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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듀이 Feb 24. 2020

퇴사 후, 요가 강사 흉내를 내보다 (1)

알싸한 첫 면접의 기억

새벽에 일어나는 게 이렇게도 즐거운 일이라니




금요일에 마지막 출근을 하고, 바로 그 다음주 월요일부터 요가원 새벽 수업에 출석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흐트러지기 싫은 마음과 그동안 한 번도 꾸준히 나가지 못한 마이솔 수업에 대한 열망이 타올랐다. 유달리 허리가 앞뒤로 잘 굽는 체형 덕분에 유연하다며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만들곤 했던 아사나는, 수련을 거듭할수록 그만큼 부족한 근력이 되어 내 발목을 잡았다. 다른 사람들은 근육을 차츰 키워가며 소중하게 만들어냈던 후굴이 내게는 그동안 허리를 꺾는 것만으로도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새롭게 요가를 시작하며 바르게 수련하는 것이 더 힘들었고, 그래서 더 더 좋았다. 좋은 스승을 만나 바르게 몸을 정돈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그럴 때면 허벅지와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며 몸이 찌릿찌릿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요가를 할 땐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없었고, 그 어떤 것도 불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회사가 힘들 때 내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던 요가, 어느덧 TTC(Teacher Training Course: 지도자 과정)을 수료한지도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백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요가를 연습한 경험을 강사로서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의 평생 직업이 아니더라도, 요가가 언제나 내 곁에 머물렀으면 하는 그런 마음으로, 언젠가는.



첫 면접의 기억

그러던 중 집 근처 커뮤니티 센터에서 채용공고가 났다. 이력서를(이제 와서 보니) 매우 화려하게 디자인해서 제출했다. 초보강사지만 진짜 요가를 좋아한다고. 이 마음을 누구와도 잘 나누겠다고. 그런 마음들을 가득 담아서. 그리고 며칠 뒤 면접을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뭘 물어보실까? 갑자기 시범을 시키시면 어떡하지? 물론 시퀀스는 준비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쿵쾅쿵쾅 마구 요동쳤다. 내 인생 면접룩은 검은 정장 혹은 비즈니스 캐주얼인 줄로만 알았는데... 요가강사의 면접룩은 뭐지? 요가복을 입고 가야 되나? 하.. 모르겠다 진짜. 고민 끝에 우스꽝스럽게도 하의는 검은색 레깅스, 상의는 하얀 니트를 입었다. 요가스러우면서 비즈니스적인 느낌이 나는, 나만의 타협점이었다.

그래도 내가 취업 준비하면서 본 면접만 대체 몇 번이냐, 명색이 기획실 출신인데 말은 잘하겠지. 별 것 아니게 잘할 거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다독이며 마음을 추스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루룩 꾸루룩, 이놈의 장트라볼타는 여전해서 지 맘대로 소리를 내며 면접이 임박했음을 주기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잔뜩 무겁게 부른 배는 도저히 화장실을 갈만한 기미가 안 나오고, 뿔룩 튀어나온 아랫배가 민망했다.

"근데 왜 퇴사하셨어요?"
내 나름의 '요가강사 면접 예상 질문'에는 전혀 없었던 첫 질문.

그리고 이어,

어떤 수업하실 수 있으세요,
저는 이번 선생님은 좀 오래 하셨으면 좋겠어요,
전 선생님은 회원들이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회원들 친목도모도 좀 신경 써주시고.
미리 와서 매트 좀 깔고, 정리 좀 해주시고, 준비해주시고... 그럼 저희야 좋죠.
사실 PT가 더 돈이 되거든요.
거기 집중해야 되는데 이런 요가 수업에 시간과 정신을 쏟는 게 제 입장에서는 부담이에요.
인원 안차면 폐강할 거라, 일단 시간 비워두시고, 연락드릴게요.
폐강 안되면 저희가 연락을 드릴 테니 그때 와서 수업해주시면 돼요.


신경 안 쓰시게 잘해볼게요

기분이 얼굴에 그대로 다 드러나는 내가, 겨우 정신줄을 부여잡고 헬헬 거리며 웃다 내놓은 한마디였다. 합격은 합격이라는데, 내 얼굴은 웃을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요가의 생태계가 이랬던 것일까. 내가 만났던 도반님들도 다 이런 경험을 쌓아 필드로 나간 걸까. 면접을 보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잔뜩 드는 느낌이라니, 썩 좋지 않은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요가를 나눈다는 건 굉장히, 아주 굉장히 어려운 일이구나,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요가 선생님들이 새삼 머리 위를 스쳐갔다. 내 방식대로 내가 배운 대로 요가를 나누는 것. 오늘처럼 제 멋대로의 방식으로 흩어져버린 요가라는 허울의 끝을 잡고 헛 헤엄을 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니까, 내가 이 곳에서 수업을 시작하는 것이 맞을까?

그날의 내 기분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날의 면접에서 나는 합격자가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도 계속해서 요가 채용사이트에는 내가 합격했다는 포지션의 공고가 올라왔다. 내가 진짜 붙은 건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여러 가지로 속상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다시 매트 위에 서길 반복했다.
다른 사람이 어떻든, 다른 센터가 어떻든. 나는 내 세계 안의 요가를 차분히 가꾸어 나가면 돼.

그렇게 생각을 조금씩 버려갈수록 날뛰던 마음이 잠잠해졌다.

며칠 후, 수업이 확정되었는지조차 모를 그 센터에는, 사정상 수업을 나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연락을 드렸다.

"네"라고, 가벼운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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