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연습을 너무 잘해왔는데? 이 곡을 이렇게 연주하다니 대단하다. 이 곡이 맘에 들었어?"
꽤 어려운 곡이라 시간이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더 잘해온 아이에게 비결을 캐낸다. 곡을 연습할 때 자기 취향에 맞는 곡은 실력보다 부쩍 더 짧은 시간 안에 곡을 훌륭하게 연습해 오기 때문이다.
"음, 이 곡이 2위로 좋은 것 같아요."
칭찬에 쑥스러워하면서도 행복감에 차오르는 눈빛으로 분명히 이야기한다.
"그래? 그럼 1위로 좋은 곡이 뭐야?" "잠시만요. 제가 가져올게요!" 그대로 의자에서 훌쩍 내려와 가져온 악보는 연습한 만큼의 스티커와 체크된 색연필로 너덜 해진 곡이었다.
이 곡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들이 대부분 좋아하지만 연주하는 것은 어려운, 아이유의 'Drama'라는 곡이다. 그대로 치면 반주가 될 만큼 편곡도 잘 되어있어 연주자에게는 어려운 악보였다. 못갖춘마디, 왼손 아르페지오 반주, 수시로 등장하는 임시표와 다양한 음표, 쉼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노래에 마음을 빼앗겨 아이들은 끝까지 해냈다.
아이는 두 마디씩 나눈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레슨을 받고 또 받았다. 연습량이 부족해서 다시 연습실을 갔다가 두 번째 레슨을 받으러 나오고, 박자를 안 세고 쳐와서 다시 들어가 세 번째 레슨을 받으러, 깡충 리듬이 감이 올 듯 말 듯해서 연습실을 들어갔다 다시 레슨. 그 곡을 완성하는 두 달 동안 100번 가까이 레슨을 하면서 나도, 아이도 지치는 순간이 서른다섯 번쯤은 왔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내 앞에 앉아있는 한, 아이가 무너지지 않는 한 절대 지친 내색을 하지 않는다. 지친 아이에게 더 활짝 웃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며, "포기만 안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백번 천 번 물어봐도 돼! 선생님은 그러려고 있는 거야!"라고 외치며 다독인다. 더욱 밝게 손을 흔들며 오늘 너무 고생했다고 배웅한 후, 원장실에 들어가 바닥에 대자로 뻗어 30초만 누웠다 나온다.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가 원하는 곡을 반드시 연주하게 더 뜨거운 치어리더가 되리.
100번을 레슨 했다는 것은 아이와 그 곡을 가지고 성공과 실패하는 순간마다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가 지칠 때 어떤 표정이 되는지, 연습을 잘해와서 스스로 뿌듯할 때, 어떤 단어에 더 기쁨을 느끼는지, 눈꼬리와 입꼬리의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선생이 된다. 매일 잘하기만 해서 나의 품이 거의 들지 않는 것보다 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훨씬, 훨씬 더 행복하다.
나는 예전에 악기연주방법만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악기를 통해 아이의 마음을 응원하고 또 그 마음이 자라는 것을 보는 기쁨을 아는 선생이 되었다. 아이와 부대끼며 열심히 반응을 살피는 일이 악기연주하는 기술만을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보람된 일인 것을 알려준 사람은 교수님이 아니라 바로 아이들이었다.
같이 수업한 지 얼마 안 된 아이들하고 으레 겪는 일이 있다. 레슨을 여러 번 하자고 하거나 틀린 부분 지적을 많이 당하면 기분이 상해서 나쁜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책을 던지거나 무례한 말들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불러도 쳐다도 안보기도 한다. 그럼 나는 곧바로 아이와 다시 대면한다. "선생님이 방금 너처럼 똑같이 행동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아이는 "안 돼요."라고 말한다. "선생님이 너에게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네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악보를 읽는 법을 고쳐주려는 거야. 단지 악기 연주하는 법을 배우는 것일 뿐이야. 우리는 그러려고 만난 거야. 우리는 한 팀이 되어서 음악을 연주하는 법을 배우는 거야. 네가 틀렸는데 괜찮다고 넘어간다면 좋은 선생님일까?" 최선을 다해 선생님이 얼마나 너의 마음을 신경 쓰며 자라고 잘하도록 알려주고 싶은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단 한 번이면 된다. 지금껏 이렇게 이야기 나눈 후 똑같은 행동을 했던 아이는 없었다.
아이들은 그런 존재다.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 애써주는 것을 알면 마음을 열고 더 큰 사랑을 보여주는 존재. 상대방이 사랑한다고 하면 '날 사랑하는구나.'하고 받아들이는 존재. 그 말을 의심하거나 곡해하지 않고 느끼는 존재. 가르치고 애를 쓰면서도 어린이 최고! 를 외칠 수 있는 것은 바로 아이들의 투명한 마음 덕분이다.
나는 자주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 되었는지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선생님이 이렇게 행복한 사람이 된 이유 중 하나는 너희들을 만난 것이라고, 그리고 너희들은 선생님보다 더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말을 해주면 아이들은 윤슬 같은 눈빛을 나에게 쏟아 보낸다. 그 눈빛이 바로 내가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학원 문을 여는 힘이다. 가끔 학부모님들께서 "아이가 원장선생님처럼 되고 싶대요."라는 말을 전해주실 때마다 아이들에게 흘려보낸 사랑이 잘 도착했음을 확인한다. 그 말을 듣는 내 눈에도 아이들에게서 봤던 윤슬이 비쳤을까?
스티커로 뒤덮인 악보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이 곡이 제일 좋아하는 곡이 되었다는 고백. 그 환한 얼굴을 보는 나는 스쳐간 100번의 레슨이 아이의 실력만 키워준 것이 아님을 확신한다. 그 지난한 시간을 보내며 아이는 곡에 대한 애정과 부단히 애쓴 결과가 얼마나 달콤한지 자신의 손으로, 귀로 확인 했을 것이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으면 해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여전히 선생님은 새로운 곡을 들어갈 때 미리 쳐주지 않지만, 이제 나도 악보를 꽤나 잘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올랐을 것이다.
틀려도 좌절하지 않고, 선생님의 가르침이 내 존재를 향한 부정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안내임을 믿는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100번의 레슨으로 100배로 자란다. 100배는 더 튼튼하고 100배는 더 말랑하게. 99번을 틀리더라도 100번째 주저 없이 연습실 문을 열고 피아노 앞에 앉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