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와 함께하는 몽마르뜨 투어
숙소 - Bistrot de la Tour Eiffel (양파수프) - 에펠탑 - 개선문 - 쁘띠팔레
- 몽마르뜨투어 - 마쥬 쇼핑(몽마르뜨지점) - Le Petit Chatelet
인디고파리 라는 현지투어 여행사의 당일투어를 신청했는데
몽마르뜨의 치안 등을 생각해서 혼자다니기보단 투어를 선택했다.
설명도 들으며 다녀야 좀 알것 같아서.
결과적으로는 200퍼센트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몽마르뜨는 몽(산 혹은 언덕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MONT)과 마르뜨(Martre)의 합성어인데
마르뜨흐는 순교자라는 뜻이다.
250여년경, 생드니라는 주교가 박해를 받아 목이 잘린채로
그 목을 옆구리에 들고, 8킬로정도를 걸어 돌아가셨는데
그때 걸었던 길이 이 몽마르뜨언덕쯤이라고 한다.
실제 그분이 돌아가셨을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생드니라고 불리우는 파리 외곽지역이다.
그분의 이름을 따서 지어져서 성스럽고 평온한 곳일거라 예상하면 오산이다
(그곳은 폭동과 무법천지의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우범지대로 유명...뉴스에 많이 나오니 찾아보시길)
아무튼 몽마르뜨는 그 순교자의 길을 추모하며 만들어진 곳이다.
그리고 18-19세기쯤에는 값싼 임대료로 그당시에도 물가 비싼 파리의 집값을 감당할 능력이 되지않았던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살던 곳이기도 하다.
젤먼저 찾은곳은 몽마르뜨의 명물, 파란색벽의 사랑해벽.
작가의 이름은 까먹었는데...다른 블로거가 쓴 글에 보니 "프레데릭"이라는 분이 이 작품의 작가인듯 하다.
300개의 언어로 1,000번의 사랑한단 뜻의 언어가 적혀있다.
이러한 작품을 만든 이유는. 짐작하겠지만
세상에 너무나도 많은 전쟁, 폭동, 미움과 증오, 숱한 나쁜 것들로 가득차 있는데
그러한 것들을 중화시킬수 있는 기적같은 따뜻함. 사랑이라는 가치를
조금이나마 널리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었다 한다.
한국말로 사랑해라는 뜻의 문구가 한 세번정도 적혀있다고 하는데 나는 하나밖에 못 찾았다.
언어가 한계가 있다보니까 한국어 외에도 여러 언어들이 조금씩 다른 말로 중복되어 적혀있긴 하다고 한다.
웨딩사진이나, 커플인증샷을 찍느라고 연인들이 정신없는 벽인 사랑해벽.
사진을 한장씩 다 찍은 후에
가장 많이 알려진 사크레쾨르 대성당으로 올라갈 채비를 한다.
골목을 좀더 걷다가 사크레쾨르 성당으로 향하는 푸니쿨라를 타러 갔다.
푸니쿨라는 교통패스를 써서 타도 되고,
나처럼 나비고패스가 있는 사람은 그걸 활용하면 공짜로 탈수 있다.
몽마르뜨는 평지인 파리지형상 가장 파리에서 높은 지대에 위치한다.
그래서 파리전경을 넓게 다 볼수있는 명소중 하나.
이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지어진 시기는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대패한 직후.
피의 일주일이라 부르는 기간동안 파리시민들의 희생은 가히 충격적일만큼 컸다.
3만명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그이상이라는 설도 있다.
파리코뮨이라는 시민혁명에 맞는 자치정을 이루며
파리혁명 이래로 자부심이 쩔던 파리시민들에게 보불전쟁의 치욕적 패배와 그 상처는 매우 컸다고한다.
치유의 명분?이랄까.
참혹한 상황에서 우리네 팔만대장경같은 어떤 구심점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 패배와 고통의 원인을 그들의 신앙에서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몽마르뜨에 대성당을 지어 바치면 그들의 고통을 씻어줄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한 신부?(이름을 까먹어서 이리저리 검색했는데, 찾는데 실패했다)
어떤 사람의 꿈에 하느님이 나와 몽마르뜨에 성당을 지어 신께 바치라고 했는데
계속 무시하다가 세번째 꿈에 나오고 나서야 신의 계시를 깨닫고 짓기 시작했다는 사크레쾨르 대성당.
바실리카(대성당)의 칭호는 대주교가 존재하는 교구가 아니면 잘 내려주지 않는 칭호라고.
