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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구슬 Jun 18. 2024

이혼은 했지만 결혼실패는 아닙니다.

13. 갈팡질팡은 하고 있습니다.

갈팡질팡 중이다.

전남편에게 아이를 보게 해 주는 게 맞는 것인지.

못 보게 막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이가 5살 때 별거를 시작했다.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던 아이는 아빠를 그리워했고, 아이 아빠는 한 번씩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아이와 놀아주었다.

아빠가 오면 해맑게 웃던 아이, 아빠가 가면 슬픔에 찬 얼굴을 하곤 눈물을 쏟아냈다.

비단 아이뿐만이 아니었다.

아이가 아빠를 보고 기쁜 얼굴을 하면 나도 행복했고, 아빠가 떠나는 날 아이가 울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전남편 앞에서 울고 싶진 않았지만 주말을 함께 보내다

"아빠 이제 갈게"라는 말을 듣고 우는 아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수도꼭지 튼 듯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나에게 왜 이런 상황이 생긴 건지...

결혼에 실패한 낙오자가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딸과 나는 성장했고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수없이 갈팡질팡했다.

양육비라는 명목으로 쥐꼬리만 한 돈이 입금되면

그놈에게 딸을 보여주는 것이 맞는거겠지.

똑똑이도 아빠가 보고 싶을 텐데 그 사이를 막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그 쥐꼬리마저 없는 날이 지속되면

내가 그동안 미쳤다고 보여줬나 싶어서 자책하기도 했다.

이렇게 수없이 반복했다.





5년의 기간 동안

서울에서 창원으로 아이 아빠가 오기도 했고

창원에서 서울로 딸과 내가 올라가기도 했다.


서울에 올라가면 항상 전남편이 호텔을 예약했다.

셋이 호텔에서 자는 것을 딸이 좋아하기도 했고, 나는 그놈이 사는 집에는 발 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 또한 호텔에 자는 것이 좋았다.

작년 가을도 어김없이 당연히 호텔 예약이 되어 있을 줄 알고 갔는데, 어떤 이유였는지 예약을 할 수 없었다며 오늘은 자기 집에서 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눈 꼭 감고 지내보자 싶었다.



집은 좁았지만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나도 없는 고가의 바디프랜드 안마의자를 보며

역시 이런 놈이었지 싶었다.

나한테 줄 양육비는 없지만 고가의 안마의자는 들여놨겠다?



나는 불륜으로 헤어진 전남편과 함께 밥을 먹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순간순간 웃기도 했다.

딸과 이렇게 서울까지 올라왔는데 인상 쓰고 있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웃고 이야기 나누는 내 모습을 보며 등신 같은 년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혹시 다른 여자와 같이 사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쳤고 이내 내 눈은 그 흔적을 찾아 구석구석 살피기도 했다.


참나,

같이 살면 어떨 것이고 같이 안 살면 또 어떤데... 여자 흔적을 찾는 내  모습이 참 이상했다.

같이 살더라도 내가 기분 나빠할 상황은 아니지 않나.

이혼까지 했는데...

그렇게 속으로는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컴퓨터를 해야 할 일이 생겨 노트북을 빌렸다.


"노트북 좀 써도될까?"

내앞에 노트북을 가져다 줬다.


역시나 나도 없는 좋은 노트북.

진짜... 이 새끼 뭐야... 여전하네라고 생각하며

한판 붙을까? 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네이버 로그인을 하려고 하니  지극히도 여자이름인 한 아이디가 이미 저장되어 있었다.

아 이 새끼 또 여자가 있구나.(또또또또또 여자가 있구나라는 말이 어울린다.)

와 진짜 여자 없음 안되는구나.

이 여자도 불쌍하다.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소용돌이치며 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한편 생각해 보면

이혼했으니 상관없는 거 아닌가?

내가 다른 남자 생각이 없다고 이 사람도 그러려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내가  상황에 기분 나빠할 일은 아닌데 왜 리 어이가 없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나는 이 계기로 앞으로는 딸을 보여주지 않으리라 마음먹었고.

그 쯤 쥐꼬리 양육비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아이에게 매일매일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냈는데

나는 염치없이 딸에게 부탁을 했다.


"지금 아빠가 돈을 안 줘서 엄마가 기분이 너무 안좋은데, 돈 들어올 때까지만 문자에 답 안 하면 안 될까?"

"저번에 아빠가 5일까지 돈 준다더니 아직도 안 줬어?"

"응"

"알겠어."


11살 딸은 내 마음을 이해해 줬고 8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중간중간

엄마! 아빠가 이렇게 문자 왔는데 대답해도 될까?

