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꽃 선생님

by 제이앤

아이는 피아노 소리에 귀를 막았다. 그리고 학원 한편에 비치된 그림책만 내내 읽고 싶어 했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도레미파솔만 쳐보자고 해도 아이는 테이블 밑으로 숨거나 책장 틈으로 들어가 귀를 막아버렸다. 아이의 세상에는 88개나 되는 건반이 내는 소리가 낯설고, 어쩌면 두려웠겠지.


아이는 발달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온 가족이 아이를 위해 정성을 쏟고 있었다. 그중 악기 연주를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온 것이라 했다. 집과 기관을 매일 같이 다니시기도 바쁜 와중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넓은 세상에 적응시키기 위해 음악학원까지 오시다니. 빈틈없이 사랑을 채워주기 위해 발품을 더 보태는 부모님의 모습에 나는 수업을 거절할 수 없었다.


아이가 매일 귀를 막고 있어도 어머님은 포기하지 않고 오셨다. 올 때마다 온갖 유혹을 짜내면서. 어르기도, 달래기도, 어쩔 땐 언성도 높여야 하는지라 넉넉히 30분은 여유를 갖고 출발하신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피아노를 잘 치는 걸 기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자극에 대한 방어가 아니라 적응하며 세상에 한 걸음 더 내딛을 힘을 내도록 손을 잡아끌어주기 위해 아이를 억지로라도 끌고 온다고 하셨다. 그렇게 아이는 엄마와 2년이 넘게, 가깝지만 오랜 길을 거쳐 학원에 왔다. 그렇게 겨우 온 학원에서 아이는 처음엔 책만 봤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언제나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거다!' 나는 아이가 흥얼거리는 곡을 찾아 피아노로 치는 법을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아이와 수업하는 시간엔 피아노 연주보다 내가 말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악보에 있는 수많은 기호를 매 시간 똑같이 반복해서 설명하고, 한 번에 한마디 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음 하나에 손가락 하나씩 올려주며 그저 반복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거의 내 조종에 따라 치는 것 같았지만, 레슨시간이 어느 정도 쌓이니 스스로 조금씩 외워 연주하게 되었다. 결국 피아노를 치며 노래까지 불렀다! 그 첫 모습을 보는 순간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아이는 피아노 앞에서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과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음악에 흠뻑 취했다.


아이는 항상 작은 간식을 들고 왔다. 달콤한 간식을 좋아하는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어머님은 어쩔 수 없이 마이쮸를 꺼내야 했다. 악기를 연주하기 때문에 학원에서 간식 먹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알게 된 아이는, 학원에 들어오자마자 세면대에 가서 손을 깨끗이 씻고 물기 남은 손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미처 먹지 못한 간식은 끝나고 먹기 위해 주머니에 잘 넣어 두었다. 얼마나 자세가 훌륭한 연주자인지!


나는 아이와 친해지기 위해 "선생님도 간식 줄래?" 농담을 자주 했다. 아이는 늘 시무룩한 표정으로 "싫어요."라고 대답했는데, 그 표정이 너무나 귀여워서 보고 싶은 마음과 그다음 내 무기로 "그럼 피아노 딱 한 번만 더 치자."를 꺼내야 하는 이유 때문에 거의 매번 할 수밖에 없었다. 몇 달이 지났을까. 아이가 "선생님, 이거 드세요." 하며 마이쮸 하나를 내밀었다. 내가 정말 먹고 싶다고 느꼈을까 싶어 황급히 손을 저으며 선생님이 장난친 거였다고, 네가 너무 귀여워서 그랬다고, 선생님은 간식 먹으면 살찐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간식을 나에게 주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아이는 한사코 내 손에 간식을 쥐어 주었다. 그 순수하게 고집 있는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 마이쮸를 1년 넘게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보기만 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을 준 그 마음이 그 누군가의 아끼는 것을 내어주는 마음보다 작지 않음을 알기에, 그리고 그 간식을 주는 손길에 나 이제 선생님이 마음에 든다고 얘기해 주는 것 같아서, 아까워서 먹어 없앨 수 없었다.


아이는 내가 만났던 수강생 중 특별히 맑고 진실했다. 힘들지 않은 척, 좋은 척하지 못하는 아이이기에 컨디션에 맞춰 수업하기 좋았다. 사실 악기도 그렇다. 좋지 않은 마음으로 연주할 때 그 불편한 마음이 표현되지 않을 리 없다. 행복한 기분일 때 그 마음을 숨길 공간이 없다. 그래서 아이는 음악 그 자체였다. 맑고, 투명해서 윤슬처럼 반짝였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류형선 선생님의 '모두가 꽃이야'라는 노래였다. 피아노가 싫어 책장 사이에 들어가 있을 때도 내가 이 노래의 전주만 시작하면 스르르 나와 어느새 옆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작은 피아노 의자에 같이 앉아 노래 부르고, 같이 웃었다. 연습을 잘 해낸 날엔 <선생님이랑 '모두 꽃' 노래 부르기> 보상도 있었다. 아이는 꽃으로, 사랑으로 존재했다.


그 작은 입을 야무지게 움직이고, 다리를 한들한들 흔들며 노래를 부를 땐 어떤 화려한 꽃다발보다 아름답고 향기로웠다. 입이 오므렸다 펴지는 모습을 보며 꽃이 피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 초승달이 된 눈은 꼭 입새 같았다. 아이는 그렇게 내게 알려주었다. 사랑을 담아 바라보고 노래를 시작한다면 누구나 자신의 귀를 막던 손을 내리고 악기를 만질 수 있다고. 그렇게 자신의 계절에 맞춰 모두 다 꽃을 피울 수 있다고. 그리고 그 꽃피는 순간을 볼 수 있는 여기가 천국이라고 말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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