아주 특별한경우, 이를테면 기적이 일어났다던가 해서 바티칸의 승인을 받은 교회라야 쓸수 있는 칭호인데
이 성당은 후자의 경우라고 한다.
사크레쾨르의 뜻은 성스러운 마음이라는 뜻이다.(성심)
40년에 걸쳐 전쟁의 상흔을 입은 어려운 국민들이 모금해 지은 성당이니
파리와 프랑스의 역사적 자부심이 깃들어있는 성당이다.
내 등뒤로 스쳐지나가는 집시!
그를 본 가이드님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기 전에 이미 그들은 아무것도 못하고 달아났다.
가이드님 말로는 경찰과 군인차를 발견하고 도망가는 길이었던거 같다고 했다. 휴우. 십년 감수했네.
가방 검색을 모두 마친 후에야 성당 안에 들어갈수 있었다.
사크레쾨르 성당 주변으로 1인마임, 공연, 노래를 하는 집시들과 밴드 공연자들이 어우러져 있다.
파리의 전경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이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몽마르뜨를 오른쪽으로 끼고 골목을 따라 들어가보면 골목골목 파리 특유의 골목분위기가 묻어나는
주택가들이 나온다.
예전에는 이 몽마르뜨 근처의 주택들이 그나마 저렴한 편이어서
가난한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중에 에릭사티, 피카소, 사르트르, 고흐, 고갱, 등등등
우리가 알만한 19-20세기경 유명한 사람들은 죄다 여기 살았던가보다.
여기는 누구가 살았던 집, 여기는 누가 살았던집.
심지어 박물관에는 모네가 살면서 그렸던 모네의 정원도 볼수 있다.
몽마르뜨에는 예술가집단이 자주 가던 술집, 카페들이 있는데
라팽아실도 그중 하나.
캬바레(흔히 생각하는 캬바레-선정적이고 춤바람나는 어른들의 집합소와 다르다)라는
공연과, 식사와, 철학과 예술을 논하던 장소들중에서도 유명한 집이라 한다.
현재에도 공연이 있어서 밤에 와서 공연을 보며 식사를 하는 곳이다.
우리로 말하면 홍대 재즈바? 같은 곳이다.
캬바레 라팽아실의 모습. 원래는 어쌔신이라는 이름의 캬바레였으나, 예술가가 선물한 토끼그림을 붙인 후로는, 별칭처럼 "그래그 날쌘토끼 거시기(?)에서 보자구"라고 통칭을 하는 바람에 이름이 아예 바뀌어버린 곳. 아직도 저녁이면 대학로 소규모 극장처럼 적은 사람들이 나란히 붙어앉아 공연을 보는 그런 곳이라고.
그리고 미술가들과 카페, 갤러리 등 상점으로 유명한 몽마르뜨의 거리
테르트르 광장이다.
거리의 화가들(초상화와 풍경화를 그리는)이 한데 모여있는데
그냥 아무나 거기서 그림을 그릴수 있는건 아니라고 한다.
자리가 날 때마다 공고를 붙이며,
거기에 지원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엄선된 심사단이 심사를 한 후에
점수를 매겨 적합한 사람을 뽑아 기한을 정해 계약을 한다고 한다.
그러니 실력이 없는 사람들은 아닐테고.
추억삼아 기념삼아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는건 괜찮은듯 하나, 가격은 상당하다고 한다.
그리고, 동양인이다보니 그들 눈에는
사실....전형적 동양인에 대한 관념적 시각? 같은게 녹아나서인지
자신과 비슷한 그림을 기대한다면 조금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고들 한다.
선택은 각자의 몫인 듯.
이 광장에도 스벅이 있으니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다면
스벅에서 가볍게 음료한잔 후에 이용하는것을 추천한다.
가이드님은 이근처 걀레트(크레페)집을 맛집으로 추천하셨다. 중박이상이라며.
몽마르뜨의 명물 중에는 달리다(Dalida)의 저택도 있다.
프랑스의 국민가수, 달리다라는 여인.
이집트 태생에 아버지는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아름다운 외모로 모델일을 하기도 했으며 미스이집트에 당선되며 유명세가 시작되었다.
한동안 파리의 캬바레서 공연을 하던 그녀는
그녀의 매니저이자 훗날 남편이 된 연인인 PD 뤼시앙모리스의 눈에 띄어
앨범을 내며 본격적으로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그녀는 당대 음악가들의 러브콜로 시도한 음악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30여년간 그녀가 난 앨범의 판매고는 17억장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더욱 유명한 것은 그녀의 남자들때문.
그녀가 사랑했던 무명의 음악가 남친 루이지 텐코는
그녀의 전폭적 지지와 응원에도 불구,
그녀에 비해 유명하지 않았던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 자살하게된다.
