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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구슬 Mar 08. 2024

이혼을 하고 기초수급자가 되었습니다.

2. 비밀로 하고 싶은 기초수급자


2022년.

월급은 190만 원, 차도 집도 없는 40살.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결혼을 삐까번쩍한 호텔에서 한 후, 벤츠를 타고, 샤넬백은 멘 채, 하와이로 떠나는 공항을 향해 달렸었다.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결혼생활.

강남 25평 아파트에서 시작한 신혼생활의 끝은 기초수급자였다.

아니, 다시 시작한 삶의 시작이 기초수급자라고 해야 맞는 말일까?


이혼을 하고 한부모가족지원 신청을 했었다.

집도 절도 없는 나는 한부모가족지원에 교육급여까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기초수급자는 티비에서 보던 진짜 못 사는 사람들이나 받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와... 나 진짜 못 사는구나?

그렇게 매달 25일에 가정복지과로부터 20만 원씩 입금이 되었다.

명절에는 위로금이라고 해서 3만 원씩 더 들어왔고, 정부미를 신청하면 쌀 10kg을 만원이 안 되는 금액에 사 먹을 수 있었다.

핸드폰, 전기요금도 할인받고, 아이 방과 후 수업은 연간 60만 원씩 지원받을 수 있었다.

아이가 방학이 되면 혹여나 못 먹고 살까 봐 우유 한 박스가 집으로 배달되곤 했다.


웃프다...라는 말이 실감 났다.

웃기면서도 슬펐지만 매달 들어오는 20만 원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 피아노학원을 보낼 수 있었고, 피자도 한번씩 사줄 수 있었다.


우유 한 박스 받았지만 나와 딸은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

이것도 유전인지, 어릴 때부터 우유를 거부했다.

우유를 보며 친정엄마에게 전화했다.

" 엄마! 내 못 산다고 나라에서 우유 한 박스를 주네? 엄마 들고 가라 ㅎㅎ"







3년의 별거생활을 끝으로 서류상으로 아이의 친부, 친모로만 남겨졌다.

평범한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진짜 리얼 이혼을 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인 그 사람과 다시 잘 될 수는 없는 거니까.

용기가 필요했다. 다시 새 삶을 살 용기.


내 첫 번째 인생목표는 좋은 부모가 되는 거였다.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라고 말할 것도 없이 거의 매일 싸우셨다.

차라리 이혼하는 게 자식인 내가 더 행복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딸에게 비록 아빠와는 떨어져 지내지만 오히려 잘 된 일 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엄마는 계속되는 아빠의 거짓말이 너무 싫고 그러다 보면 싸우게 될 거니, 차라리 엄마와 이렇게 재미있게 지내는 게 오히려 좋을 수 있다고 세뇌?를 시켰더랬다.


이혼은 했지만 여전히 나는 좋은 부모가 되길 바랐다.

사달라는 장난감은 다 사주지 못할 망정, 아이가 배우고자 하는 것을 끝까지 서포트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좋은 집에 영어유치원도 보내고 싶었고, 백화점 옷에, 유명한 학원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대신 집에서 엄마표로 공부시켰고, 상도 많이 받아왔다.

피아노에도 소질이 있어서 콩쿨에 나갔다 하면 대상을 받아왔다.

뭐든 알려주면 다 흡수하는 아이를 보며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법정 한부모가 되고 교육급여까지 받는 기초수급자가 되니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매달 입금되는 20만 원에 핸드폰, 전기요금 할인 외에도 스포츠바우처라고 해서 초등학생 자녀에게 매월 95,000원의 지원금이 나오는데 이 바우처로 배우고 싶은 운동을 등록할 수 있다.

우리 딸은 잠시 태권도를 배웠다.


생리대 바우처도 연간 78,000원씩 2번 총 156,000원을 지원받아 생리대 및 물티슈를 구입하는데 요긴하게 썼다.

2023년 3월에는 교육급여 바우처로 415,000원을 받아 아이가 갖고 싶었던 책가방도 바꿔주고 서울 여행도 다녀왔더랬다.


문화누리카드는 1인당 연간 11만 원씩 지원받았고 총 22만 원으로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과 아이 문제집을 마음껏 살 수 있었다. (지금은 지원금액이 13만 원으로 증액된 걸로 알고 있다.)





웃프다는 마음은 금세 고맙다는 생각으로 변했다.

이런 지원들로 인해 그야말로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원이 좋다고 이런 생활을 지속하고 싶진 않았다.

아이도 이제 고학년이 될 테고 선생님의 시선도 조금은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자... 벗어나고 싶었다.


월급도 올리고 부수입도 만들기 부단히 노력했다.

소파에 한번 앉아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정확히 22년 6월 26일에 한부모지원 신청을 했고,

2023년 10월 10일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자산을 조회했더니 1억이 넘으셔서 그동안 받았던 지원들은 중지됩니다."






우리 앞날은 행복만 남아 있다는 걸 믿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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