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글을 쓰는 일
브런치에 쓰는 글은 누군가 독자를 상정하고 쓰는 글인만큼 거품이 잔뜩 끼고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게 난생 처음으로 두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봐도 내놓기 부끄러운 글이라면 누가 봐도 읽기 민망한 글일거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쓰고, 다시 쓰고, 또 고치고 그랬다.
계속해서 글을 쓴다고 해서 내가 명성을 얻거나, 돈을 벌게 되거나, 직업을 갖게 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냥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소소한 마음이 모여 내 이름의 책 한권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데에는 용기가 재능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맴돌았다.
나는 늘 중요한 순간에 한 줌의 용기가 부족했고, 그래서 정말 많은 것들을 놓치거나 미뤄왔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용기를 연습할 수 있는 게 바로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이었다.
브런치라는 개방된 장소에 내 글을 내보이는 건 늘 나에게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무시하면 어쩌지, 비판 섞인 댓글에 어떻게 반응해야할까, 혹은 내 생각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어쩌나, 나를 아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나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면 어떡하지. 한편의 글을 올리는 데에도 수만가지 걱정을 했다. 두려웠고 무서웠다.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쓴다고 했을 때도 은연 중 나를 철없다는 듯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그냥 썼다. 괜찮다고 수없이 나를 다독이며 썼다. 아무도 내 글을 좋아해주지 않고, 내 글을 무시하고, 글 쓰는 나를 한심하게 바라본다 하더라도 그래도 그냥 썼다. 여기에서조차 내가 용기내지 못한다면 나는 평생을 겁쟁이로 살게 될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나 그런 일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순수하게 용기를 연습할 수 있는 일.
그건 아주 사소한 일일 수도 있다. 버스에서 하차벨을 누르는 일일 수도 있고, 카페 직원에게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인삿말을 건네는 일일 수도 있다. 남들 모두 짜장면을 주문할 때 짬뽕을 주문하는 일일 수도 있고, 평소 다니지 않던 길을 가보는 일일 수도 있다.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일일 수도 있으며, 새로운 모임에 참석해보는 일일 수도 있다.
시도해보는 일의 크기와 그에 필요한 용기의 크기는 별개의 개념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필요치 않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태산만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에게는 시도하려는 일의 크기보다, 용기를 연습하고 체득할 수 있도록 자기에게 매일매일 기회를 주고 있는가가 훨씬 중요하다. 그렇게 용기 내는 연습을 하다보면, 정말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에도 도망치지 않고 마주할 수 있을만큼 내공이 쌓이지 않을까.
타인의 시선과 평가는 늘 우리를 짓누르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나는 이제껏 그런 시선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롭게 사고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온전히 나를 위해 선택하는 거라 여겼던 일조차, 돌이켜보면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을 만한 선택지 안에서 고른 것일 뿐이었다.
내가 타인의 시선과 압박을 이겨내고 용기를 연습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제 글쓰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두렵더라도, 엉망진창이라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내려갈 생각이다. 아무도 내 글을 좋아해주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써내려가는 용기와 힘이 있다면, 아무도 내 결정을 지지해주지 않는 순간에도 내 길을 갈 뚝심이라는 게 생기지 않을까 믿으며. 이렇게 연습한 용기가 언젠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순간에도 남이 아닌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게 해줄거라 믿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