큰 실의에 빠진 그녀도 따라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에 그친다.
다시 어렵사리 재기에 성공한 달리다.
달리다 딜라다다라는 앨범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다시 국민가수로 사랑받던 그녀는 다시금 전매니저이자 전남편
뤼시엥 모리스의 자살로 실의에 빠지게 된다.
몇년이 지난 1973년, 국민배우였던 알랑들롱과 파홀레파홀레(Parole Parole)라는 음반을 내면서
다시 유명세를 타고, 그녀는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그녀의 마지막 연인 리처드 상프레의 자살로 또한번 큰 상처를 받게 된다.
그녀의 남자들이 하나같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본 그녀의 정신이 건강할수가 없었겠지.
나는 남자를 불행하게 만드는 여자, 라는 생각에 우울증에 심하게 시달리다가
1987년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불운한 여인이다.
이 자택앞엔 그녀의 동상이 있는데 시대의 아이콘, 여인이었던만큼
그녀의 가슴(?)을 만지고 가면 소원성취를 한다고 해서 그부분만 아주 맨질맨질 하다.
부도 명예도, 한 사람을 완전히 행복하게 해줄수는 없는건가 보다.
우리나라에서 예지원씨가 영화에서 "빠롤레빠롤레빠롤레~"하고
약간 코믹모드?로 불러서 유명해진 노래인데
사실 이노래는 정말 아름다운 남녀가 밀당을 벌이는 달콤한 가사를 가진 음악이다.
알랑들롱도 잘생긴 외모에, 목소리도 끝내주는 꿀보이스저음이라서
내취향은 아닌데 정말 여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그런?저음?
지금으로 말할것 같으면...아이유와 원빈급 정도?의 듀엣이었다고 보면 될것 같다.
불행한 그녀의 남자복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국민의 사랑을 받은 그녀. 사진 속 좌측 하단에 보이는 작은 간판에는 "몽마르뜨주민들은 달리다를 여전히 사랑하고 앞으로도 그럴거라는"내용의 글귀가 적혀있다.
달리다의 집에서 조금 내려오다보면 "아틀리에 세탁선"으로 불리우는
바토라부아르. 가 있다.
몽마르뜨의 세탁선이라는 곳.
아뜰리에였는데, 그 건물의 모습이 마치 예전 세느강가에 떠있던 세탁선의 모습과 같아서
세탁선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피카소가 비교적 무명시절 여기서 작업을 했었고 달리, 이런 사람들도 여기서 작업을 했었다.
아비뇽의 처녀들 이라는 작품을 피카소가 그린 곳으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재밌는 것은 재능많은 피카소가 사실 모방의 아들이었다는 점.
많은 동료들이 그림을 그려두면 그걸 보고 피카소가 금새 모방을 해
더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알리고 해서 아이디어 도둑질(?)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피카소가 떴다 하면 예술가들이 자기 그림을 꽁꽁 싸매고 작업실 문 잠그기에 바빴다고.
피카소는 또 모나리자 도난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기도 했는데
그 이유가, 루브르에 피카소가 자주 출몰해 그 모나리자 그림을 자주 보러갔다고 한다.
물론 몇년 후 진범이 잡혔지만 오랜기간 그는 그 도난사건의 주범으로 의심받기도 했다.
몽마르뜨의 주요인물 중 에릭사티를 빼놓을수 없다.
짐노페디, 쥬트보라는 노래로 유명한 내사랑 에릭사티.
하지만 당시 그는 가난하고, 인정받지 못한 무명 음악가였다.
당시에는 오페라음악과 같은 클래식한 음악들이 주목받던 때였는데,
그는 몽마르뜨에 거주하며 근처 술집과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치는 완전 무명 음악가였다.
그때 누군가의 대타로 간 레스토랑에서 그가 자신의 음악을 연주할때
열중해서 듣는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한다.
제 음악을 집중해 듣지 마세요. 저의 음악은 그저 가구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떠드세요. 먹고 마시고 즐기세요.
그래서 그의 음악은 가구음악이라고 불리운다.
듣기 편안하고, 소음과 함께 어우러지는, 마치 배경같은 존재의 음악.
당시에는 파격적인 개념이었기에 대접받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그의 음악들은 많은 광고에서 만날수 있다.
아~그거, 할만큼 누구나 다 아는. 그런 음악.
그는 또 순애보와 집착에 가까운 사랑으로 유명하다.
그의 전무후무한 사랑, 단 한사람의 연인.
수잔 발라동이라는 여인이다.
