달 늘리고 있었다. 어느부분은 맞기도 하다.


인간관계와 회사생활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에서 나의 글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서 방구석 백수가 되면 글을 못쓸까. 생각해본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래도 글감이 관념적으로 흐수는 있겠지.  그렇다고 아무 에피소드도 없을까. 그 수많은 직업작가들도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실에서 보낼텐데,



 내려와서 숙소로 돌아온 나는 예정대로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쓴다. 회사일 워케이션은 실패했지만 글을 쓰는 일만은 워케이션이 성공할 것도 같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중간중간 바다뷰를 즐기기도 하며 글을 써내려가는 지금은 무척이나 만족스럽고 활력이 솟는다. 회사처럼 승진이나 일의 성과를 위해 꾹꾹 참으며 등산하듯 고행해서 잠깐의 단 열매를 맛보고 내려와야 하는 것이 아닌 글쓰기 자체를 즐기면서

그 과정속에서 내가 성장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는 알것 같다. 다만 내게 맞지 않을 뿐. 나이가 더 들어서 그 힘든 산행길 자체를 즐기게 되거나 정상에 선 짜릿함이 오르막길을 충분히 감내할만큼 좋아진다면 나도 언젠간 등산을 좋아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아직은. 등산은 내게 회사생활 만큼이나 고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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