라고 물었지만 내가 아직도 돈이 입금되지 않았으니 안 해주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면

아쉬운 얼굴로 진짜 연락을 하지 않는 딸이었다.


그러다가 한 달 전

그동안 받지 못했던 양육비가 한꺼번에 입금되었다.

물론 계산을 하면 전부 다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성의 표시는 했구나 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고민이 되었다.

이걸 딸에게 말해야 할지.

여태 잘 견뎠는데 이제 와서 연락을 해도 된다고 해야 할까?







나는 최근 퇴사를 했다.

생각해 보니, 출산으로 쉰 거 이외엔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최근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혼 후 너무 열심히 살았다.

한두 달 만이라도 쉬자. 쉬어야 앞으로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쉬면서 뭘 해볼까?
그동안 못해본 것을 해보고 싶었다.

내겐 2명의 찐친들이 있는데 고등학교를 창원에서 나와 각자 커리어를 쌓고 서울, 인천에서 아주 잘 살고 있다.

내가 고민이 생겼을때 주저 없이 생각나는 소중한 인연이다.

내가 퇴사를 했다고 하니 서울에서 만나자고 했다.

너무 설렜다. 4년 만이었다.

ktx표를 예매하고 그날 만을 기다렸다.

딸에게는 엄마가 친구들 만나러 가니 이번 주말만 할머니랑 잘 지내보라고 말해두었다.


그런데 친정엄마에게 딸을 봐달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엄마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쥐꼬리라도 받았고, 계속 똑똑이에게 연락을 하니 못 만나게 하는 것도 아닌 거 같다.

아예 딸을 내치고 나 몰라라 한다면 당연히 만나게 안 하겠지만 딸도 아빠를 보고 싶어 하고

나중에 딸이 컸을 때 왜 못 만나게 했냐고 원망할 수도 있는 부분이니 한 번씩 만나게 하는 게 어떻겠냐고...


엄마

사실 이번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데

그럼 똑똑이랑 같이 서울에 올라가서 둘이 만나게 할까?라고 했더니

먼저 똑똑이에게 물어보고 그렇게 한다고 하면 그놈에게 물어보라는 거였다.


나는 조심스레 딸에게 의사를 물었다.

딸은 흔쾌히도 그렇게 하겠다며 아빠랑 롯데월드를 가고 싶다고 설레어 했다.

전남편도 좋다며 기차시간을 물어왔고 당일 서울역에 데리러 나왔었다.


못 본 지 8개월 넘은 거 같은데 겉모습은 여전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내 마음

그냥 남 같았다.

이제 그에게 여자가 있다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단지 딸이 좋아라 하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토요일 저녁에 딸에게 문자가 왔다.

롯데월드 너무 재미있었고 지금은 자려고 누웠는데 아빠는 전화받으러 밖에 나갔다고.


여자랑 전화하러 나갔겠지.


나는 친구들과 만나서

남자이야기를 많이 했다.

사실 별거와 이혼 후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내 삶에 사치라고 생각했다. 회사 집 회사 집 하기도 바쁜데 여기에 남자까지 만난다? 그 무엇도 소홀해 지고 싶지 않았다.

재혼생각은 말할 것도 없이 없었고, 연애도 하고 싶지 않았다.

믿을 만한 남자가 없다고 생각 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가정을 꾸리고 잘 사는 모습을 보니 연애라도 해볼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고,

나도 누구에게 의지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만나야 하죠? 만날 기회가 없다는 게 함정.)


저 놈도 그렇겠지.

여전히 여자 만나고 싶겠지.







요즘 내 최애 티비 프로그램 돌싱글즈.

저렇게 젊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고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서 얼굴 노출까지 하는데 나는 뭐가 무서워서 이러고만 있을까 싶었다.



사실 요즘도

아이를 전남편에게 보여주는 것이 맞는 걸까? 에 대해 갈팡질팡.

새 사랑을 찾는 것에도 갈팡질팡 중이지만.

곧 머지않아.

아이에게도 엄마의 이혼사유를 말할 것이고.

새 사랑을 찾는 노력도 해 보려 한다.



5년전 나는 결혼에 실패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결혼실패.

결혼에 실패가 있을까?

나처럼 결혼을 중간에서 끝내면 실패한 거고 끝까지 살아내면 성공인 걸까?

결혼엔 성공과 실패는 없다.

결혼 상태를 끝낸 사람과 끝내지 않은 사람만 있을 뿐



행복했던 친구들과의 추억

이제 다른 멋진 남자와의 스토리도 브런치에 남기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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