그녀는 몽마르뜨에서 유명한 모델이었다.
르누아르, 드가 같은 당대 유명 화가들의 그림 모델을 서주는. 그러한 여자였다.
파리의 뮤즈.라는 칭호가 맞을것 같다. 그녀를 그린 그림은 정말 끝도없이 나온다.
그것도 현재 손에 꼽는 화가들의 손으로 말이다.
당시 그림의 모델이라는 여성들은 반 매춘부와 같은 존재였다.
그림속 모델이 되어준 후, 그림이 완성되면 그 그림을 그린 화가와 잠을 자는. 그런존재.
그녀는 서커스단원이었다 허리부상을 심하게 입어 모델일을 할수밖에 없는 어려운 여성이었다.
미모는 현대에 보아도 가히 빼어난데, 몸이 불편하고 부모가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를 모르는 아들을 가지고있는 미혼모였다.
그런 그녀에게 그런 직업은 사실 어쩔수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무튼 그러한 그녀를 처음 본 에릭사티는 첫눈에 반해서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 후 바로 청혼을 하지만 바로 거절당한다.
그 이유는 그가 돈없고 무능한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돈많고 명성이 화려한 성공한 남자에게 시집가고 싶다고 말한다.
어려운 삶을 살고있는 그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현실적 귀결일거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에릭사티는 그녀를 너무 사랑했고
수잔발라동 또한 그를 좋아하기는 했는지 관계는 유지한다.
그리고는 아들을 데리고 에릭사티의 집 200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집을 얻고
왔다갔다하며 사랑을 한다.
그러다 몇년이 흐른 어느날. 엄마의 사랑을 받지못하고 자란 애정결핍인
에릭사티의 모성애를 갈구하는 그런 사랑에 진력이 난 수잔이 그와 결별을 선언한다.
하지만 에릭사티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녀를 자신의 집 다락방에 가둬둔다.
그녀는 얼마나 그가 싫었던지 그 다락방 창문에서 뛰어내려 탈출을 시도하고,
결국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수잔은 정말로 그녀의 말대로 1년여가 흘러 재력가인 은행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였으나
사티는 그녀를 잊지 못하고 평생을 결혼한번 하지않고 살다 죽었다.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집에서 발견된 것은 그녀를 그린 그림과 그녀를 생각하며 지은 사랑의 노래.
그것이 훗날 사람들이 가사를 붙여 만든 노래
Je te veux
(난 당신을 원해요)
음악은 정말 아름다운데.
뭔가 수잔 입장에서 생각하면..끔찍스런 정신병적 집착인것 같기도 하고. 뭐. 그렇다.
그런데 이 수잔발라동이라는 여성이 매우 흥미로운 여성인 것이,
정말 신분도 천하디 천한, 부모복도 없는 지지리도 가난한 중에 자라난 그런 여자인데
아름다운 미모를 재산삼아 당대 예술가들의 뮤즈로 있다가 원하는 부자 남편도 만났고,
그리고 그 부자남편을 떠나 자신의 후원자같은 화가 로트렉의 손에 이끌려
그녀의 소원이던 화가로서의 데뷔도 하게 된다.
그의 아들또한 유명한 화가(모리스 위트릴로)인데 아들만큼이나 명성을 얻었으니
현재관점에서 볼때는 어떤 입지전적 인물? 은 되는것 같다. 게다가 당시 여성의 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조금 골목을 따라 걸어내려오면 보이는 물랑드라걀레뜨.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싶은데 이곳은 아주 예전엔 풍차방앗간이었지만
정말 뜬금포같게도 개조되면서 무도회장으로 쓰이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모두 알고있는 한 그림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사실 위를 가보지 않아서 풍차아래의 대지가 그리 넓은지 의문이지만
20세기초 당시에는 이곳이 무도회가 성대히 열릴만큼 힙한 플레이스였다고 한다.
의구심을 묻어두고 르누아르의 그림을 떠올리면서 다른곳으로 향한다.
골목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와 오늘 투어의 마지막 지점은 바로 물랑루즈이다.
캉캉춤과 같은 화려한 쇼를 하고있는 역사적인 플레이스. 바로 물랑루즈다.
상대적으로 파리시내보다 물가나 부동산이 싸다보니 이곳은 가난한 서민들의 터전이었고,
예술가들의 성지인 동시에, 마약, 매춘, 매음과 같은 어두운 일들이 공존했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도 캬바레와 이러한 공연장의 뒤편엔 무희들의 매매춘이 공공연하게도 있다고 한다.
