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조차 믿기지 않는 나의 이야기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나는 4.2kg 우량아로 태어났다. 게다가 요리에 소질이 있는 엄마 덕분에 나는 늘 통통하게 귀여운 아이였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까진. 그 추웠던 겨울.. 나는 씻은 김치와 흰 쌀 밥을 마구마구 퍼먹고 결국 소아비만이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까지는 "공부할 때는 쪄도 괜찮아, 대학 가면 다 빠져."라는 전국민적인 거짓말에 속아 (혹은 믿고 싶었겠지) 여전히 비만이었고, 대학교 때는 술과 안주, 그리고 배달음식으로 매일을 보냈으니 살이 빠질 리가 없었다.
내 인생에서 정말 마음먹고 다이어트를 해본 건 딱 2번, 대학교 2학년 겨울과 3학년 여름이었다.
엄마의 권유로 식욕 억제제를 먹었다. 그 당시 우리 고향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 내과에서 처방받은 식욕 억제제가 유행이었다. 나는 그 약 만으로 한 달에 10킬로를 뺐다. 아무것도 안 먹고 매일 호박즙과 양파즙만 마셨다. 대신 매일 자취방에 누워있어야 했던 건 너무나도 당연히 따라왔던 부작용. 심장이 뛰고, 잠에 못 들고, 늘 속이 메슥거리고 어지럽고. 근데 '살 빼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참았다. 살이 급속도로 빠지니 모두에게 예뻐졌다며 칭찬을 받았지만 내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고, 단순히 굶어서 뺐었기에 나중에 다시 일반 식사를 시작했을 때 금방 살이 붙고 말았다.
여름 방학 중 본가에 머물며 엄마의 스파르타식 감시 하에 파프리카와 미역국 따위만 먹고 눈물을 질질 흘리며 운동을 했다. 매일 아침 뒷 산을 오르고 저녁엔 동네를 걸었다. 운동까지 함께 했었기에 첫 번째 다이어트 때 보다 더 많이 감량해 내 인생 제일 예쁜 시기였다. 하지만 방학이 끝나고 돌아간 내 서울 자취방에는.. 나의 전담 다이어트 코치인 엄마가 없었다. 나의 주도로 진행된 다이어트도 아니었는 데다 (물론 다이어트의 필요성은 절실히 느꼈지만) 생활 습관이 잡히지 않은 채 단순히 엄마의 강한 압박에 억지로 한 거라, 서울에서의 생활은, 식생활적 측면에서, 방탕함의 극치였다. 물론 살은 금방 다시 쪘고 심지어 심한 요요까지 와 집 밖에도 나가기 싫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이미 한국 기준 뚱뚱한 상태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맛봤다. 뒤에서야 뭐라하든 간에 앞에서는 그 누구도 살에 대한 지적을 하지 않았다. 놀라웠다. 한국에서는 "다 걱정돼서 하는 말이지~."하는 명목으로 살 빼라는 소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으니. (물론 미국에서도 뒤에서는 얘기한다.) 달고 짠 탄수화물 위주의 미국 음식도 한몫했다. 처음엔 너무 짜 한 입 먹고도 혀가 얼얼했던 도미노 피자도 어느 순간부터는 적당히 짭짤하게 맛있어 몇 조각 씩 먹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어졌고, 내 입맛은 더 자극적인 맛을 찾게 됐다. 옷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한국에서는 맞는 여자 옷 사이즈가 없어 유니섹스나 남자 옷을 사 입었어야 했는데 여기서는 내가 여자 옷 L 아니면 XL 였고 (심지어 플러스 사이즈도 아니었다!) 그동안 없어서 시도도 못해봤던 옷들도 편하게 구할 수 있고. 한국에선 상상도 못했던 꽃무늬 화려한 드레스, 나풀나풀 나비같은 원피스도 입을 수 있었으니까. 나 같은 비만 돼지에겐 천국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음 편한 천국에서 무럭무럭.. 더 쪘다.
그러던 내가.. 태어난 지 29년 만에, 그리고 미국 생활 4년 하고 3개월 만에 갑자기! 나의 한국 가족들이 매일 걱정하고 잔소리하고 뭐라해도 꿋꿋하게 돼지의 길을 걷던 내가, 정말 뜬금없이! 운동과 식단 관리를 병행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