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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듀이 Feb 23. 2020

퇴사해도 별 일 없이, 그러나 건강하게.

그래도 소주는 맛있지만



간잔 때리고 별도 만들고 신나는 음주생활



퇴사 후 내게는 회사를 다닐 때보다 훨씬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어들고 있었다. 일단 격해진 감정으로 카톡방마다 "오늘 간잔(간단하게 한잔) 할 사람?" - 결과는 언제나 전혀 간단하지 않은 영수증으로 돌아왔지만 - 을 외칠 일이 없었다.

병적으로 가까이 두던 아이폰을 조금씩 내게서 멀리 떨어뜨릴 수도 있었다. 급한 연락이라곤 올 데가 없었으므로 머리가 복잡할 땐 휴대폰을 수면모드로 돌려두면 그만이었다. 마음이 번잡스럽지 않으니 태양이 오를 때 자연히 눈이 떠져 요가원으로 수련을 나섰고, 달이 떠오르면 무거워진 눈꺼풀을 안고 잠이 들었다. 조금씩 회사가 내게 남긴 잔여물들이 빠져나갈수록 내 몸은 꽤나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탈회사를 시발점으로 차츰 자연스레 맞춰져 가는 생활 사이클과는 달리, 의도적으로 맞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먹는 모든 것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함부로 대했던 것, 또 앞으로 오래오래 백수를 하려면 꼭 돌봐야 할 것, 그리고 엄마가 가장 걱정할 것. 모두 내 입으로 들어가는 먹는 것들이었다.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나다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나다" 처음 들었을 땐 왠지 격하게 느껴졌던 말이다. 되새겨보면 이렇게 구구절절 맞는 말이 없다. 내 장기들은 내가 먹고 마시고 숨 쉬는 것 말고는 좋아질 일도 오염될 일도 없다. 회사라는 공간에 하루 최소 12시간씩은 매여있으면서 가장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이기도 했다.

입사 3년쯤 되었을 무렵, 나는 소맥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화가 나면 분노를 가득 담은 쏘맥을 아주 씨원하게 말아다가, 목젖을 탁하고 치고 넘어가는 그 한 잔을 원샷으로 삼켜냈다. 청양고추 가득 얹은 닭발과 엽기 떡볶이에 맥주를 얹어, 내 화보다 더 강한 통증을 점막 가득 느끼며 말도 안 되는 위안을 받기도 했다. 보글보글 칼칼하게 끓여낸 지리탕에 소주 한 잔이면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습관처럼 술을 찾았다. 음주는 과음을 부르고 과음은 숙취를 불렀다. 가벼운 두통으로 끝난 날도 있었지만 멈추지 않는 구토 분수대가 되어 변기 앞을 떠날 수 없던 적도 있었다. 나는 분명 나빠진 건강에 책임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숙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더블샷을 때려 넣던 과거는 뒤로 접어두고, 매일 해뜨기 전에 따뜻한 차를 우려내어 밤새 차가워진 손과 몸을 덥혔다. 그 따스함은 굳어버린 몸의 곳곳으로 퍼져나가 단단하게 뭉친 근육과 마음을 동시에 풀어주었다. 하루를 차 한잔의 여유로 시작하는 것은 잔잔한 평화로 오늘의 태양을 맞이함을 의미했다. 내 마음도, 우울도, 걱정도, 그 시간 안에서는 다 같이 녹아내렸다.

요리에 전혀 취미 없는 혼족인지라 가공식품을 피하기는 어려웠지만, 아침식사만큼은 최대한 자연식품 위주로 먹으려고 노력했다. 요리는 못하지만 고구마와 달걀은 삶을 줄 알았으니까. (헤헤) 아침은 삶은 고구마나 단호박에 삶은 계란을 준비했다. 후식으로는 무가당 요거트에 견과류를 얹어먹었다. 엄마 찬스로 호박죽이나 팥죽을 얻어다 먹기도 했다.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니 화장실도 규칙적으로 가게 되었다. 전날의 술과 매운 음식의 자극에 못 견뎌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 내 장기를 하나하나 안전하게 통과하고 흡수된 후의 찌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몸에 화가 줄어드니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담백한 음식을 찾게 되었다. 불안하고 떨리면 무엇이든 입으로 넣어야 좀 진정이 되는 습관 덕에 늘 곁에 두고 질겅대던 하리보나 트롤리도 안 산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친구들과의 약속에서도 술은 즐거운 정도로만 마실 줄 알게 되었다. 숙취는 물론 다음 날 새벽에 다시 요가원에 가는 것에도 문제가 없었다. 습관적으로 쓰리게 타오르는 식도와 새벽에 기습 공격으로 날 찾던 습관성 위경련도 차츰 멎어 들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진작 나 좀 챙길걸- 하는 후회가 들었으나 이내, 아무래도 어려웠을 거야, 하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다시 회사에 가게 된다면, 내 몸을 챙길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남겨주는 곳이어야만 해, 꼭. 회사에 진저리를 치며 뛰쳐나왔지만 언젠가는 회사에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만큼, 몸도 마음도 많이 진정되고 회복되었다. 진작 나왔어야 해, 아냐 그만큼 배운 것도 있었어, 그래도 좀 더 준비했어야하지 않았나.. 버티는 사람이 잘하는 사람이라는데... 하며 스스로 이런저런 대화를 했지만.

역시 퇴사하길 잘했어, 나를 믿어주길 잘했어.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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