물랑루즈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몽마르트의 캉캉 등 공연무희들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디든 매춘골목은 존재하듯이. 이곳도 그런것이라 이해했다.
치안이야기가 나올수밖에 없는 환경이니 사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적을지 몰라도
지리적으로도 골목이 많아서 후미진 곳들이 많아서 초행자가 잘못 들어갔다가는
운 나쁘면 강도같은 피해를 입어도 대로변처럼 구제받기가 쉽지않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너무나도 흥미진진, 그리고 알찼던 몽마르뜨 투어가 종료되었다.
사실 여기 다 담지못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다 쓰지 못했다.
가이드가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하다보면 똑똑해질수밖에 없겠다 싶고
외모만 보면 20대중반정도로 보이는 가이드가 대단하다 싶기도 했다.
여러 사람이 같이 다니다보니 마이크와 이어폰으로 투어를 진행하는데
해당장소에 맞는 음악을 준비해서 함께 설명을 하니 이해를 안할래야 이해가 안될수가 없다.
쏙쏙 귀에 들어오고,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그냥 혼자 다녔다면 아무생각도 없고 아무것도 모른채 다닐뻔했다.
돈도 중요하지만, 솔직히 내는 비용 대비 얻은것이 훨씬 많아 추천하고싶다.
투어종료시각은 약 저녁 여섯시반경.
러시아워에 퇴근시간이 겹쳐 지하철 사람이 어마어마할것 같았다.
솔직히 소매치기 걱정도 되고, 지나오다 몽마르뜨 골목에서 본 마쥬의 가격이 너무 아름다워서
들러야겠다 생각을 했다.
몽마르뜨에는 예술과 역사적인 장소들도 유명한곳이 많으나,
가격이 저렴한 아울렛 부럽지않은 샵들도 많이 포진해있다.
내가 들렀던 마쥬샵도 상설매장 같은 곳인데 며칠전 갔던 라발레빌리지의 가격보다도 착한데다
상품이 훨씬 더 다양해서 잠깐 들렀다가 이따 오겠다고 상점언니에게 찜콩해둔 상품이 있었다.
일곱시가 클로징이라고해서 부지런히 갔더니 아직 닫지않고
한국인 여성분(?)손님을 응대하고 계신 언니들.
찜콩한 원피스 사이즈가 빠져서 사진 못하고
대신 대안으로 찜콩해둔 박스형 롱자켓을 매우 좋은가격에 겟하였다.
거의 시중가의 40프로정도의 가격.
원래 정가가 60만원정도인데 20만원대 초반으로 구입했다.
나중에 카드명세서 보니 20만 몇천얼마 이렇게 나오더라. 완전 득템..ㅠㅠ
(나중에 칙칙한 사진을 개선키 위해 여기서 산 오렌지색 자켓을 계속 입었는데, 매우 유용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창고형 상설매장 정도인것 같은데,
신상과 함께 재고제품이 같이 있기때문에
신상을 구매하고싶은 사람, 시즌이 지났지만 좋은 제품을 인하된 가격에 사고싶은 사람 모두에게 좋다.
쇼핑을 원하는 분들에게 추천!
몽마르뜨에서 아쉬웠던 건 근처에 작년(2016년도) 바게트대회 우승집이 있는데
마침 간 날(화요일)이 휴무일이어서 빵맛을 보지 못한것.
굉장히 유명한 집이니 꼭 들러봤어야 하는데 아쉽다.
하지만 시간은 한정적이고, 다른 곳들도 가봐야 하기에. 훗날을 기약하며.....
어느정도 러시아워가 끝났다 싶은 일곱시를 넘긴 시각에
아비스역에서 전철을 탔다.
(사실은 인근에서 식사를 하려했으나 적당한 맛집을 찾지 못해서...)
아쉬운 발걸음이었다.
몽마르뜨가 그만큼 볼거리가 많았고 사실 기대를 많이 하지않아서 그런지 다시 오고싶을 정도로 좋았다.
시간이 허락치 않아서 다시 가진 못했지만,
소매치기 등 보안에만 스스로 준비를 철저히하고 간다면
여기서 2-3일을 보내도 시간이 충분치 않을수도 있을만큼 볼거리가 많다.
숙소근처로 돌아와서
지친 몸을 이끌고 에너지를 충전할만한 고기를 찾아 내려왔다.
Le Petit Chatelet 라는 펍같은 식당인데
손님이 항상 많았고 주로 고기메뉴를 많이 시킨다.
햄버거 먹는 손님이 반, 스테이크 손님이 반이어서 스테이크를 시켜본다.
노동절에 비해 알찼던 넷째날의 일정은 이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