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목이 백리 벚꽃길이 된 시간만큼 거슬러 올라
요즘 코끝이 찡한 겨울 도심을 걷다 보면, 차가운 공기 속으로 하얀 입김을 흩날리며 가로등 불빛 아래를 달리는 젊은 러너들을 마주한다. 손목 위 스마트워치가 1km마다 읊어주는 정교한 페이스 수치와 SNS 인증숏이 일상이 된 '러닝의 시대'. 그 활기찬 에너지 속에서 나는 문득 책장에 꽂힌 두 권의 바인더를 꺼낸다. 그 안에는 2001년부터 2006년 사이, 대한민국 마라톤의 '창세기'라 불리던 시절의 기록들이 온전히 잠들어 있다.
2001년 9월 23일, 분지 특유의 늦더위와 습한 지열이 기승을 부리던 대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2002년 월드컵 성공을 기원하고 대구 스타디움의 개장을 기념하기 위한 프리 이벤트(Pre-event)로 열린 '2001 대구 마라톤 대회'였다(이름하여 제1회 대구 마라톤 대회다). 당시엔 경기장 주변 아스팔트 위에서 숨을 헐떡이며 달렸던 소박한 시민 축제였다. 정확한 거리 측정 기술이 정착되기 전이라 하프마라톤임에도 완주증에 20.051km라는 묘한 숫자가 찍혀 나오던 시절의 해프닝은 이제 바인더 속의 정겨운 추억이다. 하지만 그 길은 이제 우승 상금이 16만 달러에 달하며 보스턴 마라톤의 위상을 넘보는 세계육상연맹(WA) '골드 라벨'의 무대로 성장했다. 무더웠던 9월의 코스는 기록 경신에 유리한 2월로 옮겨졌고, 경기장 주변에 머물던 길은 대구 도심을 순환하는 코스로 확장되었다. 내가 내디뎠던 그 서툴고 뜨거웠던 보폭은 세계 최정상 엘리트들이 질주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름 없는 한 주자로서 가질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긍지가 아닐 수 없다.
그 시절의 길들은 저마다의 시대적 소명을 품고 있었다. 2001년 10월 7일, 평소라면 많은 차량들이 오갔을 창원대로를 통제하고 6.15 남북공동선언의 열기를 담아 "백두산까지 달리고 싶다"는 염원을 노래했던 ‘제1회 창원통일마라톤대회’도 잊을 수 없다. 시민단체가 주도한 이 투박한 길 위에서 직선의 도로와 맞바람을 뚫고 달렸던 그날의 기억은 25년이 흐른 지금도 대회의 가장 중요한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풀코스 종목도 있었던 대회가 최근 창원 시내에 S-BRT 노선이 들어서며 5km와 10km 종목만 있는 대회로 축소 개최되고 있다. 도시의 성장이 가져온 효율성 뒤로 우리가 온몸으로 누비던 넓은 도로의 자유가 한 뼘 좁아진 것 같아 못내 서운하다.
뒤이어 순천의 영웅 남승룡 선생을 재발굴하며 4,500명의 주자와 함께 팔마종합운동장을 기점으로 달렸던 ‘남승룡 추모 제1회 순천마라톤대회’의 기억도 소중하다. 마침 며칠 전, 한 지인이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제2회 대회의 참가 모습을 올려둔 것을 보고 그 시절의 인연과 열정이 떠올라 무척 반갑기도 했다.
2003년 5월, ‘삼천포 ~ 창선 교량개통기념 제1회 전국하프마라톤대회’에 참가하여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삼천포와 창선을 잇는 바다 위 5개의 다리를 건너며 압도적인 해방감을 맛보기도 했다. 당시 지자체 간의 자존심 대결로 대회 명칭이 혼용되던 진통 속에서 탄생한 그 길은, 이제 석양을 배경으로 해안 도로를 달리는 환상적인 '사천 노을 마라톤'으로 진화해 여전히 러너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길이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2002년 1월 27일, 매서운 바닷바람을 뚫고 5천 명의 인파와 함께 경남 고성에서 달렸던 '이봉주 훈련코스 제1회 전국 마라톤 대회'는 이제 기록 속에만 존재하는 전설이 되었다. '국민 마라토너'의 동계 훈련 코스라는 스토리텔링이 무색하게도, 그 길은 주변 공단의 산업화와 안전 문제로 인해 마라토너의 길을 내주어야 했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획기적이었던 ‘디지털’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출발한 ‘제1회 구미디지털마라톤대회’는 이제 지역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인물 중심의 브랜딩으로 완전히 옷을 갈아입었다. 한 시절의 활기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거나 새로운 모습을 갖추어가는 과정을 보며, 영원한 것은 없다는 당연한 진리와 변화라는 삶의 섭리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시간의 힘을 가장 선명하게 느끼는 곳은 단연 합천이다. 2003년과 2004년, 제2회와 3회 합천 벚꽃 마라톤에 참가했을 때 내 곁을 지키던 어린 묘목들을 기억한다. 그때는 황강변을 따라 갓 심은 가느다란 나무들이 풍경의 일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내 숨은 가빴다. 하지만 25년이 흐른 지금, 그 나무들은 '백리 벚꽃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울창한 터널이 되어 매년 1만 명 이상의 러너를 맞이한다. 나무가 자라는 동안 나의 달리기 또한 성숙해졌다. 지난해 오랜만에 그 길을 다시 찾았을 때의 감동은 각별했다. 그 여운을 이어 올해도 다시 한번 그 터널 아래를 달리고 싶었으나, 최근의 뜨거운 러닝 열풍을 증명하듯 참가 접수가 순식간에 마감되어 버렸다. 비록 올해는 백리 벚꽃길을 직접 밟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 아쉬운 마음조차도 달리기가 내게 가르쳐준 기다림과 여유의 일부로 받아들여 본다.
나의 마라톤 궤적은 어쩌면 단순한 숫자들의 나열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엘리트 중심에서 시민 중심으로, 고행에서 축제로 이동해 온 역사적 단면인지도 모르겠다. 주 5일 근무제의 점진적 도입과 웰빙 트렌드, 그리고 월드컵의 열기가 맞물려 전국 각지에서 우후죽순처럼 대회가 신설되던 그 역동적인 현장에 내가 있었다. 그 길 위에서 흘린 땀방울은 나라는 개인의 역사를 넘어 우리 지역 사회의 변화와 호흡을 같이 해왔다.
이제 2026년, 내가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누볐던 많은 대회들이 어느덧 26주년을 맞이한다. 25년 전의 보폭과 오늘의 보폭이 만나는 지점에서 나는 다시 운동화 끈을 묶는다. 1회 대회의 출발선에서 느꼈던 그 혈기 넘치던 긴장감은 여전히 내 삶의 '처음'을 지탱하는 힘이다. 달리기가 나에게 가져다준 것은 단순한 체력의 증진만이 아니다. 사라지는 길에 대한 애상, 자라나는 나무에 대한 경외, 그리고 무엇보다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달리기의 끈을 놓지 않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바인더를 덮으며 생각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 주변의 풍경과 시간의 결은 달라졌지만, 이번 주말에는 25년 전 대구에서, 창원에서, 그리고 순천에서 달렸던 청춘의 나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그때의 내가 지나온 길을 이정표 삼아, 지난 25년이 그러했듯 앞으로의 시간도 달리기와 함께 묵묵히 나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