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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구슬 Aug 13. 2024

이혼을 하고 까르띠에 결혼반지를 팔았습니다.

14.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제가 다시 결혼한다면 명품 반지보다는 금반지로 할 거예요.

 이제 막 떠오르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웨딩링을 선택하는 것도 좋겠죠. 시간이 지나면 반지가격이 2배로 오를수도 있잖아요. 이걸 바로 재테크라고 합니다."


10년 전 라디오에서 한 경제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나도 똑똑하게 결혼반지를 선택해야겠어!

이제 갓 30살이었던 나는 돈걱정하며 살기 싫다고 항상 생각만 했지 이렇다 할 경제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에서야 주식이다 코인이다 아주 대중화가 되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주식하면 집안 말아먹는 것으로 생각되던 때였다.(모르겠다. 우리 집만 이렇게 생각했는지...)


하지만 당시 나는 허세에 찌들어있었고 결혼할 남자 또한 허세 하면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그는 갑자기 큰돈을 벌게 되면서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았고 외제차 3대를 굴렸다.

그런 남자친구를 보면서 나도 어깨가 올라갔고 누려도 된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선택한 친구는 상황에 맞게 금반지로 결혼반지를 맞췄고, 나는 개뿔도 없으면서 550만 원 짜리 까르띠에 반지를 선택했다.


30살.

처음으로 롯데 애비뉴엘 까르띠에 매장으로 들어갔다.

없어 보이지 않으려고 당당한 척했지만 가슴은 두근두근 거렸다.

"남들이 다하는 러브링은 싫고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이게 좋겠어 오빠"


그렇게 겁도 없이 550만 원을 결제하고 붉은색 까르띠에 종이가방을 흔들며 매장을 나왔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550만원과 수많은 사치품들은 얼마 가지 않아 내 목을 조여왔다.

10년전 나에게 가서 정신차리라며 머리한대 쥐어박고 싶다. 한대로는 부족하겠지만.







별거를 결심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창원으로 이사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이사비용을 아끼기 위해 반포장이사를 선택했고, 창원에서 친정엄마가 올라와 짐 싸는 걸 도와주셨다.

그때도 그놈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이삿날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할 거면서 왜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믿어달라 한 건지.

42년 동안 살아오면서 확신할 수 있는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점이다.

한때 나는 진짜 사람은 변하지 않을까? 의문했다.

책도 많이 읽고 자신이 깨달은 바가 있다면 좋은 쪽으로 바뀌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의 기질, 본성, 무의식, 습관은 바뀌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1. 나는 이상하게 그와 카톡을 할 때 말끝에 ㅜㅜ 우는 표시 하는 것이 싫었다.

그는 뭐가 그렇게 슬프고 억울한지 매번 ㅜㅜ 이렇게 우는 표시를 해댔고, 나는 보기 싫다고 말했다.

그러면 며칠 동안은 하지 않다가 어느 순간 ㅜㅜ 테러를 당해야만 했다.


2. 이혼은 했지만 딸과 함께 그의 집에 간 적이 있다.

여자 흔적을 찾는 내 자신이 싫었지만 요리조리 찾게 되었다.

이혼했는데 여자가 있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혹여나 그 만남이 결혼으로 이어지게 된다면 우리 딸이 받을 상처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집에서 밥을 해 먹은후 설거지를 끝내고 그릇을 정리하는 그를 보며 나는 싱크대 쪽으로 걸어갔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 사람은 설거지가 끝나도 수세미를 수세미통에 넣지 않고 축축한 그대로 싱크대구석에 놔두었다.

결혼생활할 때도 그렇더니 지금도 똑같구나.

수세미 자리에 놔달라 그렇게 얘기했건만.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반포장이사를 준비하면서 모든 물건을 다 들고 왔다.

그동안 모아 왔던 금붙이 30돈과 사놓고 끼지도 않은 까르띠에 웨딩링까지

금값이 이렇게나 오를 줄 몰랐는데 만약 웨딩링을 550만 원 치 금으로 샀음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그때 그 경제전문가라는 여자의 말을 들었어야 했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쫓기듯 내려온 이집에서 산지 벌써 6년이 되었다.

아이가 유치원생일 때 내려왔는데 벌써 11살이라니.

그동안 혹여나 내가 다시 서울로 올라갈 수 있을까?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모든 걸 용서하고 같이 살 수 있을까?라는 바보 같은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사람은 바뀌지 않음을 뼛속깊이 알게 되었고, 나는 단념했다.





이사비용을 주고 남은 돈 16만을 보고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뭐든 해야 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작은 평수지만 청약에 당첨되었고 중도금을 내기 위해 매일매일 계산하며 마음 졸였다.

1차 중도금을 내기 위해 20대에 그에게 받은 샤넬백을 팔았다.

만약 2차 중도금을 내기 힘들다면 까르띠에 결혼반지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내가 모은 돈으로 가뿐히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온전히 내가 번 돈으로 살게 되는 내 아파트에 저 반지를 들고 가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팔았어야 했을 물건.

눈에 거슬렸다.


당근과 중고나라에 물건을 올리고 며칠 뒤 거래가 되었다.

금이었으면 1000만 원이 넘었을 가격인데 550의 반정도 되는 금액으로 팔수 있었다.

속이 후련했다.

이혼은 이미 했지만 비로소 결혼생활이 끝나는 느낌이 들었다.






재미있는 사실

3. 며칠 전 그의 차가 bmw로 바뀐 것을 알았다.

빚에 허덕이며 힘들어하더니 허세는 어쩔수 없나보다.

집은 작디 작은 원룸이면서 bmw라니.


사람은 역시 변하지 않는다.



나는 bmw는 없지만 방3개 새아파트로 이사간다!

후훗





하늘에서 유성우가 떨어진다.

봄날의 햇살과도 같은 딸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해달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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