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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실섹시 Nov 03. 2024

30대의 삶 - 30

달리기는 안비쌌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문득 맥모닝이 먹고 싶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맥도날드로 가는 길에 차도가 소란스러워서 보니 마라톤을 하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마라톤 옷과 러닝화를 신고 주말 아침 일찍부터 달리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전날 새벽까지 과음에 절여진 행색으로 슬리퍼를 질질 끌며 맥도날드를 향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다소 낯부끄럽게 여겨졌다.


요즘 러닝이 많이 유행하고 있다. 건강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러닝이 유행이 된다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첫 번째로 러닝은 인간이 있는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으로 즉시 실행할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요즘 많은 이들이 다이어트나 운동 혹은 건강유지의 비결에 뭔가 자신들이 모르는 특별하고 새로운 방식만을 궁금해한다. 그리고는 정작 잘 자고, 잘 먹고, 되도록 많이 움직여야 하는 건강의 기본기는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 특히 운동방식보다는 식단에 상당히 민감한 편인데 한동안 유행했던 키토제닉 다이어트라던지, 요즘 외국에서 유행한다는 카니보어 식단 등 회원님들이 전문가인 나보다도 트렌드에 더 민감하게 리서치를 하고 어떠냐는 의견을 물을 때마다 상당히 난처해하곤 했다.

식단을 제외하더라도 쏟아지는 많은 질문에 빠지지 않는 명사는 바로 '효율'이다. 어떤 게 '효율'적인 운동방식인지, 어떤 게 '효율'적으로 살을 빠지게 만드는지 등.


사실 뭐든 그렇지만, 무언가를 성취하는 과정에 있어서 shortcut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편이다.

내 삶을 돌아보면, 어떤 분야의 어떤 것이든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충실히 수행하며 누적된 과정에서 얻어낸 결과였다. 무분별한 정보가 난무한 요즘 시대가 강조하는 그놈의 효율주의를 뜯어보아도 결국 올바른 방식의 기본기가 연속적으로 실행되었을 때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원초적인 운동 움직임의 결정체인 러닝이 유행이 달가운 것이다. 이상 회원님들에게 왜 살을 빼기 위해서 달리기를 해야 하는지를 설득시키기 위한 공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러닝의 유행이 달가운 이유 중 두 번째는 아주 경제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몸을 담고 있는 헬스 업계에 처음 입문하게 된 계기는 단순히 저렴해서였다.

외모가 경쟁력이 되는 젊은 나이에 뭔가 운동을 하고는 싶었는데 다 너무 비쌌다. 그리고 어떤 스포츠던 입문에 앞서 레슨의 과정이 필요한데, 이상하게 헬스는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입문이 가능한 가장 경제적인 운동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좀 다르긴 하지만, 내가 처음 헬스를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회원권만 등록하면 샤워실에 샴푸와 비누가 뿐만 아니라 스킨로션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뿐이랴. 운동복과 수건도 그냥 이용할 수 있었다. 이런 기준에서 러닝만큼 완벽하게 경제적인 운동이 또 있을까 싶다.

우울과 정신질병에서 허덕였던 내 과거에서 지금의 내가 되는 변화의 포문을 열어준 것도 사실은 헬스가 아니라 달리기였다. 그래서 6년째 평일 매일같이 아침마다 달리기를 한다. 죽고 싶을 때 달리기를 하면 진짜 죽을 것 같았다. 호흡이 턱끝까지 차면 가까스로 살기 위해 헉헉 대는 스스로를 마주하면 우스워서 왜 죽고 싶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우울감은 보통 현재와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기인하는데 동적인 움직임 중에 가장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달리기이다. 가장 경제적인데 정신과 육체적 건강을 도모할 수 있는 달리기를 안 좋아할 수가 없다. 물론 뛸 때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게 흠이긴 하다.


라떼는 런닝화는 개뿔 ABC마트에서 산 3만원짜리 푸마 단화신고 5키로 뛰었어 임마~


위 두 이유로 나는 러닝을 아주 좋아했다. 그러나 행사 속 군중들을 쭉 살펴보다가 이내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지난주 마라톤 행사 모델 촬영 시 담당 PM이 요청한 의상 레퍼런스에 해당하는 옷이 없었다. 촬영일은 임박했고, 인터넷에서 주문을 하기에도 촉박해서 급한 대로 코엑스에 가서 스포츠 브랜드들을 쭉 훑어보았는데 가격이 정말 극악무도했다. 나이키, 아디다스, 언더아머 등은 물론이거니와 달리기 퍼포먼스에 최적화된 브랜드라는 호카에서 판매하는 옷을 보고 기절할뻔했다. 특별하달게 1도 없는 바지가 20만 원이 넘었다.

의상도 의상이지만 요즘 웬만한 브랜드에서 출시되는 러닝화는 20만 원이 기본이다. 뭐 어쩌고 저쩌고 카본화는 30만 원, 그 이상도 하는 걸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근데 오늘 마라톤 행사에 참여한 그 많은 러너들 중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내가 혀를 내둘렀던 가격의 그것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다 합치면 100만 원 정도는 되어 보이는 아이템들의 총합을 다소 어려 보이는 10대 청소년들, 달리기 폼이 다소 아쉬운 사람들, 달리다가 걷다가 하는 사람들, 심지어는 걷기만 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그 "럭셔리"한 차림새로 취미를 영위하고 있었다.


사실, 어떤 업계던 사람들의 관심이 유입되기 시작하면 자본이 투입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취미도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당연히 투자금도 발생되는 또한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이 유입되는 현상에서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 본인이 실행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취미이자 움직임을 실행하는데 좌절감을 들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되었다. 뭐, 꽤나 비용이 많이 투자되는 취미인 PT라는 상품을 판매하는 장사꾼이 이런 의견은 다소 역설적일 수 있다. 그러나 PT는 선택의 영역이다. 헬스는 어느 정도 수준까지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요즘 유튜브에서 많은 조회수가 누적된 영상 10개만 통달해도 기본기는 충분히 학습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헬스를 시작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장비와 헬스장 이용권 모두 구매해 봐야 20만 원이 넘지 않는다. 한데 달리기를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이 되는 러닝화의 가격이 기본적으로 20만 원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느껴진다.


사실 모든 것이 개인의 선택임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모든 취미는 템빨이라는 사실도 인정하는 바이다. 다만 남들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우리나라 정서 특성상, 무시받기 싫어하는 특질이 발현되어 본인 수준 이상의 아이템부터 장만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장 경제적인 데다가 정서적 육체적 건강을 영위하기 위해 즉시 실행 가능한 운동마저 자본이 유입되니 너무 과도한 허들이 생긴 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상향평준화. 남들 하는 정도는 하고 살아야지~의 기준을 뜯어보면 다소 폭력적이다.

서울에 살아야 하고, 인서울 적당한 대학, 직장은 대기업, 부모님은 어쩌고, 자산은 저쩌고.

달리기에서 시작한 아쉬움의 고민이 정착한 곳에는 씁쓸한 현실밖에 없었다.  


그래도 맥모닝은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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