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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듀이 Feb 25. 2020

퇴사 후, 요가 강사 흉내를 내보다 (2)

뜨끈한 첫 수업의 기억


대강 마지막 날에는 셀카를 찍는 여유도 부렸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퇴사 후, 요가 티칭에 대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던 중, 내가 사는 지역의 다른 선생님께서 여행 일정으로 대강을 구하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냉큼 지원했다. 보통 대강의 경우 협의 - 결정 - 수업 - 대강비 입금 순으로 후다닥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선생님께서는 수업 전에 가볍게 티타임을 제안하셨다.


그분의 배려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자리에 나가보았는데, 역시나 기대한 것처럼 좋은 분이었다. 본인도 내가 꾸민 이력서처럼, 내가 보낸 문자 메시지처럼, 그렇게 열의가 있었더라고. 그리고 너를 보니 잘할 것 같다고. 믿음이 간다고. 그렇게 자신감을 북돋우는 말들만 해주시며 수업의 여러 가지 팁을 주셨다. 막상 지원을 해놓고 수업 날이 다가오니 슬슬 겁이 났지만 뒤로 물러설 곳도 없었고, 대가 없는 믿음과 지지에 누를 끼치기는 싫었다.

보통 첫 수업을 나가기 전에는 대본을 달달달 외워서 눈 감고도 수업을 할 수 있다던데, 내 경우에는 애드리브의 신도 아닌 주제에 텍스트가 도무지 외워지지가 않길래, 몸으로 기억하는 방법을 택했다. "오른손을 머리 위로 드시면서-"를 말하며 나는 왼손을 드는 연습, 호흡 카운트를 그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내 숨소리를 더 안정적으로 키우는 연습, 나에게 너무 익숙한 아사나를 낯설게 보고 수강생들에게 어려울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는 연습, 처음과 마지막에 맞는 bgm까지. 아무리 연습해도 채워지지 않는 부족한 짬(?)력은 태연하고 당당한 표정과 자신감으로 메워야지, 하고 수없이 되뇌었다. 인형을 나란히 앉혀두고 수업을 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몇 번씩 돌려보고, 친구를 초대해 실제처럼 연습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대망의 수업 날. 나는 수업 두 시간 전부터 센터 앞 카페에 들어가서 시퀀스 노트를 눈으로 훑었다. 글자는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오고 내 고질병인 장트라볼타는 왕성히 활동했다. 화장실에 들락날락거리다 보니 어느덧 수업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한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른다. 내리 '천천히 하자'를 되뇌며, 갈수록 빨라지는 내 혀를 잠재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순간순간의 연속. 하필 수업 당일 아침에 읽었던 '아무튼, 요가'라는 책에서, 상아 선생님께서 첫 수업을 망쳤던 부분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긴장이 두 배로 불어났다.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머리가 하얘졌지만 몸은 연습한 대로 여차저차 무언가를 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수업 마무리에 접어들어 사바사나까지 왔을 땐, '하- 끝났다'라는 안도감과 '너무 별로였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동시에 뇌리에 반반씩 꽂혔다.


낯선 강사라 익숙하지 않으셨을 텐데,
끝까지 믿고 따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마스떼.


넘치는 감사함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웬걸, 나의 초조함을 진즉 알아보셨던 어머님들이 잘했다고 물개 박수를 마구 쳐주셨다. "아이고 감사합니다아~" 급작스레 터져 나온 내면의 구수함으로 찔끔 나온 눈물을 삼키며 인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내 작은 마음이 기쁨과 감사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그 사실을 기억해주고 미리 시간을 내어 초심자를 만나 응원을 건네 준 선생님,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수업 내내 '널 따라가고 있어'라는 눈동자로 든든한 지지를 보내준 어머님들. 그 모든 분들 덕분에 내 첫 수업은 지독히도 뜨끈했다. 그 따뜻함과 뜨거움 사이의 온도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내게 남아버렸다.


그 온기로 다음날도 매트 위에 섰다.

나도 누군가의 처음을, 그렇게 축복하리라. 내 처음에 대한 축복을 잊지 않으리라.

다시 무슨 일을 하게 되더라도, 이 날의 경험은 내게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남아, 언제든 날 도와줄 거라는 굳은 믿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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