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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잼 Sep 25. 2023

키워드로 보는 일본(10) - 이에(イエ)

일본의 독특한 가족 구성

고레에다 히로카즈 作 <어느 가족>


여러분은 가족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 부모와 형제, 조부모를 포함한 혈족, 평생을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등 그 정의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본인이 초등학교에서 가족을 배울 땐 단순히 '핵가족'과 '대가족'으로 분류해서 배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기존의 가족관이 깨지고 새로운 유형의 가족 형태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한자 문화권의 가족의 가장 큰 특징은 '같은 성(姓)'의 '혈족'끼리 가족 구성원을 이루고, 이를 관리해온 것이다. 집안의 대가 끊기지 않는 한 양자를 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일본은 조금 다르다. 결혼을 하면 여성이 남성의 집안의 일원이 되고(성을 바꾸고), 대를 이을 사람이 없으면 사위가 성을 바꾸고 처가를 잇거나, 혈족이 아닌 사람을 양자로 삼아 대를 잇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보면 가족을 유연하게 구성한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현상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이는 일본 고유의 집단 개념인 '이에'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일본 사회를 대변한다 할 수 있는 '이에'가 어떠한 것인지 알아보고, 이에가 일본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탐구해보고자 한다.



이에(イエ)는 무엇인가


이에란 무엇일까. 이에는 '한 집안의 직업과 재산이 직계적으로 계승되는 가족 혹은 의사가족 시스템'(阿部 一, 2014)을 말한다. 이에가 계승되는 요건은 혈연관계가 아닌 집안의 가산과 가업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것에 있다. 이것이 한국의 가족관과는 다른 가장 큰 특징이다.


본래 고대 일본은 모계 중심의 핵가족으로 직계가 아닌 방계를 통한 계승이 많았다. 그러나 나라시대 이후 중국으로부터 직계 계승에 대한 관념이 들어오고, 6세기, 남계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한 우지(うぢ、氏)라는 집단 조직이 생겨나며 상속 관념이 변화한다.


11세기가 되면 덴노의 외척으로 셋칸 정치를 주도한 후지와라 씨에 의해 이에가 탄생한다. 후지와라 씨는 자신들이 차지한 관직과 집안의 재산을 '덴노의 외척이 아니더라도' 후대에 물려줄 방법을 고안하였고, '아버지에서 적장자'에게 이를 계승하는 형태로 '이에'라는 가족 시스템을 만들게 된다.


이는 점차 확대되어 12세기에는 황실과 귀족, 무사에게, 14세기 후반에는 유력 농민층, 15세기 무렵에는 일반 농민층까지 확대되었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80%에 이르는 이들이 이에를 만들기에 이른다. (농민층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이름이나 특징을 가문의 이름으로 삼고, 이것이 묘자, 즉 성으로 발전한다.)



이에가 동아시아의 가족관과 다른 점은?


앞서 설명했듯 이에가 존재하는 목적은 '집안의 대를 이어가는 것'이 아닌 '가문의 명예와 가산, 가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단순히 혈연관계를 무한히 확장하기 위해 이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에는 세대를 초월해 영속하며, 가업과 가산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적 성격을 가진다. 또, 분할상속으로 재산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단독상속을 채택했다. 이에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집안의 가업이 계속 이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가장이 집안의 운영과 상속에 깊게 관여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가져 가부장적 가족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또, 무엇보다 가업을 이어가는 것이 이에가 존재하는 가장 큰 목적이므로 적장자가 그 자질이 부족하면 이에에서 추방될 수 있고(칸도, 勘当), 사위에게 가업을 잇게 하거나(무코요시, 婿養子), 심지어는 혈연관계가 아닌 제3의 인물을 양자(養子)로 들여 이에를 물려주는 경우도 있었다.


가게 앞에 내거는 노렌(のれん)은 이에의 상징이자 이에의 신용을 나타냈다.



이에와 일본 사회


메이지 시대에 들어 이에와 서구의 가족관이 답습된 이에 제도(家制度)가 시행된다. 1872년 호족법과 민법이 시행되며, 모든 국민이 호주 중심으로 가족관계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모든 일본인은 자신의 이에를 가지게 된 것이다.


메이지 시대 이후 이에는 강력한 호주제로 남성 중심 혈연관계의 가족관을 정착시켰다. 여성은 혼인하면 의무적으로 남편의 성으로 바꿔, 남편의 이에로 편입되게 되었다. 이러한 이에 제도는 일본 국민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지기보단, 근대화 과정에서 조세·교육·징병을 더욱 수월하게 하기 위해 시행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대 일본 사회에서도 이에는 여전히 중요하며, 그 특성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대기업의 회장이 재능 있는 양자를 들여 그에게 회사를 물려준다던가, 오래된 빵집을 지키기 위해 사위가 처가의 성으로 바꾸고 빵집의 후계자가 된다는 이야기는 이에의 흔적일 것이다.


농촌과 대도시 모두 오래된 상가의 경우 그 유동성이 매우 낮다고 한다. 이 역시 이에의 영향으로 한 곳에서 대에 대를 거듭해 가며 영속적으로 그 가게를 이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상점과 그 앞에 내걸린 노렌이지만 그 안에는 오랜 시간 가업을 이어가고자 한 이에의 역사가 깃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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