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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잼 Sep 11. 2023

키워드로 보는 일본(8) 육식

일본의 육식 요리는 200년도 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일본 요리 돈카츠(豚カツ)


일본에는 다양한 육식요리가 있다. 돈카츠, 스키야끼, 야끼니쿠, 라멘 등이 그 대표이다. 그러나 일본이 본격적으로 육식을 시작한 것은 두 세기도 되지 않은 메이지 시대 때부터였다. 그럼 그동안 일본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먹고살았던 것일까? 이번 글에서는 일본의 육식 문화의 발달 과정과, 이와 관련된 일본인의 식생활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다.



불교 국가 일본, 육식을 금하다


육식금지령을 실시한 덴무 덴노(天武天皇, ?~686)

일본은 고훈 시대까지만 해도 공물로 멧돼지를 바치는 등 귀족과 서민을 가리지 않고 고기를 먹어왔다. 일본에서 고기를 금지하기 시작한 것은 아스카 시대부터였다. 이 시기 외부세계에서 전래된 불교의 영향이 컸다.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지한 탓에 나라 시대부터 육식을 피하는 분위기가 시작되었다. 불교가 확산되며 귀족층과 서민층의 식사 방식이 갈라져 귀족층만 육식을 하다, 675년 덴무 덴노가 육식금지령을 반포하며, 일본인은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았다.


조정의 권력이 약화된 무사 집권기(가마쿠라~에도시대)에도 육식을 금지하는 정책은 이어졌다. 칼을 다루는 무사이니만큼 육식을 허용하지 않았겠냐는 생각을 할 수 있으나, 이미 수백 년 이어온 육식금지령은 하나의 식문화로 정착하였다. 더군다나 무사들 역시 불교를 무사로써의 주요 교양 중 하나로 여겨 이를 수용한 만큼, 불교 교리인 살생금지를 성실히 지켰다(그럼에도 사람에 한하여는 살생을 범한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채식 위주의 식사는 일본인의 식문화를 변화시켰다. 우리가 흔히 일본 요리, 즉 와쇼쿠(和食)라는 식문화의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에서는 1즙 3채라 하여 밥과 국, 3가지 반찬 혹은 나물 요리를 올리는 것을 식사의 기본 틀로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 올라가는 국과 반찬은 모두 채소나 생선을 요리한 것들이 많이 올라갔다.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오면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고기로 만들지 않은" 요리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주로 상인 계급(쵸닌, 町人)이 장사를 하며 간단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메뉴로, 지금의 패스트푸드에 가깝다. 야채나 생선을 튀긴 덴푸라(天ぷら), 우동, 스시, 오니기리(おにぎり), 소바 등이 유행했다.



메이지, 육식문화가 꽃피우다


무사들의 시대에도 굳건히 살아남은 육식금지령은 메이지 시대, 문명개화라는 이름으로 서양의 식문화를 따라 하기 시작하며 해제되었다. 일본인들의 평균 신장과 체중은 서양인은 물론 이웃국인 한국과 중국에 비해서도 낮았다. 일본인들은 서양인들이 고기를 주식으로 즐겨 먹는 것을 보고, 저들의 체형을 가지기 위해서는 고기를 먹어야 한다 판단, 육식금지령의 해제와 함께 육식을 하는 것이 "문명인"으로 나아가는 길이라 믿었다.


영국 해군의 요리가 일본화된 카레라이스(カレーライス)

서양에서 각종 고기 레시피가 들어와 이 시기에 일본식의 육식 요리가 탄생했다. 독일의 커틀릿은 일본의 돈카츠(豚カツ)가 되었고, 식민지 인도에서 출발해 영국 해군들이 즐겨 먹은 커리는 일본의 카레라이스(カレーライス)가 되었다. 또, 서양의 대표적 계란 요리인 오믈렛은 밥을 즐겨 먹는 일본인의 취향에 맞게 개량되어 오므라이스(オムライス)가 되었다.






일본 전통요리와 고기가 혼합한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스키야키(すき焼き)'다. 본래 고기가 아닌 생선 등 어육이 들어가는 음식이었으나, 메이지 시대 육식을 하기 시작하며 지금의 스키야키가 되었다. 고기가 샤브샤브처럼 얇은 이유에 대해선 고기의 육향에 적응하지 못해 이러한 조리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또, 스키야키는 날계란을 풀어서 찍어먹는데 이 역시 고기의 누린 맛을 익숙한 계란의 비린맛으로 감추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일본의 육식문화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일본 내에서 육식이 발전한 것이 아닌, 외국의 음식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현지화한 메뉴가 많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에 접어들어 다양한 서양의 근대적 문화를 빠른 속도로 수용해 왔다. 이는 식문화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은 스스로가 위기에 처했다 싶을 땐 다양한 방법으로 내부 시스템을 개혁했다. 대표적으로 메이지 유신과 2차 대전 후 일본의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스스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가장 기초적으로 필요로 하는 의식주마저 급진적으로 바꾼 것에서 생각할만한 부분이 많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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