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ame is......
"안녕하세요. 여러분! 만나서 너무나 반가워요. 제 이름은 재미 리 구요!
한국에서 여러분들과 친구가 되고싶어서 왔답니다.
우리는 3개월동안............. "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학기 강의가 시작되는 첫시간...
이틀동안 전 같은 인사말을 10번쯤 반복하곤 했습니다.
같은 인사말이지만..새로운 사람들 앞에서 제 이름을 말할땐 왜 그렇게 떨리던지.
이전에도 나를 나타내는 이름 세글자 '이.재.미'에 책임감을 느끼며 살았지만
그 책임감의 절정은 제 소중한 우크라이나의 2년에서 새롭게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선생님' 이라는 호칭이 없는 나라인지라
수업 시간에 모르는게 있으면 여기 저기서 '재미리~~'를 외쳐대고
특히, 꼬맹이들 수업시간에는 악을 쓰다 못해서
'재미리~~ 재미리~~'
울음 섞인 소리를 내며 책상을 두드리고
그러다 못해..달려와서 제 옷자락을 끄집어대면서도
'재미리...도와주세요. 재미리..재미리'
쉬임없는 째미리~~
게다가..수업 강의 자료 첫페이지에 내 이름 세글자를 팍! 박아두었더니..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서는 나름 인기세를 조금 누렸답니다.
학생들이 수업한 강의자료를 프린트해가지고 가서는..
필요하단 사람들 빌려도 주고..
첫페이지에 있는 내 이름에 밑줄도 그어주며
'우리 재미리는 한국에서 왔는데 말야......'
학생을 모집한다는 광고지 가장 아랫줄에도..어김없이..
연락처..'재미리....050-xxx-xxxx'
가끔 신문에서도..'무료 컴퓨터 강좌 개설....한국에서 온..어쩌고 저쩌고 봉사자 재미리!!는...'
우리마을 뉴스에서도.. '오늘 5번 학교에서 컴퓨터 교육 센터를 오픈했습니다. ...봉사자 재미리는...어쩌고 저쩌고..'
이쯤되다보니..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제 이름 석자정도는 익숙해져있는것이
우크라이나..제가 2년간 살았던 마을에서의 제 이름값이랍니다.
흔하지 않은 컴퓨터 강의를 한번 들으려면 수강 신청기간에 줄서서 3시간은 기다려야 만날 수 있고
생전 보지도 못한 노트북을 컴퓨터 옆에 켜두고 토닥거리니
과연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시골 마을 사람들에겐 적지않은 동경의 대상이 되었지 않았나 싶죠?
이쯤되다보니..이름값에 따르는 이상한 책임감도 적지않더라구요.
학교에서는 새로들어온 복사기를 박스도 뜯지않고
마스터 '재미리'가 설치해줄거라고 믿어주기도하고 (결국 설치도하고 셋팅도 다 하긴했습니다.)
친구들의 쉽게 할 수 없는 일들도 바리바리 싸기지고 와서는
'우리 재미리' 이름 한번 팔고는 초콜렛 한 박스로 부탁을 하는 일들도 생기고 말이지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재미리'는 알꺼라며 생전 처음보는 수학문제를 가지고와서 묻지를 않나..
집에서 쓰던 컴퓨터의 사소한 문제 조차도 '재미리'를 찾으니
그 책임감에 버티느라 고민도 참 많이 했었답니다.
그런데 그렇더라구요. 그 이름값이 주는 책임감~
내가 커버할 수 없는 범위의 일들조차도 '재미리!!'
그들이 즐겨부르는 내 이름 세글자에 '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미션'이 되어
밤잠 설치며 어떻게든 해내고 말겠다 다짐하곤 했었지요.
지금 돌아보면 이름값이 주는 책임감이었지만.
그들이 믿고있는 내 이름에 대한 신뢰를 지키려는 노력이었고
다른 말로 그들에 대한 나의 열정이며 사랑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네요.
지금도 그정도의 이름은 여기저기 알려주며 사는데..
그때처럼 최선을 다하며 내 이름값 지키려고 노력이란걸 하고 있는건지? 의문이 들더라구요.
이해관계도 틀리고 봉사와...일터라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
내 이름 세글자 ' 이 재 미'에 대한 소유자는 여전히 동일한데..
쉽게 스트레스받고 어떻게든 선을 그어보려고 노력하는 스스로를 가끔 마주할땐
댓가없이 그냥..열심이기만했던 시간이 저를 부끄럽게 만드네요.
그래서. 이름값을 다시 꼽씹으며
오늘보다.. 내일 더 가치있어지길..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