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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듀이 Feb 12. 2020

퇴사 후 어떤 생각을 할까 - 날 옭아매는 기회비용

이 시간에 회사에 있었으면 10만 원은 벌었겠다

퇴근시간인데 오늘 나 뭐했지?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시간이다. 퇴사와 상관없이 인생이라는 내 음악은 여전히 고유의 멜로디로 흐르고 있었고, 나는 직장이라는 변주 하나를 잠시 빼 두었을 뿐이다. 그러나 역시 말이 쉽지, 퇴사하는 그 순간까지도 겁쟁이 었던 나의 막연한 불안은 '그냥 세상 사람들 사는 대로 살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을 먹이 삼아 야금야금 커져가고 있었다.

커져가는 불안의 기저에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숨어있었다. 홀로 들판 위에 덩그러니 섰을 때 뭘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 것은, 사실 전혀 그래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 어떻게 살면 좋은 지, 학교나 회사라는 타이틀을 떼고 나서의 나에 대해 규정해 본 경험이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당장 은행 대출 연장하러 가야 되는데, 직업란에 뭐라고 적지, 연장 안 해주는 거 아냐?',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 전환 신청을 해야 되는데'와 같은 살갗에 닿는 고민들을 직면하게 되면서 나는 정확히 반반의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후회하면 어떡하지?'와 '하루라도 일찍 퇴사하길 잘했어'라는 것.


지금은 퇴사를 할 수 있지만,
더 늦었다면 퇴사를 할 수 조차 없었을 거야

이 불안은 내 인생 어느 순간에든 불쑥 튀어나와 충분히 나를 할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피해 왔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다른 사람들이 다녀간 길에 심리적인 안도감을 얻는 - 그들의 노력에 빚진 삶을 살아왔다는 걸 알기에, '퇴사하길 잘했어'가 차츰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왕이면 젊을 때 뿌리를 다시 한번 다져야지 나중에 다지려면 더 힘들 거야, 지금은 퇴사를 할 수 있지만, 더 늦었다면 퇴사를 할 수 조차 없었을 거야, 라면서.

퇴사 후 일단은 쉬면서 머리를 비워야지-라고 생각했으나 초,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그리고 취업. 지극히도 평범한 이 루트에서 한 번도 내려보지 않은 나는 이 어마어마한 휴식이 너무 낯설었다. 쉬는 것도 적응과 연습이 필요한 법인데, 일 권하는 사회의 매우 충실한 노동자는 술을 새벽까지 부으며 노는 법은 알았어도 정작 편안히 쉬는 법은 몰랐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범람하는 시간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자신이 무서웠다. 어떻게 하면 잘 쉬는지는 몰랐으나, '졸리면 자면 그만이고 배고프면 먹으면 그만'인 하루만큼은 내게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시간에 회사에 있었으면 
10만 원은 벌었겠다

'이 시간에 회사에 있었으면 10만 원은 벌었겠다'는 생각이 반복해서 든 건 그즈음이었다. 무심히 흘려보내는 시간을 돈으로 계산하고 있는 나 자신. 쉬는 법도 모르는데 쉴 수 조차 없도록 스스로를 훈련해온 삶이었다. 퇴사에 따르는 기회비용이 얼마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는, 심리적 학대에 더불어, 매월 25일마다 0원의 월급이라는 억압을 스스로에게 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나의 퇴사 여정은 '벌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이어야만 했다. 그래야 마른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는 정신이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었고, 더 다양한 일들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보면, 좋아하는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도 있겠지.

스스로에게 더 이상 격자무늬 시간표와 계획표를 들이대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나만의 원점으로 돌아가기 위한 느슨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기로 했다. 일정한 시간에 같은 일을 반복하는 방법으로 하루의 기준을 바꿔볼 셈이었다. 그게, 나에게는, 역시 요가였다.

곧바로 집 앞 요가원 마이솔 수업을 등록했다. 다 묻고 더블로 등록했다. 매일 나오겠다고 호언장담도 마쳤다. 환불, 양도, 교환이 어렵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들은 그냥 흘려들었다. 이제 반년 정도는 무조건 이 가이드를 따르는 거다. 매일 아침 해가 떠오는 창 밖을 보며 시간이 흐르는 것, 계절이 변해가며 여름이 오는 것, 결국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바라볼 수 있겠지.

풍족해진 나의 시간은 10만 원을 못 버는 시간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다져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불안으로 잔뜩 거칠어진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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