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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구슬 Sep 26. 2024

감정노동이 싫어 쿠팡 알바를 했습니다.

5. 상처받은사람 모여라

대학 졸업 후 줄곧 한 일이 어찌 보면 서비스직이라 사람을 많이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졸업 후 면세점에서 일하면서 별의별 똘아이 같은 사람을 많이 만났고 그럴 때마다 무섭기도 했고 울기도 했다.

공항 면세점 특성상 여행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중 카지노를 하기 위해 들락날락 거리는 손님들도 있었다.



새끼손가락이 잘린 50대 남자 손님은 가죽 크로스백을 구매했다.

고가였기 때문에 상품 확인을 한 후 더스트백에 조심스레 넣어드렸다.

그리곤 일주일가량 지났을까 그 손님이 다시 면세점에 왔다.


"이 가방 스크래치가 났는데 바꿔주이소"

"죄송하지만 사용하신 물건은 교환이 힘듭니다~"


" 내 이거 사용 안 했다!"

" 새 상품을 드렸고 이렇게 스크래치가 났으니 사용하신 걸로 보여요^^"

(안타깝고 미안한 표정을 최대한 지으며)



"참나! 이게 미쳤나! 내가 이 가방 썼는지 안 썼는지 니가 우찌 아노!"

내한테 cctv 달아놨나?

그럼 니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있다는 거네?


내 섹스한 것도 다 봤나?"


그러면서 내 머리를 치려고 손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결국 면세점 총괄 담당자가 와서 환불을 해주라고 했고 억울했지만 나는 환불을 해주었다.

그리곤 그 남자는 며칠 후 또다시 우리 매장에 들러 이번에는 가죽이 아닌 천으로 된 크로스백을 사서 떠났다.



물론 좋으신 분들도 계셨다.

배고프지 않냐며 자신이 싸 온 떡과 음료를 나눠 주신 분도 있었고 이쁘다며 칭찬해 주신 분들도 계셨다.


하지만 아침부터 면전에 대고 씨x 씨x 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의 캐리어를 구입하고 여행 갔다 온 후 캐리어에 스크래치가 났다며 환불해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환불이 어렵다고 하자 환불도 이 캐리어도 필요 없단다.

대신 자기 캐리어를 줄 테니 이 캐리어를 전시해 놓고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스크래치가 난다고 설명하고 판매하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람도 었었다.


나는 역류성식도염으로 한동안 굉장히 고생했다.

소화도 안되고 목 이물감으로 먹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혼하기 위해 퇴사를 했더니 신기하게도 싸악~ 나았다.







오랜만에 역류성 식도염에 걸렸다.

연봉을 올려 이직한 한의원 원장은 나에게 막말을 숨 쉬듯 했고 나는 마음을 많이 다쳤다.

이혼준비도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던 거 같다. 매일 아침 눈뜨기가 싫었다.


교통사고가 나면 일 안 하고 입원할 수 있겠지?

입원하면 아무 일도 안 할 수 있겠지?

아침 출근길마다 생각했다.


위험신호였다.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더니 폐업을 한다고 선수 친다.

나는 실업자가 되었고,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궁금했던 일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첫 번째는 쿠팡 알바였다.

쿠팡을 선택한 이유는 사람을 대하지 않고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노동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쿠펀치 어플을 깔고 내일 날짜로 신청을 했다.


'나 진짜 쿠팡에서 일하는 거야?'

이게 뭐라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접수가 잘 되었다고 문자가 왔고 잠시 후 확정문자와 함께 전화도 받았다.

볼펜,

신분증,

자물쇠를 준비하라고 해서 다이소로 달려가 자물쇠를 샀다.

(짐 보관 캐비닛 잠금용이었다.)


쿠팡셔틀버스를 신청하고 어디서 타는지 몇 번이 곤 확인 했다.

혹시나 지각하면 어쩌나 잠도 설치고 아침 일찍 일어났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겠지?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와... 진짜 사람 많다.'

큰 관광버스에 사람이 가득 찼다.

일하기 편한 복장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다들 베테랑 같았다.


버스에서 내렸다.

근무 확정 문자를 보여줘야만 건물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전날 쿠팡알바 키워드로 찾아본 블로그 덕분에 어리버리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었다.

블로그에서 본 300원짜리 음료수 자판기를 보니 신기했다.


처음 온 사람들은 2시간가량 교육을 받는다.

이 시간도 다 시급으로 쳐주기 때문에 꿀이었다.


같이 교육받은 20대 여자분과 함께 진열업무를 배정받았다.

일은 굉장히 쉬었다.

카트에 있는 물건을 빈 진열장에 진열하는 거였다.

주의해야 할 점도 있었지만 일자체는 사실 초등학생도 할 정도다.

대신 한여름인 7월에 했기 때문에 땀이 미친 듯이 흘다.

에어컨도 없는 창고 안에서 일을 하려고 하니 숨이 턱턱 막혔다.


2시간가량 일을 하고 기다리던 점심을 먹었다.

그새 친해진  20대 동료와 함께 먹었다.

그 친구는 몇 달 전까지 텔레마케터로 근무했는데 신기하게도 나처럼 감정노동으로 너무 힘들어 쿠팡에 알바하러 왔다고 했다.



쿠팡에서는 감정노동 따윈 없었다.

사람과 말할 일도 없다.

그냥 묵묵히 내가 할 일만 하면 된다.

상품 바코드를 PDA로 찍고 --> 진열--> 위치바코드 PDA로 찍기

이게 다였다.


쉬는 시간에는 무료로 제공되는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쉴 수 있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퇴근시간이다.

첫날에는 요령이 없어 다리가 아팠는데 다음날에는 바닥에 앉아 진열하면서 다리도 아낄 수 있었다.

일주일에 2일 이상 일하면 주휴수당까지 받을 수 있다. 이왕 하기로 한 거 일주일에 2일은 일하자.

쿠팡 알바도 인기가 많은지 나처럼 한 번만에 붙은 사람이 드문 거 같았다.

한 번에 붙은 나를 운 좋은 사람이라 했다.


감정노동이 싫어 여기에 다 모인 걸까?

마음이 힘들다면 몸이 힘든 쿠팡알바 추천한다 :)










아무 생각 없이 몸 쓰는 일을 하니 상처받았던 마음이 조금씩 여물어감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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