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구슬 Oct 17. 2024

약국에서 생긴 일

8. 이 집 에피소드 잼있네

매주 목요일 연재를 약속하고 시작한

나는 프로다, 프로 이직러

목요일이 되면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고? 하며 놀란다.

하루하루가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서울에서 창원으로 온 지 6년이 넘어가고 있네


창원으로 내려와 제일 큰 걱정은 일자리 구하기였다.

결혼 전 일했봤던 면세점으로 이력서를 낼 것인가.

서울에서 일했봤던 약국직원으로 이력서를 낼 것인가.


1. 면세점에서 다시 일을 하려고 생각하니 출퇴근이 너무 힘들었던 예전 생각이 나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야 아가씨였으니 내 몸뚱아리만 챙기면 됐지만  공항까지 출퇴근이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까지 있으니 더욱 선택하기 힘든 거였다.


2. 서울에서는 살던 곳 근처에 대학병원이 있어 약국이 정말 많았는데 내가 들이는 노동력에 비해 처우가 괜찮았다.

명절이 되면 약 주문하는 도매상에서 과일세트며 견과류 등등 선물이 굉장히 많이 들어왔고, 이건 모두 직원차지였다.

거기에 약국장이 명절 잘 보내라며 이때까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액수의 성과급도 받아봤다.

스트레스도 크게 없었고 같이 일하던 직원분들이 다들 좋으셔서 재미있게 일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내가 잘 따랐던 10살 많은 분이 계셨는데 이분께만 그만 두는 이유를 말했었다.

같이 울어주시고 등도 토닥토닥해주셨는데, 같이 일했던 그 순간이 너무나 그립네.






결국 나는 약국에서 일하기로 마음먹고 구인공고를 뒤적였다.

진짜 일할 곳 없었다.

월급도 서울과는 차이가 많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일해야 했기 때문에 선택한 어느 약국.


여기가 약국인지. 공장인지. 시장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바빴고 직원들 또한 많았다.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아줌마들로 굉장히 쎄보였다.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도 쎘고 무례했다.

본인의 실수는 그냥 넘어가고 타인의 실수에는 눈을 부라리며 잡아먹을 듯 달려들었다.


점심식사 외엔 한순간도 쉴 수 없었고 내 자존감은 점점 바닥으로 내려갔다.

내 인생 처음이었다.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만두겠다고 말한 곳이.


몇 개월이 지나 다른 약국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매일이 에피소드 천국이었다.

나름 큰 약국이었고 왜 거기 있잖아!라고 말하면 다들 알만한 곳이었다.

면접을 볼 때만 하더라도 굉장한 스윗한 약국장이었는데 일하러 간 첫날의 그 사람은... 음....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면접을 볼 때만 하더라도 구슬씨가 이때까지 본 사람들 중에 1위라고 해놓곤 다른 사람을 채용했다.

그리곤 그 사람이 퇴사를 하자 밤 10시에 전화가 와서 내일부터 일하러 오라고 했다.


첫날부터 약국장은 근무약사와 소리 지르며 싸우질 않나 약국손님에게 무안을 주질 않나.

그야말로 에피소드 천국이었다.


사실 너무나도 어렵게 구한 일자리였기 때문에, 나한테만 소리 안 지르면 된다는 마인드로 일할 수 밖에 없었다.







episode1.

(약국장을 A라 하겠음.)

A : 이 약은 하루 2번 아침저녁으로 1 포씩 먹으면 되고. 저녁에만 이 약 바르면 됩니다.

손님 : 아 아침 저녁으로 먹으면 된다고요?


A : 아...(옆에 있던 김약사에게) 김약사! 내 하는 말이 어렵나? 이래 쉽게 말해도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다.

     하루 2번 먹으라는 게 이리 어려운 말이가!

손님 : 아... 네네 알겠습니다.


당황한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는 손님이 있는 반면, 뭐 이런 곳이 다 있냐며 소리 지르고 가신 분들도 많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는 분들은 보면 참 안타까웠다. 내가 대신 소리 질러주고 싶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episode2.

제약회사에서 한 번씩 크리스피 도넛을 사가지고 왔는데  2박스를 매번 들고 왔다.

약국장은 자기 혼자 먹으려고 책상 위에 올려놨는데 귀여운 막내직원이

"국장님~ 이거 저희 먹어도 돼요?"

했더니,

소리도 내지 않고 안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이런 사람은 처음 봤다.


명절에는 당연히 상여금은 없었고 제약회사에서 온 선물들은 모두 국장의 것이었다.


episode3.

안약처방받은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손님 : "안약 뚜껑이 안열리네에! 불량 아닙니꺼! 이거 우째야되노!"

A : (소리 지르며) 아주머니!! 불량 아닙니다! 잘 열어보세요!! 열 줄을 모르는가 보네요!

손님 : "뭐라고? 이거 불량이면 어떻게 할 건데! 우리 집이 마산인데 내가 또 거기까지 가야 하나! 진짜 짜증 나네!"

A : 만약 그게 불량이면 내가 미안합니다! 7번 외치겠습니다. 들고 오세요!


그리고 잠시 후 손님이 왔고.

아무리 해도 안약 뚜껑이 열리지 않자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약국 안은 미안합니다 소리로 쩡쩡 울리고 있었고 구석에 서 있던 손님이 귀를 막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episode 4가 다음 주에 발행되지 않으면

미안합니다 7번 외칠게요

:)







이전 07화 N잡으로 이것도 괜찮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